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더 재미있는 인생게임 하라는 하늘의 제안”

하이서울뉴스 이효순

발행일 2011.04.15. 00:00

수정일 2011.04.15. 00:00

조회 5,173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49)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지난 4월 16일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서울시 복지상 장애인분야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5년 전 연구 조사 중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입으로 켜고 끌 수 있는 IPTV나 한글음성 인식 기능 등을 개발하고 장애인 교육에 기여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이 있기 며칠 전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그는 “더 어려운 사람들, 더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서울대 교수라는 상징성 때문에 상을 받는 것 같아서 다른 장애인분들께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수상에 대해 겸연쩍어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웃고 농담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제 몸은 사고 후 지금까지 의학적으로 나아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모로 제가 행운의 사나이라 생각합니다. 발레리나나 피아니스트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머리와 심장만 있으면 되는 과학자이니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이만하게 또 있을까 싶어요. 제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을 때려야 통솔할텐데 대학 교수는 논문에 사인만 안하면 학생들이 말 들으니 이만큼 제게 맞는 직업도 없다고요. 하하하”

자신의 장애를, 사고 당시의 끔찍함을 남 얘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사고 후 지금까지 감정적으로 흔들린 적이 없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우울해져 본 적도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결코 없다고 한다. 미국은 중증 장애인 치료 과정 중 심리 상태 분석이 있는데 이 교수는 세 차례 모두 "이 환자는 더 이상 검사할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책상 빠질까봐 빨리 돌아왔어요”

“아마 몸은 이렇게 됐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또 3일 간 생사를 오가면서 죽음 초입까지 간 체험이 심리적 안정을 찾는데 큰 힘이 됐어요. 지난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제가 다친 부위에서 1mm만 더 위쪽을 다쳤으면 횡경막까지 마비돼 목소리도 못냈을 거라 합니다. 그 또한 얼마나 다행입니까. 미국에서는 저 같은 사람은 3개월 내에 다 치료하고 내보냅니다. 더 이상 해봐야 나아질 게 없기 때문이죠. 또 미국은 의료비가 우리의 15배 정도 됩니다. 제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하루 병원비가 2,500만원이었어요. 석 달 있다보니 병원비가 10억 정도 되더군요. 사람들이 물어보면 병원비가 비싸서 빨리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는 3개월간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했다. 하지만 집도 학교도 그를 맞아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계단을 없애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공사부터 해야 했다. 시설 공사를 마칠 때까지 병원에 다시 누워있었다. 그게 3개월.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대학 강단에 다시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를 ‘슈퍼맨’이라고 했다. 기적이라고 했다.

“어떤 직장이 몇 년 동안 자리 비우는데 책상 안 빼겠어요. 책상 빠질까 무서워 빨리 돌아왔어요. 사실 우리나라 병원비로 이 정도의 의료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장애인들이 병원에 더 오래 있기도 하죠. 좋은 의료 환경이 장애인이 강하게 일어설 수 있는 의지를 깍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휠체어에 묶인 몸으로 강단에 돌아온 그는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얼굴 옆에 달리 빨간 플라스틱 통을 불어서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영어로 말하면 음성인식을 하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IT기술을 선보여 시선을 끌었다.  그는 장애에 굴하지 않고 더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강의 했다. 최고 권위의 미국 지구물리학 총회에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세계 선진 주요 20개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G20 정상회의 기념 강연회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에선 장애인, 컴퓨터 그리고 선진사회에 대한 강연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 체급 올려 살고 있는 제2의 인생

지난해부터는 지식경제부로부터 연구비 100억 원을 지원받아 그 절반은 한글 음성인식 프로그램이나 장애인을 위한 기계 개발에 쓰고 나머지 반은 장애인의 교육, 특히 이공계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데 쓰고 있다. QoLT(Quality of Life Technology)라는 프로젝트다. 얼마전 그 결과물 하나가 나왔다. 입김으로 작용하는 스마트폰과 테블릿PC가 개발된 것이다. 그는 항상 장애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려면 IT기술 융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전신마비 장애인도 컴퓨터를 활용해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 옆에 달리 빨간 플라스틱 통을 불어 컴퓨터를 다루는 이상묵 교수

“이번 스마트 기기 개발은 장애인들에겐 아주 혁신적인 일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다쳤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장애인용 첨단 기기를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이 활동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죠. 이제 저는 그런 기기들을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문제작해서 파는 단계까지 왔습니다.(웃음)”

이 교수는 다치기 전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은 아직도 그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제가 괜찮다고 하니까 괜히 용감한 척 한다고, 센 척 한다고해요. 좀 의지하고 매달리는 게 당연한데 정신 못 차리고 하던 일 계속 하겠다고 하니까 어이없어 했죠.”

이 교수가 미국 병원에 누워 있을 때 한 후배가 찾아왔다. 그러더니 대뜸 “형 체급 올렸다고 생각해. 이미 형이 하고 있는 분야를 너무 잘해 시시하니까 체급을 올려 준거야”라고 했다. 복싱 미들급 챔피언이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려 좀 더 어려운 도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저도 맞아, 내가 안 다쳤으면 연구하기도 너무 쉽고 너무 잘 했을 거야. 그래서 하늘이 좀 더 재미있게 인생 게임하라고 체급 올려준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올 1월 폐렴으로 쓰러졌던 경험이 있어 아직도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상묵 교수가 긴 시간 인터뷰로 무리하는 듯 보였는지 연구실 한쪽에서 조용히 그를 돕던 사람이 물병을 들고 몇 차례 오간다. 강단에 서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은지 물었더니 “교수가 그게 힘들면 그만둬야죠”란다. 그는 스스로 강의 중 ‘싱거운 소리’ 잘 하는 약장사 같은 교수라고 했다.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의 장난 섞인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색하고 희망과 용기를 말하는 것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울린다.

“미국에 거라지(garage) 세일이란 것이 있어요. 창고 세일인데, 골프채, 액세서리 등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지만 생필품은 안 내놓아요. 저도 그래요. 제가 가진 웬만한 건 다 팔아치워 없어요. 하지만 사는데 진짜 필요한 몇 개는 남겨 놓았죠. 정말로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해요. 하하하”

사진 시민리포터 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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