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영어, 독일어...어떤 말로 진료할까요?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발행일 2012.02.13. 00:00

수정일 2012.02.13. 00:00

조회 4,978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외국인들이 이렇게 한의학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나 싶었다. 병원에는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 환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방금 들어간 외국인 환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병원에 비치된 영문잡지를 펴는데 오늘 인터뷰할 그 분의 얼굴이 실려 있다. 1987년. 오스트리아령 알프스에 살던 청년은 미지의 나라 한국에 배낭여행을 온다. 그리고 태권도를 배우다가 발목을 삔다. 그때 도장 사람들의 권유로 맞게 된 침이 신세계를 열어준다. 몇 년 뒤 청년은 아예 짐을 싸서 다시 이곳에 온다. 어학당에서 말부터 배우고, 동양철학 학부를 거쳐, 어렵사리 들어간 한의대에서 독한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2012년. 청년은 진료 경력 20년이 넘는 중견 한의사가 되어 대한민국의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는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그 공로로 2010년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한, 아직까지도 서양인 한의사로는 유일무이한 라이문드 로이어 원장(48)과 100% 한국어 인터뷰를 하고 왔다.

하루에 진료를 보는 환자는 몇 명인가?

보통 하루에 20~30명 사이다. 대부분 외국인이다. 물론 한국인 환자도 있다. 대부분 외국사람이 치료 받다가 좋아지니까 소개해서 온 사람들이다.

운명이나 인연이란 말을 믿는가? 배낭여행을 왔다가 태권도 도장에서 발목을 다치고 그 바람에 결과적으로 한의사가 되어 한국에서 살게 된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한데...왜 동양이었나?

흠~(깊은 숨) 인연이란 것, 생각 좀 해보긴 했다. 하지만 꼭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생각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소위 시간, 크게 볼 때는 역사, 이런 게 항상 흐름이지 않은가. 뒤에서부터 '땅~' 하고 당기면 뭔가 전달되고 진행되고 변화되는 것. 차라리 원인과 결과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내가 그때 하필 왜 동양에 갔을까?

나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독일이건 네덜란드건 유럽 사람들도 집을 사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할 정도로 아름다운... 하지만 난 이해가 안 갔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굳이 여기 와서 왜 살까? 나한테 그곳은 너무 작은 그릇이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어릴 때부터 난 이미 알았으니까. '여기서 살 수 없다. 난 넓은 데 나가야 된다.' 마침 그때 유행하던 브루스 리 영화를 보면서 동양에 대해 살짝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중국은 그 당시 개방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은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물가가 굉장히 비싸다는 얘기가 있었다. 학생이 돈이 있나(웃음). 마침 오스트리아 방송에서 88 올림픽 준비 단계를 소개하며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데모 많이 했지 않나.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어디 가나 최루탄 냄새밖에 없었다. 하여튼 한국에 일단 왔다.

그 다음부터는 많이들 알고 있는 스토리다. 태권도 하다가 다치고 침 맞고 신기해 하고...신기하지 않겠는가? 아니, 발목을 다쳤는데 상식적으로는 뭘 하든 발목에 해야 하는데 손과 여기저기 침을 꽂고 발목에는 치료도 안 한다. 방법도 신기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바로 시원해졌으니까. 도대체 어떤 원리로 치료한 건지 그때 한방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24살이나 됐을 때다. 그래서 이런 거 공부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게 한의사로 일하면서 한국인의 건강에 어떤 변화를 느끼는가?

옛날에도 있었겠지만 스트레스가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소화질환도 많아졌고, 특히 척추질환이 많아졌다. 생활패턴 때문이다. 갈수록 앉아서 일을 많이 하고 컴퓨터 대면하면서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척추질환이 옛날에 비해 많아진 것 같다. 특히 젊은 환자들이 늘었다. 옛날에는 노인들이 퇴행되니까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고 그랬는데 지금 우리 병원 1층에 내려가서 환자층을 둘러보라. 20대, 30대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한 한국인의 건강 변화에 대해 일간지에 한글 칼럼을 쓴 적이 있지 않나. '빨리빨리 음식문화가 위장병 부른다'거나 '시멘트 숲에 갇힌 아이들이 아토피 고생하는 건 당연하다'는 주제의 글이 재미있다.

