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방과후교실의 인기짱 할머니 선생님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1.05.26. 00:00

수정일 2011.05.26. 00:00

조회 7,460

 

요즘 자원봉사라는 말과 함께 짝꿍으로 잘 따라다니는 말에 재능기부가 있다. 여기 그 재능기부에 관해 정말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다. 아니, 타고난 재능을 그냥 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재능을 키운 경우다. 몇 줄 안 되는 동화책이지만 파고 또 파며 공부하고, 연관지식을 샅샅이 뒤지고, 아예 구연동화 자격증까지 따버린 할머니들. 그들의 강물 같은 사랑이 콩나물 같은 우리네 아이들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교실에 김영옥 시민리포터가 다녀왔다.

"조그만 부엌에서 누군가 버터를 바르고 있어. 빵은 정말 놀라워. 땅이 밀을 키웠고, 밀이 밀가루가 되어 놀라운 일이 생긴 거란다. 놀라운 일은 생기고, 생기고, 또 생기니까. 파이랑, 고양이랑, ……. 그리고 너. 넌 아니? 너도 예전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그랬는데 네가 생겨 난 거야. 빵처럼, 새처럼, 비처럼.’ 은평구 역촌초등학교 1-1반 교실에서는 매주 화요일 1시부터 2시까지 동네 할머니들이 전하는 이야기 보따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날마다 날마다 놀라운 일이 생겨요>(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코코 다울리 그림). 교실에 앉은 1학년과 2학년 아이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다. 동화 구연에 나선 노옥녀, 김봉조 할머니 선생님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시끌시끌하던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멈추고, 아이들은 이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매주 아이들을 찾아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뿐 아니라 어떨 땐 신기한 마술도 보여 주고, 재밌는 놀이 교구도 만들어 주고, 책 속에 나온 동물들이랑 꽃, 새들을 알록달록한 점토로 만들어 보여주곤 한다.

오늘은 더 특별한 날. 재미있는 동화도 듣고, 책에 나온 내용 중 밀이 밀가루가 되고 쿠키가 되는 과정을 직접 해 보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앞치마에 머리수건까지 예쁘게 두르고 할머니 선생님들이 들려주신 동화를 듣고 난 후, 선생님들이 준비한 재료로 맛있는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과자로 만들어질 밀가루 반죽이 한 덩이씩 아이들의 책상 앞에 놓이고, 동화구연 할머니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쿠키를 만들고 쿠키 위를 초콜릿으로 장식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건 이렇게 해 보렴. 에구 잘 만들었네......” 쿠키를 구워내는 이동식 작은 오븐에서는 연신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재미있었어요. 집에 가서 엄마랑 만들어 볼래요. 내가 만든 쿠키도 드릴 거예요.”(2학년 7반 오경준), “동화도 재미있고 쿠키 만드는 것도 짱 재미있었어요.”(1학년 1반 강지오), “엄마한테 자랑할 거예요.”(1학년 4반 임다혜) 어느 사이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손에는 작은 쿠키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매주 화요일 역촌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학교 학생들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 봉사단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의 이 같은 활동은 벌써 2년째를 이어오고 있다.

시작은 2008년이었다. 은평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지역에서 활동할 구연동화 자원봉사자들을 키워내고자 주민 30명을 모아 12주간 기초 교육을 받게 했다. 그 때 교육을 맡은 주경선 강사는 동화 몇 개 아는 정도로 아이들이 모인 현장에서 동화구연을 원활하게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구연동화를 시연할 기회를 수강자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생들 중 자신이 맡고 있는 문화학교와 방과후교실에서 동화구연을 함께 진행할 자원봉사자들을 뽑게 됐는데, 기다렸다는 듯 동참한 이들이 바로 지금의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 회원들이었다.

