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레이스를 9번이나!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채경민

발행일 2013.04.09. 00:00

수정일 2013.04.09. 00:00

조회 2,779

[서울톡톡] 최장거리를 달리며 지구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마라톤'. 남들은 평생에 한번 해볼까 말까한 이 종목에 도전해 무려 40번 이상을 완주한 공무원이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중 9번은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사막·오지 레이스였다는 사실. 화제의 주인공 김경수(51·사진) 강북구청 도시계획과 균형발전팀장을 만났다.

"틈틈이 연습하고 준비했죠"

김경수 팀장의 첫 인상은 평범했다. 사막을 가르는 거친 레이스를 9번이나 치러낸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 평범한 중년 남성이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2001년쯤 민원 업무를 하면서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민원인들의 거친 행동을 말리다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가기도 했거든요. 건강이 회복되자 동료가 15km 마라톤 대회 참가를 권유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한 첫 도전이었는데 막상 완주하고 나니 이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자극이 되더군요."

김 팀장의 '마라톤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퇴근 후엔 중랑천을 시작으로 왕복 40km에 달하는 구간을 뛰고 또 뛰었다. 주말에는 북한산, 도봉산 일대로 등산도 다녔다. 몸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인 모를 피로감과 두통, 감기 등 질병이 사라졌고,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마라톤이 몸에 잘 맞더라고요. 마라톤을 하기 전에는 운동에 관심도 없었는데 몸이 좋아지기 시작하니 정말 놀랍더군요."

시간이 날 때면 전국의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에 도전해 완주 기록을 세웠다.

이런 그가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너무도 우연한 기회였다.

"지방 출장을 갔을 때였어요. 숙소에 있던 TV에서 사막을 달리는 외국 마라톤 화면이 나오더군요. 선수들이 배낭을 메고 모래 범벅이 돼서 사막을 막 달리는데 와~이런 종목도 있구나 싶더군요.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는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고자 동호인들을 모았다. "마침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려고 하는 분들이 몇 분 있더라고요. 2002년쯤 동호회를 만들고 준비를 시작했어요. 꼭 성공하리라 마음먹었죠."

이때부터 김 팀장의 혹독한 준비가 시작된다. 걸어서 오르내리기도 힘든 북한산을 구보로 등반하고 틈틈이 마라톤으로 체력을 비축했다.

"극한의 연속…죽음의 레이스"

김 팀장의 첫 도전은 2003년 4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열린 사막 마라톤이었다. 5박 7일에 걸쳐 무려 243km의 서부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경기로 일명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린다. 나름 철저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첫 도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극한 상황의 연속이더군요. 낮에는 온도가 섭씨 52도를 넘을 정도로 뜨겁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질 정도로 추웠습니다. 수십여 개의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을 만나고 중간에 보이는 마른 골짜기들 사이에서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웠지요. 더군다나 모래 폭풍을 만나면 온몸이 모래 범벅이 되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사막 마라톤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참가자들은 최소한의 식량과 의류 등을 넣은 무게 15kg 가량의 배낭을 메고 하루 평균 30~40km를 달려야 한다. 코스 중간 중간에 있는 체크 포인트(CP)를 지정된 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하면 사실상 대회를 포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무작정 걷거나 여유를 부릴 수도 없다. 더군다나 대회 마지막 날엔 무박 2일로 70~80km를 달려야 하는 '롱데이(long day)' 구간도 있다.

"저 멀리 피니쉬 라인이 보이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군요. 해냈다는 마음은 아마도 이 극한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겁니다. 일주일 동안 레이스하면서 본 사하라 사막의 아름다운 순간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는 이렇게 첫 사막 마라톤 완주에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사막 마라톤 도전에 나섰다. 2005년 중국 고비 사막 마라톤은 시각 장애인 마라토너인 이용술 씨와 함께 한 색다른 도전. 처음 해보는 장애인 도우미 역할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구간에서 몸이 불편한 상대의 상태를 살피고 격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용술 씨가 잘 믿고 따라와 준 덕분이었어요. 정말 대단한 친구죠." 수차례 위기의 순간에서도 차분히 호흡을 맞추며 두 사람은 완주에 성공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06년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시각 장애인 이용술 씨와 함께였다.

"아타카마 마라톤은 세계 4대 극지 레이스로 꼽힙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들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소금 사막인데 원주민들도 웬만해선 가지 않는 곳이더군요. 조금만 걸어도 운동화 밑창이 쉽게 헤질 정도였으니까요. 계속해서 고비가 찾아왔지만 서로 밀고 당겨주며 우여곡절 끝에 완주했죠.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2009년 김 팀장은 시각장애인 송경태 씨와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레이스에 함께 도전해 또다시 완주에 성공한다. 이후 중국, 이집트, 인도, 미국, 호주 등지서 열린 세계 사막 마라톤에도 차례로 도전해 모두 완주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특히 2011년에는 호주 중서부 엘리스스프링에서 울룰루에 이르는 무려 510km 구간을 거뜬히 완주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끝없이 도전하고 성취하고 싶어"

세계 각국의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면서 지금까지 그가 들인 돈은 8,000여만 원. 외부 스폰서 없이 모두 자비로 처리했다. 당연히 아내와 주변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마라톤만큼 일도 더 열심히 했어요. 마라톤 때문에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사막 마라톤을 하나씩 완주하면서 업무를 대하는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생겼다. 매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업무를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게 된 것. 생소한 업무와 마주하면서도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감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남들이 볼 때 대단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얻어낸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특히 일상에 지친 중년이나 젊은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싶어요. 매사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재미를 느낀다면 인생이 훨씬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직접 만들었다는 동영상 한 편을 틀어줬다. 그룹 퀸의 노래 '위 아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 음악에 맞춰 사막 마라톤 도중 틈틈이 촬영한 순간들이 짧은 슬라이드 쇼로 펼쳐졌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 한 계속 도전할 겁니다." 2분 분량의 동영상은 이내 끝났지만 흐뭇한 미소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유난히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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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마라톤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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