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면 무조건 내보내요. 갈 데 없는 애들을…”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신운영

발행일 2011.11.22. 00:00

수정일 2011.11.22. 00:00

조회 3,587

박윤산 회장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고3 A군은 요즘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가는 것이 두렵다. 밥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현행 아동복지법상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A군은 갈 데가 없다. 스스로 먹고 살만한 돈벌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기댈 수 있는 건 퇴소 시 받는 300여만 원의 자립정착금이 전부. 그러나 이 돈으로는 방 한 칸 마련은커녕 당장 끼니 때우기도 힘들다.

전국에는 240여개 보육원에 2만여 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 중 매년 1천여 명 정도가 A군처럼 대책없이 보육원에서 등 떠밀려 나간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보육원 퇴소생들의 안전한 사회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둥지만들어주기운동본부(이하 둥지) 박윤산(52) 회장을 만나봤다.

-둥지가 퇴소 청소년들을 돕는 민간단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인 김유권 씨와 소설가 한만수 씨가 시설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퇴소생들의 사연을 알게 됐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정부에서 돌보지 못하는 틈새를 메워보자 해서 여럿이 힘을 합쳐 이 단체가 출범했지요. 설립한 지 7년째인데 아이들을 위한 임대주택도 여태 마련을 못했습니다. 관여 인사들이 주로 문화예술인들이라 돈이 없는데다가 회장인 제가 드러내놓고 나서서 활동하는 것을 꺼리다보니 경제적인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되더군요. 주로 지인들의 후원을 받아 어렵게 살림을 꾸려왔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퇴소 청소년들 상황이 열악하다면서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살 길이 막막합니다. 찾아갈 가족도 없고 정착금은 너무 적고…. 여차하면 노숙자가 되기 십상이죠. 시설 원장들도 마음 아파해요. 내보내봤자 갈 데 없는 애들인 거 다 알거든요. 그렇지만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고 시설은 한정돼 있으니….

아동복지시설에 있는 애들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요? 탈북 청소년, 다문화가정 아이들까지 두루 신경을 쓰면서 이 아이들한테는 너무 무심합니다. 최소한 자립할 때까지는 돌봐줘야 지요…. 출산율 낮다고 걱정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잘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고등학교만 보내주고 할 일 다 한 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밥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요.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대졸자도 취업이 안 되지 않습니까.

사회단체들도 이쪽에는 별로 관심을 안 둬요. 이게 도와줘도 크게 표시 나는 일이 아니다보니 그런가봅니다. 매스컴도 외면하긴 마찬가지예요. 노무현 대통령 때 영부인이 ‘떠다니는 배’(시설아동들의 시를 모아 만든 시집)를 읽은 후 눈물을 흘리면서 좋은 운동으로 발전시키라고 격려를 해줬는데 그 때 한두 번 다루어 주더니 그걸로 관심 끝입니다.

시설 퇴소생들의 정착을 위한 법률개정을 위해 서명운동 중인 박윤산 회장
둥지문학상 시상식 및 후원의 밤 행사

-퇴소한 이후에 자립한 사람들이 있기는 한가요?

▲퇴소한 청소년들의 진로는 누구도 모릅니다. 통계도 안 나와 있어요. 사회로 나간 아이들이 몇 명이나 제대로 정착을 했는지, 뭘 하고 사는지…. 시설 쪽에 알려달라고 해도 알려주지를 않아요. 원장들도 간혹 연락이 오는 애들 말고는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도 학창시설부터 왕따를 당해 시설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감추고 싶어 해서 연락 오는 경우가 드물어요. 정부에서도 시설을 떠나면 역할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그 아이들을 신경 안 써요. 정말 심각합니다.

-정부지원 확대를 위해 서명운동을 했다는데?

▲2006년부터 3년간 퇴소생들이 사회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법률개정’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대학입학금 및 학자금 지원, 자립지원 및 센터 확대 운영, 직장 알선과 직장 기숙사 제공, 임대 아파트 우선 입주 보장, 전세자금 저리 지원 등의 입법화를 건의했지요.

현행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법에서 고아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습니다. 아동복지법에서도 시설 퇴소자들을 위한 법안은 거의 없고요. 국가는 이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보살펴야할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오히려 법적으로 차별받고 있어요.

정부에서 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애로사항을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숙식문제 해결은 정부임대주택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어요. 그것을 지역별로 안배를 해서 합숙을 하도록 해 주는 거죠. 스스로 전세자금을 마련해 독립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한국폴리텍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거기는 기숙사가 있고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으니 자립에 큰 도움이 되지요. 부모 없는 아이들은 약자 중에서도 약자 아닌가요? 몇 년 만 더 보살펴주면 자립해서 세금도 내고 치안도 안정될 수 있을 텐데 결정적인 시기에 국가나 사회가 손을 놓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문학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둥지문학상도 만들었다면서요?

▲제가 어릴 때 생각을 해보면 예전 고아원생들은 강인한 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실정입니다. 시설에서도 관리, 보호는 잘 해주지만 정서적인 안정이나 꿈을 가지게 해주는 데는 좀 미흡한 것 같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돕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문학아카데미는 우리 홈페이지에 작품을 올리면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원하면 오프라인 강연을 통해 작가들과 직접 만나기도 합니다. 한만수 작가를 비롯한 문학인들이 거주지 인근의 시설에 들러서 문학지도도 하고 있습니다. 둥지문학상은 올해 4회째 수상작을 냈습니다. 지난 12일에 서울대에서 시상식을 했어요.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1회, 2회 때 수상작을 모아 책도 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이번에 서울시에 둥지를 사단법인으로 접수 시켰습니다. 작년에 보건복지부에 신청을 했는데 안 내주더군요. 규모가 작다면서…. 정확히 알아본 다음 선별해서 내주면 될 텐데요. 서울시에 가서 하라고 하더군요. 사단법인이 되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고 기업체 후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임대주택 마련 등 실질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학 쪽으로도 지원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둥지문학상을 1회 하고 나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꼈어요. 또 아이들의 처지를 더 깊이 알게 되니까 도와줘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기고요. 시설 아이들에게 문학수업을 상시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주고 문학인들과 1:1 자매결연을 맺게 해서 아이들의 멘토가 되도록 해 줄 생각입니다. 그동안 문학아카데미를 운영해보니 산만했던 아이들이 좀 더 집중력이 강해지고 상을 제정하면서 책을 보는 아이들도 많아지더군요. 책을 본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올바른 인생관이 정립될 수도 있고요. 그런 변화의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입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옛날에는 다 어려웠으니까 동병상련이라고 남의 아픔에도 공감을 했는데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들추어내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고요. 시설 아이들도 떠들어봤자 자기네한테 도움 되는 것 없으니까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냥 두면 평생 그런 식으로 음지에서 살아가게 되겠지요. 부모가 버리고 국가가 버리는 꼴이 되는 겁니다. 이 사회에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희망이 없어지고 있다는 건 정말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반사회적, 반국가적 인물이 되어 치안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시민들이 둥지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레크레이션이나 각종이벤트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진행봉사, 이벤트 활동보조, 자료정리, 시설방문, 캠페인 참여 같은 노력봉사와 문학창작지도, 퇴소아동상담, 구연동화, 음악이나 미술치료 등의 전문봉사가 있습니다. 퇴소 청소년들의 후원자로 활동하는 길도 있지요.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는 정기후원, 후원자 임의지정, 또는 결연관계를 맺어 기부하는 특별 후원이 그것입니다.

문의 : 한국둥지만들어주기운동본부 (http://www.koreadungji.org) ☎(02) 2677-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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