평균연령 칠십을 훌쩍 넘겼으나 너무도 열정적인 할머니 4명은 끝까지 남아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기초 과정을 이수한 후 복지관에서 동화구연 자원봉사를 하면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갈현자치센터와 색동어머니 동화구연가회를 찾아다니며 구연동화를 심도 있게 공부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3~1급 자격증과 지도자 과정까지 두루 섭렵해 자격증을 땄다. 어려움도 많았다. 나이가 있다 보니 동화를 암기하기가 쉽진 않았다. 더불어 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 줄 때 이야기 이외에도 동화 속에 나오는 동물과 식물 등 다양한 사실에 대한 이야기들을 연결시켜 일러줘야 했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양이 만만치 않았다. “다시 하라면 못하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회고한다.

12주간 구연동화를 공부하면서 만난 주경선 강사의 할머니 제자 사랑은 유별났다. 자신이 맡고 있는 강좌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머니 제자들이 동화구연을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물론 시험을 앞둔 할머니 제자들이 연습할 수 있는 장소로 혹은 동화에 따른 교구들을 제작하는 장소로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의 지하공간을 기꺼이 내주었다. 이같은 물심양면의 지원으로 할머니 제자들은 동화구연의 길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고, 이후로도 그는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의 봉사현장에 늘 함께 나와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있다. 회원들은 주경선 강사의 지지와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도 없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열정 그리고 공부 욕심이 남다른 할머니 학생 4인방의 무던한 노력은 소중한 자격증을 그들의 가슴에 안겨준 것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를 줬다. 자신감과 보람, 행복, 사랑 등을 덤으로 안겨줬기 때문이다. 그들이 봉사를 하고 있던 신사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관심과 인정도 받게 됐다. 그들의 활동을 눈 여겨 본 복지관에서는 2009년 3월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활동을 지원하게 됐다. 2010년에는 경사가 거듭 찾아왔다. 자원봉사를 열심히 한 덕에 신사종합사회복지관 관장상과 은평구청 봉사상 은상을 탔고,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을 찾는 곳이 더욱 늘어났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던 역촌초등학교에서 방과후교실 프로그램의 하나로 구연동화를 봉사단에 의뢰했다.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활동을 잠시 접은 한 명의 회원을 제외하고 노옥녀 단장과 김봉조, 허순자 구연동화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곳 역촌초등학교에서 손자 같은 1, 2학년 아이들을 매주 만나고 있다. 현재는 제일교회 방과후교실, 신사종합사회복지관 방과후교실에서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연동화와 마술을 접목시켜 아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고 있는 허순자 할머니 선생님, 동화 속에 나오는 동물이며 꽃 등을 점핑클레이로 뚝딱 만들어 보여 아이들을 감탄하게 하는 노옥녀 할머니 선생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동화뿐 아니라 더 풍부하게 각색된 많은 이야기들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돋우는 김봉조 할머니 선생님의 동화구연은 매주 다른 색깔로 아이들을 찾아가고 있다.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의 명성을 익히 알고 얼마 전부터 동료가 된 김경숙, 이재원 할머니 동화구연가 선생님들의 합류로 더욱 탄탄한 인력구조까지 가지게 됐다. 흥미로운 독후 활동도 많이 개발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 동화구연가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에 물었습니다!

왼쪽부터 동화나라 옹달샘 봉사단의 허순자와 김봉조 회원, 주경선 강사, 노옥녀 단장, 이재원 그리고 김경숙 회원, 신사종합사회복지관 김보경 팀장

나에게 자원봉사는 감사다. … 노옥녀 단장
"활동하면서 얻는 것도 많고 이 나이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무척 감사하다."
나에게 자원봉사는 사랑이다. … 허순자
"사랑 없이는 아이들과 만날 수 없다."
나에게 자원봉사는 과정이다. … 김봉조
"남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내가 많이 배우고 내가 좀 더 커가는 과정이다."
나에게 자원봉사는 보람이다. … 김경숙
"동화구연을 맡아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잘 전달해 성공했을 때 무척 보람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일 수 있는 내 인생을 보람되게 한다."
나에게 자원봉사는 재능기부다. … 이재원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작으나마 주위에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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