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에 시력을 잃은 그녀, 공무원이 되다

서울톡톡 조선기

Visit7,017 Date2013.11.15 00:00

최수연 주무관






[서울톡톡] 사실은 좀 더 일찍 만나고 싶었다. 그와 그의 안내견 ‘온유’는 시청에선 이미 유명 인사다. 출퇴근을 하거나 식사를 하러 나갈 때 종종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단정한 긴 머리에 호리호리한 몸매, 커다란 리트리버를 앞세우고 걸어가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아, 저 사람이 서울시 최초의 1급 시각장애인 공무원이구나.’


“상처 받을까봐 시도조차 안한다고요?”


“가만히 있으면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상처 받을까봐 아무것도 안한다면 결국 제자리에 머물게 되겠죠. 어떻게든 시도는 해 봐야죠.”


현관문을 나가는 일에서부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목적지를 찾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다른 이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최수연 주무관(29)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다. 겁을 먹자면 하염없이 약해지고 움츠려들 것 같아 그녀는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해보자, 할 수 있다.’


공무원 시험도 그런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시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에 수험교재를 점자 및 파일로 제작해줄 것을 의뢰했고 2년 동안 이 교재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 결과 2012년도 가을 서울시 공무원 공개경쟁 임용시험에서 당당히 합격, 서울시 일반행정 7급 공무원이 됐다.


“합격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기뻤어요.”


그녀는 지금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자리 앞에는 시가 마련한 광학문자판독기, 점자라벨기 등 시각장애인용 정보통신 보조기기들이 놓여있다.


근무하고 있는 최주연주무관


“처음엔 출퇴근이 힘들었는데 그건 많이 익숙해졌구요. 일은 어렵긴 한데 배운다는 자세로 하고 있어요. 다만 내부 시스템 등이 비장애인 위주로 돼 있어서 좀 불편한 건 있어요. 하지만 이전에는 저 같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제 뒤에 들어오는 시각장애인 공무원들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시설이 시력이 정상인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편하자고 만든 것들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인터넷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계가 있다고 하지만 팝업이나 배너 등의 이미지는 기계가 판독하지 못한다. 세상은 열려 있는 것 같다가도 어쩔 땐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을 밀어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이제부터 바꾸면 되죠.’


13세 때 시신경 위축으로 시력 잃어


얘기하다 보니 그녀의 과거가 궁금했다. 그녀는 언제 시력을 잃었을까?


“시력을 잃었던 건 열세 살 때였어요. 그때 한쪽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는데, 처음엔 다른 눈의 시력은 괜찮아서 이게 심각한 건 줄 몰랐어요. 엄마가 보고 좀 이상하셨는지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미 시력을 회복하기 힘든 상태였어요. 병원에선 시신경 위축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녀는 시력이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심하게 독감을 앓은 것처럼 그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그러나 나머지 시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괜찮으면 진학하려고 2년간 학교를 쉬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맹학교를 권했다.


안내견 온유


“그때부터 제 상태를 인정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맹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다 보니 시설이나 교재 등에 불편함이 없었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건 대학에 들어가서 알았다. 시설도 불편했고, 교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움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 당시에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조금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 거요.”


시청에선 샤이니 ‘온유’보다 안내견 ‘온유’가 더 인기


인터뷰를 하는 내내 주위의 사람들은 온유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온유도 아는 직원을 만나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주인보다 개가 더 인기가 좋은 것 같아요.” 이 말에 수연씨가 환하게 웃었다.


“온유는 공무원 합격 후 처음 만났어요. 처음엔 얘랑 나랑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던 게 사실이에요. 근데 지금은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신경 쓰이고 걱정돼요.”


혼자 다니던 그녀에게 온유가 찾아오면서 여러 변화가 생겼다. 특히 성격이 많이 변했다. 온유의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가 그녀에게 영향을 주는 듯 했다. 온유는 그녀에게 안내견이기에 앞서 자신감을 주고 위로를 건네는 친구 같은 존재다.


“이제 온유는 제 삶에 너무 큰 일부분이 됐어요. 온유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온유에게 항상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식상한 질문 하나 던졌다.


“꿈이 뭔가요?”


“그런 질문 너무 어려워요.(웃음) 그냥 하던 일 열심히 하는 거. 그리고 플루트 배우고 있는데, 지금 초급이거든요. 중급으로 넘어가는 거.”


그녀와 플루트, 어쩐지 너무 잘 어울린다. 열심히 해서 공연까지 하라고 부추겼다. 그녀는 무대에 올라가서 ‘학교종’ 연주하다가 내려오는 거 아니냐며 손사래를 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뭐든 열심히 하는 그녀이기에 언젠가 초대장 하나 보내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얘기하다 보니 그녀는 참 예뻤다. 그렇다고 얼굴이 안 예쁘다는 건 아니다.(이러면 더 이상한가 ^^;) 목소리나 마음 씀씀이, 생각 등등 안 예쁜 데가 없었다. 요즘은 그녀처럼 조용히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서울시 최초의 1급 시각장애인 공무원’. 최초라는 말만큼 부담 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녀는 잘 견뎌낼 것 같다. 그래서 훗날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지금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용기와 희망을 줄 것 같다. 부디 그녀의 아름다운 열정이 식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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