"제가 말이 좀 거칠고 욕도 하는데..."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현정

발행일 2012.11.13. 00:00

수정일 2012.11.13. 00:00

조회 2,222

[서울톡톡] 겨울이 다가오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축제가 있다. 서울의 밤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서울등축제. 올해에는 3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이라 하니 이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많은 시민, 관광객이 찾는 행사이다 보니, 현장 안전요원만 평일에는 80명, 주말에는 160명이 근무한다고 한다. 준비단계에서도 등제작 인원만 70~80명으로 모두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다고 하니 준비인원 또한 어마어마하다. 문득, 이런 행사의 총감독이 궁금해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총감독이라면, 왠지 강렬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일 듯 싶다. 혹여 기에 눌려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 수 있을까 잔뜩 걱정을 하며 만난 박재호 감독은 실상 무엇보다 격없이 편한 사람이었다.

"제가 말이 좀 거칠고 욕도 하는데…"라며 우스갯소리로 단번에 긴장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꿔 주었다.

손으로 만들어 더욱 고운 전통 등

"거의 10개월 이상 준비를 해요. 역사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서울시 학예연구사 분들, 의상 전문 교수님 등 관련 자문단의 고증이나 검토를 거쳐 수정 보완해야 하고…."

자문단이나 서울시 관계자들의 여러 검토 과정을 통해 수정 보완하는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 기획되는 것이 등축제이다. 2~3개월 이런 과정을 통해 시놉시스와 디자인이 나오면 등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전통등은 사람이 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6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4개월 정도 걸리지요. "

먼저 골격을 만드는 프레임 작업을 한 후, 한지 배접, 즉 한지를 붙이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한지를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사이사이 모양 그대로 조각조각 오려 붙이는 것이다. 조각이 많아질수록 좀 더 섬세해지고 디테일이 산다. 대신 작업은 그만큼 오래 걸리고 힘들다. 또한, 단가도 비싸진다. 배접작업이 끝나면 붙인 본드를 말리고 다 마르면 채색작업에 들어간다. 채색작업 후에도 잘 말린 후, 코팅작업을 한다. 물이 먹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코팅작업을 하는 것이다. 비에 맞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3번 정도 코팅작업을 한다고 한다.

"천으로 만드는 중극등에 비해 한지를 사용하는 전통등은 보다 섬세하고, 낮에도 은근한 아름다움이 있죠. 반면, 중국 등은 밤에는 화려한 대신 빛도 은근하지 않고 반사 차이도 많이 납니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도 예부터 종이로 등을 만드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한지처럼, 중국은 현지, 일본은 화지를 사용했는데, 근래 중국에서는 제작비가 보다 저렴한 천을 주로 사용한다. 일본은 한지를 만들 때 원료에 비닐가루를 섞어 만든 종이로 등을 만든다. 비닐이 함유된 종이다 보니 비에 좀 더 강하고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등 만드는 한지는 일반 창호지보다 두껍게 만든 종이를 사용한다고 한다. 두께를 달리하여 질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사용하는 등은 대부분 중국 등을 사용한다. 실제 중국의 서남부 쓰촨성에 있는 자공시는 세계 곳곳에서 등을 만들며 먹고 사는 도시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하다. 실제 국내 몇몇 지방 축제에서도 중국에서 기술자가 직접 와서 제작한 중국등을 사용한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하는 등축제는 제작비도 저렴하고 크고 화려한 중국등을 선호한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 프레임 몇 개만 만들어 천으로 휙 덮어씌우면 되는 방식이라 제작기간도 짧고 제작비도 저렴하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등의 경우, 프레임 수도 많이 들어가고 한지를 조각조각 붙이고 마른 후에 칠해야하니 손도 많이 가고 작업시간도 오래 걸린다. 실제 이번 서울등축제에서 볼 수 있는 숭례문의 경우 한사람이 꼬박 한달 정도 걸려 만든 것으로 제작비만 30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서울시가 이렇듯 번거로운 전통등을 고집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예부터 한양도성안에는 연등회 같은 문화가 있었다. 그런 역사적 전통이 있는 도시, 서울이기에 전통등은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 게다 청계천은 장소도 가깝고 시야가 좁기 때문에 은은한 전통등이 더 잘 어울린다. 이렇게 전통등을 사용하면서 한지 수요가 많아져 지방 한지 산지 등을 활성화 시키는 경제적 효과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많은 지역축제에서도 우리의 전통등이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적은 예산으로 시민들이 즐겁게 모일 수 있고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그만이다 보니 많은 지역에서 축제에 곁들여 분위기를 돋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전통 등은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대를 이어 만들어온 장인들은 없다고 한다. 뜻있는 젊은 사람들이 크게 수입은 안 되지만 취미로 만들어오다 문화사업과 연계되면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지방의 경우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하니 이런 축제가 활성화되어 보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제작에서 설치까지 힘들지만 즐겁게

