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체인지! 한 아이가 나의 삶에 들어왔어요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발행일 2011.06.01. 00:00

수정일 2011.06.01. 00:00

조회 4,249

 

감히 말한다. 자원봉사의 미래를 보고 왔다. 어른들의 욕심이나 선입견이 문제이지 우리의 아이들은 애초부터 순수하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고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자원봉사가 사람과의 만남임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청소년들은 아직 말랑말랑한 생각 주머니와 마음 보따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하고 왔다. 아니, 이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면 절대 실례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멘티에게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 찬 이 멘토 학생들은 준비된 선생님이다. 지난 5월 27일, 강동구자원봉사센터 소강의실을 빌려 진행되는 한영외고 학생들의 멘토스쿨 자원봉사 현장에 다녀왔다.

보드게임과 만화책 그리고 아이스크림 소동이 있는 교실을 가다

거 참, 교실 분위기 한 번 묘하다.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 앉아 보드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부루마블 판은 바로 옆에도 그 옆에도 벌어졌다. 또 다른 책상에서는 제자가 만화책을 살랑살랑 넘겨가며 선생님의 질문에 드문드문 답하고 있다. 옆 교실로 가보니 1시간 수업을 후딱 끝내고 대부분의 선생님과 제자들은 출타 중이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나갔단다.

유일하게 교실에 남은 선생님과 두 명의 제자를 보아 하니, 좌측 제자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그 와중에 우측 제자는 선생님의 휴대폰으로 모바일게임에 열중하며 묻는다. "누나는 돈도 없어?" 질문에 그다지 악의는 없어 보인다. 대답도 경쾌하다. "응. 없어." "원래 없어?" "응." "왜 없어?" "근데 너, 나한테 뭐 사준 거 있냐?" "없지." 복도로 나가니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제자가 한 선생님에게 와락 달려들어 품에 안긴다. "언니~!"

고등학교 1, 2학년 선생님과 초등학교 4~6학년 제자들. 한영외고 재학생들과 명진들꽃사랑마을 아이들이 매주 금요일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멘토와 멘티로 만나는 '세빛또래 멘토스쿨' 현장이다. 이들에게는 노는 것마저도 수업이다. 3월 29일에 깃발을 꽂았지만 중간에 시험기간이 껴서 만난 횟수는 이제 5회차란다. 그래서 멘토와 멘티는 함께 더 잘 공부하기 위해서, 지금 신나게 친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인 것이다. 아니, 언뜻 보기에 멘토들은 어떻게 하면 내 멘티 동생이랑 더 잘 놀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교사와 엄마가 시작한 봉사모임, 이렇게 커질 줄 아무도 몰랐다

딱딱하게 굳은 보통 어른의 머리로는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철저한 시간관리 속에서 자라나는 요즘 아이들이 그 바쁜 스케줄을 할애해서 한가하게 놀러올 리는 없지 않은가. 알고 보니 멘토스쿨은 햇수로 4년째 역사를 갖고 있었다. 2008년에 한영외고 학생 6명으로 단촐하게 시작한 봉사 모임이 점점 조직화되면서 지금은 무려 1,037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가 움직이는 '강동청소년봉사단 세빛또래(이하 세빛또래)'의 모태가 됐다고 한다.

"아마도 서울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민간 청소년봉사단으로는 가장 클 거예요." 세빛또래를 탄생시킨 3인방 중 한 명으로 지금도 봉사단을 총괄하고 있는 최영애 단장이 말한다. "그만큼 의외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죠.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든...그런데 아이들이 막상 봉사단체를 못 찾아요. 기관에 찾아가서 봉사할 것 있음 주세요, 해도 휴지 몇 개 줍고 그냥 가라는 게 대부분이죠. 물론 몸으로 땀 흘려 봉사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죠. 저희도 아이들을 태안에도 보냈고, 꽃동네나 해비타트에도 보냅니다. 하지만 (한영외고 아이들은) 중학교에서 현수막 걸고 온 아이들이잖아요. 영어나 수학은 기본이고,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 특기도 있고, 해외에서 살다 온 아이들도 많죠. 사촌동생이나 옆집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는 경우도 많은데, 기왕이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아이들한테 가르쳐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3년 조금 전 일이다. 지금은 졸업한 최 단장의 둘째 아이가 한영외고에 막 입학했을 때 허건성 교사와 뜻이 맞아 일단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조촐하게 멘토링 봉사 모임을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tpqlc)도 만들었다. 그런데 아들을 통해 학생들이 참가 의사를 전해왔고,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도 참여하면 안 되겠냐며 카페에 글을 남겼다. 한영외고 학생뿐 아니라 강동구 일대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모여들었다. 난감했다. 봉사할 사람은 남아도는데 봉사할 단체가 모자라는 형국이다 보니 허 교사와 최 단장은 매번 허덕이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다고 미안하다, 봉사할 곳이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최 단장도 허 교사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봉사에 매달렸다. 초창기 때 함께 세빛또래를 일구었던 엄마들은 작년까지 다섯이 남았다가 그나마 자녀들이 졸업하면서 떠나가고 최 단장만 남았다. "완전 바보 아줌마죠(웃음). 저보다 허 선생님이 더 심하세요. 사모님이 선생님이랑 같이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우리가 감사드린다고 농담할 정도예요. 하지만 멘토 아이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하거나 고맙다고 할 때면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는 걸요. 최근에는 강동구자원봉사센터 교육강사 양성과정도 들었어요. 강사 수업도 나가고 있는데 ppt자료를 만들 때 이미지 캡쳐를 도와달라고 우리 아들에게 부탁하면 그러죠. 엄마, 치매는 안 걸리시겠어요(웃음)."

