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구조대 수난사

하이서울뉴스 조선기

발행일 2011.10.11. 00:00

수정일 2011.10.11. 00:00

조회 3,569

 

지하철 무가지였던 것 같다. 졸린 눈으로 신문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눈에 띄었던 기사 하나. 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됨에 따라 지하철 투신은 줄고, 한강 투신이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지하철 투신자가 줄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들이 결국 한강에서 뛰어내린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그래서 수난구조대를 찾았다. 영등포소방서 수난구조대 김범인 부대장님(50)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수난구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틀니 구출 작전

재미있는 얘기부터 하자. 아무래도 한강에서 오래 근무하다보니 별의별 사건사고가 많았을 터였다. 에피소드를 물었더니 틀니 이야기를 꺼낸다. 

"한강에서 틀니 찾아봤어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한강에서 틀니 찾는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시민 한 분이 한강에서 메기를 잡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큰 메기가 잡혔단다. 그 순간 크게 기뻐하다 틀니가 한강으로 빠졌다고.

"그래서 구하셨어요?"
"구했죠. 틀니가 빠진 위치를 정확히 말씀해주셔서 찾을 수 있었어요."
"고생하셨겠네요. 찾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수난구조대의 철칙이 있다.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출동하는 것. 아무리 작은 신고라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던 이들이 틀니를 구한다니 듣는 입장에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구조대원들의 배꼽떼기

“물속에서 시체 만져본 적 없으시죠? 섬뜩해요. 말로 다 못하죠. 특히 처음 구조하는 친구들은 그 두려움이 말도 못해요. 보통 여기 구조원들이 해병대나 특전사 출신들이 많아요.  훈련을 많이 했는데도 실제 상황에선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끼리는 첫 구조활동을 배꼽뗀다고 하지요.” 

그렇게 구조대원들의 배꼽떼기가 끝나면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처음이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발을 떼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능수능란하게 움직인다.  

“간혹 동료 다리를 잡고 나오는 친구도 있어요. 안보이니까 무조건 잡히는 거 잡고 나오는 거죠. 또 어떤 친구는 마대자루를 사람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물속이 어둡다 보니 초보 구조자들의 웃지 못할 실수도 종종 일어난다. 실제 물속에서 마대자루를 보면 사람이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그런 실수를 줄이려면, 물속에서 자신의 눈을 믿어서는 안된다. 직접 만져보고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

"우리는 프로니까요. 사람을 구하는데 실수가 없어야죠. 그래서 대원들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너희들은 사람을 살리는 프로라고."

할머니들의 투신

투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요즘 할머니들의 투신이 늘었단다. 할아버지도 아니고 할머니라니. 구조자 입장에서 개인사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편찮으신 분들이 많고 살아서 나오더라도 가족이 돌보지 않는 분들이 많단다. 어떤 분은 어렵게 구조돼서도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신다고. 

의외였다. 청·장년층의 죽음은 뉴스를 통해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노년층의 자살이라니. 아무래도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 병이 된 것은 아닐까. 게다가 죽고 싶다는 마음까지 먹었으면서 끝끝내 자식들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연락을 회피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출동 하루 8건, 신기록 달성~ 

“올해가 가려면 3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380건 정도 출동했네요. 지난해 378건 접수됐으니까 벌써 작년기록을 넘어선 셈이에요.”

김범인 부대장은 출동건수를 확인하면서 올해 이렇게 많이 출동했냐며,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그만큼 올해는 그들에게 정신없이 바쁜 해였다.  

“보통 하루에 1건 이상은 출동했다고 보면 돼요. 가장 많은 날은 하루 8건 출동한 날도 있었어요. 지난해까지 6건이 최고였는데, 올해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죠.”

누군가 한강다리에 서 있기만 해도 투신할 것 같다는 신고전화가 들어온다. 한강에 떨어지기 전에 신고가 오면 수난구조대가 출동해 사고에 대비한다. 문제는 실제 누군가 한강으로 떨어졌을 때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렵다는 것. 

"같은 사고라도 여러 명이 신고하면 그 위치가 다 달라요."
보통 물에 빠진 사람을 살리려면 5분 안에 구해야 한다. 신속한 출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고자가 얼마나 정확히 사고 위치를 알려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김범인 부대장은 가로등이나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교각에 보면 가로등이 있어요. 가로등 번호를 알려주면 가장 정확하죠. 그리고 난간에는 먼지가 쌓여있어서 사람이 올라가면 닦이게 돼 있어요. 자세히 확인하면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사고를 목격했을 때에는 그 건너편 건물을 알려주면, 위치 확인하기가 수월하죠. 물에는 지형지물이 없으니까요."

또 그는 여러 가지 인명구조 방법 중에서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패트병 구조방법을 꼽았다. 방법은 1.2L패트병에 물을 1/3 정도 채우고 끈을 묶어 던지는 것.

"가만히 보면, 자신의 수영실력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사고를 많이 당해요. 물을 무서워하고 조심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고 당하는 일이 적죠. 저도 한강에서 16년 일했는데, 일하면 일할수록 물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죠." 

대원들의 죽음 그리고 잔소리

최근 가장 안타까웠던 사건은 지난해 겨울에 있었다. 한강에서 구조활동 중이던 광진소방서 수난구조대 보트가 전복돼 동료 두 명이 순직한 것. 구조대원들은 잠실대교 인근 한강에 시체가 떠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인양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한강에 두 개의 수난구조대가 있어요. 광진과 영등포. 그 친구들, 제가 옛날에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는데…. (한숨) 사건이 있던 날, 저는 정확히 기억해요. 그때 제가 쉬는 날이었는데, 일이 있어서 구조대에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구조대원이 타고 있던 배가 뒤집혔다고 신고가 들어왔어요.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신고가 들어온 걸 보니 예감이 안좋더라구요. 바로 출동했는데, 결국 그 아이들을 제 손으로 물속에서 꺼냈어요.”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느 누가 같이 웃고, 일하고, 어려움을 나누던 동료의 죽음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검고 검은 물속은 구조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매번 느끼지만 한강은 구조자에게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한 장소다. 그 이후로 김범인 부대장의 잔소리가 늘었다. 더 이상 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그의 바람 때문이다. 

두통, 혹은 무딘 사람? 

“어지럽지 않으세요?”
수난구조대는 한강 위에 떠 있다. 물 위에 있다 보니 뭍(?)에 있던 사람은 어지러움을 호소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수난구조대에서 잠을 청하기가 힘들단다. 식당 아주머니도 여지껏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던데….
“보기보다 둔하시군요.”
“보기에도 둔해 보이지 않나요? 하하하”
멋쩍게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출렁거리는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괴물’의 첫 장면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집어삼킬 것처럼 무섭게 넘실거리는 한강. 부디 오늘은 한강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없기를... (*) 

 

엄마,아빠, 저 여기있어요~!

#한강 #수난구조대 #투신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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