사람 모양을 각양각색으로 잡아 등을 만들다 보니 골조나 채색 작업을 할 때 종종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점 하나만 찍어도 달라지는 게 사람 인상이다 보니, 수염만 조금 달리해도 때론 우스꽝스럽게 되기도 하고, 세부적인 부분을 칠할 때 논의도 많이 하게 되고, 종종 즐거운 일도 생긴다고 한다. 골조 작업을 하면서도 형틀을 조금 잘못 잡아도 팔 다리가 위치가 어긋나기도 해 그야말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되곤 한다고 한다.

"청계천이 한쪽은 얕고 한쪽이 높아요. 대체적으로 높은 쪽에 나무가 많이 심겨 있고, 낮은 쪽엔 풀밖에 없어요.. 그래서 보기 좋은 쪽으로 돌려놓죠. 높낮이가 다르다보니 자칫 등들이 밑으로 내려다볼 수 있어 시선도 맞춰야하고, 나무에도 가려지지 않게 해야 하고…."

청계천 현장에 설치할 때는 등을 먼저 가져다 두는 게 아니라, 거리를 배경으로 해서 디자인 기획서가 나오면, 먼저 현장답사를 한다고 한다. 사진을 가져다 놓고 보면서 장소를 정한 후, 각 구간마다 배정을 하고 그 다음에 받침대를 가져다 그 자리에 놓는다. 청계천이 굴곡이 심하고 미끄럽기 때문에 받침대를 안전하게 잘 놓는 것에 무엇보다 신경을 쓴다고 한다. 잘 맞춰 놓은 후, 등을 올려놓고 시선을 맞춰 제자리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런 작업이 보름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올해는 설치하는 와중에 비가 많이 내려서 너무 힘들었어요. 설치를 60%했는데 비가 와서 그 60%를 다 건져 내놨다가, 또 그 다음날 비가 그치면 재설치하고… 결국은 제일 처음 설치해둔 것 하나가 한강으로 떠내려갔죠."

난장 축제를 즐기는 감독

" 하이서울페스티벌 퍼레이드 감독을 7년 했어요. 대부분 총감독 예술감독 하면 무대 공연을 많이 하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무대가 있는 공연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연극영화 전공했는데 난장 축제를 많이 했죠."

박재호 감독은 하이서울페스티벌 퍼레이드, 정조대왕 행차, 미라클 수중다리, 드럼페스티벌, 재즈페스티벌, 국악축제 등 국내 굵직한 축제의 총감독을 한 베테랑 감독이다.

"문화정책이라는 게 지속적으로 가야하는데, 자치단체장이 바뀌게 되면 새로운 정책으로 바뀌고 전통이 자꾸 끊기는 것 같아 아쉬움도 있습니다."

박재호 감독은 분기별로 보다 체계적인 축제가 꾸준히 열려 정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서울 등축제도 매년 11월 첫째 주 금요일에 시작해서 셋째 주 일요일에 끝난다는 식으로 일정을 잡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관광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일정 변동 없이 열리는 행사로 정착시키고 싶은 이유에서이다.

"도성을 아이디어로 내놨지만. 사진 밖에 없고 100%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흥인지문 앞에서 낙산, 청와대 뒤 인왕산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3번 혼자 돌았었어요."