현재 세빛또래에는 청소년 자원봉사팀이 18개 있다. 그 중 멘토스쿨은 10개팀이다. 각각 강동구 내의 지역아동센터나 도서관이나 재활원이나 보육원 등과 인연을 맺고 저소득계층, 다문화가정, 조손가정의 자녀들이나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초등학생들과 일대일로 짝을 지어 문제집을 풀거나 숙제를 도와준다. 하지만 학습지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서지원 멘토링이다. 엄마아빠나 선생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 또래 친구들에게는 의논할 수 없는 것도 나이 차이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만만한' 언니오빠들한테는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세빛또래 멘토스쿨에서는 소풍도 가고 박물관도 간다. 작년부터는 교환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멘토와 멘티,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일기다. 그제서야 오늘 저녁의 분위기가 이해가 갔다.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하고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여기에 있었다. 

한영외고 허건성 선생님과 최영애 단장

내 멘티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금요일

멘티들이 돌아가고 나서 한 쪽 교실에 멘토들이 모두 모였다. 이제 1학년이라 처음 하는 봉사활동인 데다 초창기라서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걸 감지한 선생님이 함께 고민을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소집하신 자리다. 멘토스쿨 시작 시간이 6시 30분인지라 저녁식사도 거르거나 대충 때운 학생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조금은 걱정도 됐다.

예상과 달리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멘티가 많이 어색해 하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고 피하고 그랬었는데,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다가오고 오늘은 사탕도 갖다 줬어요. 오늘 보드게임 같이 했는데 재미있게 잘 놀 수 있었어요." 조금씩 천천히 마음을 열고 있다는 얘기다. 허선생님이 물으신다. "이 아이와 언니로서 형으로서 계속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나?" 답은 대부분 긍정이다.

반면 속을 끓인 학생도 있다. "제 멘티가 아직까지도 마음을 안 열어서 속이 많이 상했는데요. 지난 시간에 처음으로 손을 잡고 얘기도 해서 앞으로 정말 친해지고 잘 해줘야지 했는데... 오늘 안 온 거예요. 이제 시험기간 되면 또 잠깐 못 만나는데..." 저런 심정 남의 얘기가 아닐 것 같다. 웃음도 터져나오고 위로의 감탄사도 연발한다. 당사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하지만 이건 약과라고 한다. 지금은 2학년이 된 작년 멘토스쿨의 한 학생은 펑펑 울기까지 했단다. 멘티도 마찬가지. 멘토 언니나 형이 예고 없이 안 나타나면 심한 상처를 받는다. 허 선생님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위로해준다. "그 아이가 마음을 일단 열면 달라질 거야.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또 다른 학생이 마이크를 잡는다. "지난 시간에 뭘 하고 놀까 물었더니 제 멘티가 갑자기 공부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 제가 못하는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거예요. 영어는 100점 맞았는데 수학은 못 맞았다면서(좌중 감탄). 그래서 제 용돈을 털어서 문제집을 샀어요(좌중 웃음). 그런데 요즘 초등 수학이 장난이 아니거든요(또 웃음). 어쨌든 열심히 공부해서 숙제를 내줬더니 다음 시간에 숙제를 다 해왔어요. 이제 집에 가면 문자가 와요. 언니,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 라고. 학교에서 찍은 사진도 보내주고요. 이 아이가 나를 통해서 '저 언니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가서 남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됐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박수가 터져나온다. 그런데 희망사항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이들의 선배인 고동연 군은 지역아동센터에서 고3때까지 3년간 꼬박 멘토스쿨 봉사를 통해 한 멘티를 가르쳤고, 그 멘티는 결국 형을 모델로 삼아 한영외고에 입학했다. 멘티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멘토의 삶 역시 이미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9시가 넘었다. 기념사진 촬영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눈빛을 보면서 그 흔한 '행복 바이러스'란 말이 촌스럽게도 자꾸만 떠올랐다. 하지만 사진 프레임 속의 그들을 쳐다보는 찰나의 순간, 한없는 부러움이 몰려왔다. 그들의 곁에는 공기처럼 물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한 선생님이 있고, 내 아이를 좀 더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소박한 모성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로 사랑을 키워간 한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분. 흔쾌히 장소를 제공한 덕분에 매주 금요일은 꼬박꼬박 야근을 일삼게 된 강동구자원봉사센터의 김수영 선생님도.

 

세빛또래 멘토스쿨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에게 자원봉사는 꿈을 이루려고 하는 단계이다. … 신현종
나에게 자원봉사는 한 아이가 나의 하루하루 삶에 작은 존재로 들어오는 것이다. … 강예은
나에게 자원봉사는 학교 밖에서 하는 또 다른 공부다. … 허은
나에게 자원봉사는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 2학년 임채란
나에게 자원봉사는 따뜻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 한지선
나에게 자원봉사는 사랑을 나누는 곳, 배운 것을 실천하는 곳이다. … 안정아
나에게 자원봉사는 내가 커나가는 곳이다. … 최서영
나에게 자원봉사는 나의 능력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는 곳이다. … 정수연
나에게 자원봉사는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 유형주
나에게 자원봉사는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활동이다. … 김수현
나에게 자원봉사는 지금까지는 접해 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교육 현장이다. … 2학년 백승희

* 학년을 따로 표시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한영외고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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