혼자 쓴 건 아니다. 물론 내가 쓰긴 한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다. 영문잡지 에는 영어 칼럼을 8년 넘게 기고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 내가 쓴다(웃음).

한국사람도 하기 어려운 한의학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했나?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영어사전, 옥편, 한독사전, 독한사전 등 사전 여러 개를 매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상상해보라. 한국어 강의를 들으면서 책상 위에 사전들을 여러 개 펼쳐놓고 찾아보는 모습을...다행히 영어원서는 내가 그나마 한국 학생보다 조금 나았다. (웃음) 내 영어 실력은 한국에 와서 아주 많이 늘었다(그의 모국어는 독일어다). (웃음) 사실 나는 바늘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어릴 때도 예방접종 하면 얼굴이 창백해졌는데, 한의대 실습시간에 침만 보면 사람들이 그랬다. "야, 너, 지금 얼굴 또 창백해졌다." (웃음) 물론 지금은 스스로도 침을 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항상 외국인 한의사 1호, 유일한 서양인 한의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의료관광이나 한국 한의학의 세계 전파에도 앞장서고 있는데 어쩌면 부담도 될 것 같다.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좋아하는 일이다. 정부가 지원하기 시작한 게 이제 3~4년쯤 됐는데, 나는 한참 전부터 언론과 만나거나 공식행사를 갈 때마다 한의학을 세계화 하자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갑자기 너무 많아져서 정신이 없다. 보건복지부, 서울시, 한국관광공사 그리고 강남구까지 모두 보고서를 내라고 한다(웃음). 총괄하는 곳을 정해 좀 더 효율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한국인 아내와는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

한국 여행 처음 왔을 때 거의 초창기에 만났다. 와이프의 오빠와 먼저 친구가 됐고, 그 집에 초대받았고, 갔더니 여동생이 있더라. 영어도 좀 하더라(웃음).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겠다는 자녀도 있는가?

지금 독일에서 7학년으로 다니고 있는 아들이 한의사가 되겠다고 한다. 걔가 잘 먹어서 체를 잘 하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침을 놔줬다. 본인도 속이 안 좋으면 '아빠, 나 침 놔줘'하고 온다. (웃음)

알프스의 고향마을이 그리울 때는 없는가? 가끔 복잡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때는?

20년 넘게 고향을 멀리 떠나 있으니 갈수록 그곳의 자연이나 풍경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와이프하고 오스트리아 고향에 휴가를 가면 처음에 한 일주일 동안은 '와, 진짜, 역시'란 말이 나온다. 너무 좋다. 조용하고, 공기도 물도 깨끗하고, 산에 올라가면 끝내주지...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까지 세상 다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다음 2주째 되면 '아, 친구도 만났고, 여기도 가봤고, 저것도 했고, 이젠 뭐하지?' 좀 심심하기 시작한다. 3주 지나면 지겨워 죽겠다(웃음). 거기서 살라고 하면 아마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는 힘들고 고된 직업이 아닌가. 본인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힘들다는 생각을 안 한다. 보람이 많은 일이다. 사람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면서 나아지게 하는 데서 큰 행복감을 느낀다. 아마도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일단 시작하면 계속 봉사하는 것 같다.

끝으로 한의사로서 혹은 인간 라이문드 로이어로서 꿈이 있다면?

(한참 먼 곳을 쳐다보다가) 꿈...많다. 일단 계속 한의사 하고 싶다. 거기서 나아가서 5년 안에 내가 습득하고 아는 이 기술, 의술을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자들을 키워낼 것이다. 아예 규모 있게, 의미 있게 국제한의대 또는 국제통합의대를 만들고 싶다. 거기에 전 세계의 대체의학, 예를 들면 우리 한의학뿐 아니라 인도의 아유르베다까지 분야별로 최고의 명의들을 모셔와서 대체의학을 공부하려면 한국이 떠오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세계 대체의학의 '하바드' 같은 곳을 만드는 거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길에 같은 부부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어 물었다. 혹시 가족 사진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리라쿠마 캐릭터가 그려진 아기자기한 엽서에 쌍둥이로 보이는 아기를 안은 외국인으로 보였다. 로이어 원장은 자신에게 와서 불임치료를 받은 뒤 쌍둥이를 임신하고 건강하게 분만하여 지금은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는 일본인이라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과연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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