이렇게 답사를 통해 굴곡사진도 찍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포인트도 살리고 내사산의 굴곡 등을 제대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런 세세한 작업 하나하나 맞춰가는 것 또한 등축제 감독의 역할이라 한다.

"아이디어요? 누워서 될 문제가 아니죠. 일하면서 학교 다닐 때 보다 역사 공부를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조선시대 역사책만 100여 권 이상 샀어요. 양반, 천민, 포도청, 역대 임금들에 대한 것, 사진첩이나 박물관 도록도 다 사서 보고… 그런 것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거죠."

세운교에서 내려오는 게 기다리지 않고 보기 더 좋다

"아무래도 올해 애착이 가는 등은 도성등이지요. 시민들이 도성 걷기도 많이 하고, 곧 유네스코 등재도 될 것이고, 한양에 이런 큰 성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게 제 바람이고요. 그래서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자해서 도성등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최소 축소로 12m로 만든 것이에요. 도성을 한 바퀴 돌려면 18.6km인데 이것을 몇 백대 일로 축소를 하면 저렇게 나올 수 없죠. 비율은 안 맞지만, 사람들이 보면 확인을 할 수 있게끔, 내사산, 사대문과 사소문, 오대궁을 넣고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최고의 관광 상품은 그 나라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신념 하에, 박재호 감독은 등에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해 주제는 '등으로 보는 서울 옛이야기'였다. 조선의 건립 이념과 역사를 되짚어 보았던 것. 올해는 더 나아가 '서울의 뿌리, 선조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양도성등을 주제 등으로 내세워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있는 한양도성을 소개하고 있다.

공간은 한정적이고 관람객은 늘어나다보니, 안전문제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는 시작부터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청계광장 입구 쪽을 화려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등의 이유로 계속 정체되어 안전과 원활한 진행에 문제가 되어 올해는 이를 보완해서 배치했다고 한다.

"대형 사고는 아닌데 매년 하나씩 노이즈 광고가 되는 사건들이 터져가지고 광고 효과가 극대화가 되었어요. 작년에 개막식 끝나고 VIP 전시관람 할 때 남대문 밑에 좌대 깔아놓은 게 좀 꺼졌어요. 시장님이 시민들과 함께 사진 찍자고 '다 이리오세요' 하니 시민들이 갑자기 몰려와 주저앉아 버린 거죠."

바로 남대문이 무너졌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가기도 했는데, 실제 50m 두께의 좌대에 하이텍스를 깔아 육안으론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시민들이나 뒤늦게 온 기자들도 와서 보곤 멀쩡하니, "뭐가 무너진 거야?" 하며 찾아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어요. 가만 보니 올해에는 아무래도 비 때문에 한번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대비하긴 했는데... "

올해 현장에 다녀보면, 재방문하는 시민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한다. 작년보다 더 나아졌다, 재미있다, 더 많아졌다는 등 여러 얘기들이 들린다고 한다. 실제 청계천 1.5km 물길을 따라 3만5,000여 개의 등이 전시되어 지난해 보다 전시구간이 200m 정도 늘어났다.

"세운교에서 내려오는 게 기다리지 않고 보기도 더 좋습니다."

청계광장 입구의 경우 1~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반면 세운교는 줄을 서지 않고 볼 수 있다고 하니, 세운상가 옆에 있는 세운교 입구를 이용하도록 하자.

이제 한층 날이 차가워졌다. 쌀쌀해진 날씨에 대비해 두둑이 챙겨 입고, 청계천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은은한 전통등 아래 보다 낭만적인 밤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혼잡을 피하고 싶다면 월요일에서 목요일 사이 평일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제법 붐비는 주말 시간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면, 점등시간인 5시에 세운교 쪽 입구로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행사장은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일방통행으로 운영한다. 청계천 북쪽 길은 청계광장 방향으로, 남쪽 길은 세운교 방향으로만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복잡한 행사장이다보니 거슬러 오를 경우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불편할 수 있으니 꼭 지키도록 하자.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장소이니 질서는 필수라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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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축제 #서울의밤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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