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공무원의 ‘인생은 아름다워’

하이서울뉴스 조선기

Visit9,158 Date2011.08.18 00:00


이길용 씨(48). 그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리고 13개의 자격증을 취득한 서울시 공무원이기도 하다. 그에게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무척 쑥스러워했다. 내가 뭐 인터뷰할 사람이 될까요? 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충분히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다. 말이 쉽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단지 일이어서가 아니다. 고요하게 자신의 힘을 키워가는 그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참고로 대화는 메신저로 나눴다. 메신저의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그와의 대화가 조금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조선기 님의 말 :
자격증을 13개나 따셨더라구요. 학교 다녔을 때 공부 잘 하셨을 것 같아요.
이길용 님의 말 :
아닙니다. 원래 머리가 나빠요.
조선기 님의 말 :
아닐 것 같은데요. 솔직히 얘기하셔도 돼요. 1~2등 하셨죠? ^^
이길용 님의 말 :
초등학생 때는 꼴찌였는데 점점 노력했어요.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어요.


그는 다섯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두 살 무렵, 고막이 파열된 이후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얘기해도 잘 듣지 못했다. 형제들 중 청각장애인은 그 뿐이었다. 부모님은 둘째 아들을 위해 큰 병원을 들락거렸고 수차례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우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말썽꾸러기 아들은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기 님의 말 :
자격증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이길용 님의 말 :
청각장애인으로 살다보니 누군가에게 인정받기가 힘들더라고요. 상심하다가 매스컴을 보면서 자격증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격증이 무기입니다.
조선기 님의 말 :
^^; 무기가 너무 많으십니다.
조선기 님의 말 :
자격증 중에서 가장 따기 어려웠던 것은 뭐가 있을까요?
이길용 님의 말 :
열관리기능사, 보일러산업기사요. 독학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학원에 가도 강의를 들을 수 없으니까, 혼자 끙끙대며 씨름해왔습니다.
조선기 님의 말 :
몇 번 떨어지기도 하셨다고요?
이길용 님의 말 :
많이 떨어졌지요.
조선기 님의 말 :
많이? 얼마나 떨어지셨는데요?
이길용 님의 말 :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 30~50번


이쯤에서 그가 딴 자격증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가스기능사 ②사용시설안전관리자 ③위험물관리기능사 ④위험물안전관리자 ⑤보일러산업기사 ⑥자동차정비기능사 ⑦방화관리자 ⑧열관리기능사 ⑨전기용접기능사 ⑩온수온돌기능사 ⑪미장기능사 ⑫온수온돌기능사보 ⑬제빵사 이 중 6개 자격증은 공무원이 되기 전에 땄고, 나머지는 공무원이 되고 나서 틈틈이 공부했다. 공무원 역시 독학으로 공부해 두 번 만에 합격했다. 현재 그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시 차량정비센터는 서울시와 자치구의 청소차량, 제설차량, 사다리차, 소방차 등 3,800여대의 각종 대형 차량을 정비하고 수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한 때 차량 수리를 했고 지금은 보일러와 배관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제 몫을 200% 발휘한다고 할까.


조선기 님의 말 :
사모님이랑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이길용 님의 말 :
아는 선생님이 소개해줬습니다.
조선기 님의 말 :
첫인상이 어땠나요?^^
이길용 님의 말 :
겉보다 속마음이 순수하고 착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보고 키가 작고 미남이 아니라고 해서… 결국 졸라서 장가갔습니다.
조선기 님의 말 :
ㅎㅎㅎ 주무관님이 노력 많이 하셨겠어요. 프로포즈는 하셨어요?
이길용 님의 말 :
하하하. 프로포즈는 생각안나요. 오래돼서요.


1994년 봄, 그는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아가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딸 아이 역시 청각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도 그의 부인도 청각장애자였지만, 유전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집사람이 많이 울었어요.” 그 대답에서 코끝이 찡해졌다. 상심하는 부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조선기 님의 말 :
딸은 어떤 성격인가요?
이길용 님의 말 :
처음엔 소심했는데 점점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딸은 특수교육자가 되길 원해요. 지금 목표를 향해 가고 있어요.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딸내미에요.
조선기 님의 말 :
와~ 멋지네요.
이길용 님의 말 :
말만 잘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죠. ^^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청각장애인 후배를 위해 뭔가 가르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 때문에 문장수준이 부족하긴 한데, 할 수 있는 대로 뒷바라지하고 있습니다.
조선기 님의 말 :
잘 될 것 같아요. 아버지가 워낙 훌륭하니까요. 그리고 아버지가 자격증 공부하는 거 보면 딸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이길용 님의 말 :
그 덕분에 좋은 본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잔소리보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같아요.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했다. 장애를 가졌다고 슬퍼하고 좌절하는 모습보다, 긍정적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쉴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쉬고 싶고 자고 싶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딸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전기기능사’ 공부를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머리가 안돌아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열 네 번째 도전도 언젠가 성공할 것 같다.


조선기 님의 말 :
좌우명이 뭔가요?
이길용 님의 말 :
즐거운 마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즐거운 마음이란 단어가 중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즐거운 마음’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큰일나요.
조선기 님의 말 :
멋지십니다.
이길용 님의 말 :
인간은 태어나면서 잠재력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 잠재력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긍적적 사고를 가지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바로 마음부자입니다.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조선기 님의 말 :
마음부자라는 말 좋은데요.
이길용 님의 말 :
부모님이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겁니다. 마음부자가 되라고 하셨거든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앞으로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다녔던 청각장애인 복지전문기관을 찾아가 기술교육과 진로 조언 등을 하고 있다. 또 중랑구 농아인협회에서 불우이웃돕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뭐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불행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감이 솟는 법이다. 그의 부모님이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게 이런 건 아니었을까.
며칠 뒤 사진 촬영을 위해 그를 만났다. 생각했던 대로 그는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촬영이 어색했을 텐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다양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양춘배 소장님은 “워낙 잘 웃고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며, 이런 분들이 인정받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촬영을 마치고 가는 길.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아름다운 인상을 보여줘서 정말 행복합니다. 즐거운 마음 가지고 가세요. 아자!’
아자! 많이 사용하고 많이 듣던 말인데도, 왠지 모를 에너지가 느껴졌다. 정말 그 한 마디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길용 주무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즐거웠습니다. 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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