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살 공무원

서울톡톡 조선기

Visit12,833 Date2012.10.19 00:00







[서울톡톡] 매년 많은 사람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치른다. 작게는 몇 대 일에서 많게는 몇 백대 일까지, 원하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한정돼 있다. 2012년 서울시공무원 최연소 합격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담당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답변메일을 보고 내가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어, 고등학생이네.”



교복을 입은 그녀는…


공무원 인터뷰 코너를 맡으면서 고등학교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선생님이 아닌 학생을 인터뷰하게 되다니. 이번에 인터뷰할 대상은 2012년 서울시 보건직 공무원에 합격한 박인아 씨(19)다. 그녀는 영신간호비즈니스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 9월 30일(일) 7·9급 최종합격자 814명을 발표했다. 특히 올해는 저소득층과 장애인, 고졸자 등의 모집이 주목을 받았다. 최종 고졸자 합격자는 총 10명으로 그 중 보건직은 6명이 선발됐다. 박인아 씨는 겨울에 태어난 덕에 최연소 합격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엄마는 제가 공무원이 된 게 믿기지 않는 것 같아요.”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랬을까? 그녀는 여느 고등학생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 친구가 내년에 공무원이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내가 왜 인터뷰를 하는지 까먹을 정도였다. 아마 인아 씨 어머니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 했다. 그녀에게 요즘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냥 똑같아요. 수업 받고 끝나면 집에 가고. 아, 요즘 아르바이트 구해요. 임용되기 전에 아르바이트 해보고 싶어서요.”


그녀는 학교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공무원에 취업된 경우는 처음이다. 인터뷰 하던 날 오전에도 2학년들 앞에서 공무원 합격 비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왔단다.


“2학년 중에 보건직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애들이 많거든요. 3분의 1 이상인 것 같은데, 그래서 후배들 앞에서 얘기했죠. 준비는 어떻게 하고, 면접은 어떻게 봤다 이런 얘기요.”


사실 고교 졸업자 중에 공무원이 된 선례가 없기 때문에 준비가 쉽지 않았다. 필기는 그렇다 치고, 면접에서 뭘 물어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취업담당 선생님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신문을 보면서 보건 관련 이슈를 집중적으로 찾아봤다.


“당시에 한강 녹조류 문제가 이슈였어요. 면접에서도 관련 내용을 물어보시더라구요. 녹조류랑 남조류에 대해서 물어보셨는데, 녹조류 밖에 몰라서 남조류는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또 자기소개서에 성격이 급한 편이라고 썼더니 급해서 손해본 적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당황해서 조금 얼버무리긴 했는데 어떻게 잘 넘긴 것 같아요.”


압박 면접에서 요구하는 건 정확한 답변이 아니라 대처능력이다. 인아 씨는 그런 면에서 참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잘 얘기하는 편이었다.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원했던 게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대학이요? 가고 싶었죠


인터뷰를 한 건 나였지만, 그녀 역시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질문의 대다수는 사회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 특성상 친구들 중에 취업된 친구들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얘기 들어보니 반에서 1/3 이상이 취업한 상태라고 했다.


“취업한 애들이 다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살짝 걱정이에요. 그렇게 힘드나요?”


학교 후배나 아는 동생을 만났을 때 주로 듣던 질문인데, 그녀를 통해 들으니 색달랐다. 나는 열심히 하면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줬다. 어찌됐건, 한참을 얘기한 후 나는 그녀에게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대학엔 가고 싶지 않아요?”


대답을 듣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 학교에 온 건 간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계획과 조금 다른 길 위에 서 있지만,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고 1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진로가 조금 바뀌었죠.”


누구나 계획대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다. 그녀는 지금 어머니와 쌍둥이 언니와 산다.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의 인생을 조금 다르게 바꿔놨다. 충격에서 헤어나왔을 때 집 안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녀와 그녀의 쌍둥이 언니는 취업을 먼저 선택했다.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취업이 곧 ‘필수’였다.


“언니도 병원에 취업한 상태에요. 기회 되면 언니와 제주도 여행 다녀오고 싶어요.”


이제 좀 한가해졌다.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 그녀는 첫 월급을 타면, 어머니께 내복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남들 다 하는 선물이지만, 자기도 꼭 엄마에게 해주고 싶단다. 그러나 그날도 멀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인터뷰 후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여고생답게 포토샵을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 아직 어리기만 할 것 같은 그녀였는데 말해보니 차분하고 당당했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서울시 예비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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