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게 모아 통크게 쓰는 ‘젓갈 할머니’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서형숙

발행일 2011.02.16. 00:00

수정일 2011.02.16. 00:00

조회 4,738

노년기의 긴 시간을 어떤 일을 하며 보낼것인가는 성공적인 노년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육체적 노동을 많이 요하는 무리한 일이 아닌 노인에게 적합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은퇴후 노년기를 보내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여가생활과 더불어 노년기의 직업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 팔순이 다 된 나이에도 자신의 일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가 있다. 바로 ‘젓갈 할머니’로 유명한 노량진 수산시장의 류양선 할머니. 어둠이 깔린 저녁 6시 무렵, 류양선 할머니(79)를 만나기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수산물사이를 돌고 돌아 간신히 찾아간 가게는 수산시장 모퉁이에 자리잡은 충남상회.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류양선 할머니는 소탈한 미소를 띄우며 반겨준다. 류 할머니는 오늘도 돈을 잘 벌기보다는 잘 쓰기 위해 새벽부터 시장에 나와 젓갈을 팔고 있었다.

'노란 옷 아가씨', '책 할머니'. 36년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장사를 해온 할머니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노란 옷을 입고 장사를 하고, 노란 옷을 입고 기부를 한다. 산간 오지 아이들에게 책을 보내는 게 알려지면서 책 할머니가 됐단다.

처음 기부를 했던 게 언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벌써 20년도 훨씬 전이다. 독도에서 어린이들이 이곳 수산시장으로 견학을 왔다. 그런데 그 학교에 아이들 읽을 책이 없다고 했던 얘기가 마음에 걸려 책을 기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기부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150여 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10만권 가까운 책을 산간오지 학교와 양로원 등에 기증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1998년에는 경기 광명시의 임야와 건물 1430㎡, 2006년에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면의 임야 4732m² 등을 한서대에 대학발전용지로 기부했다. 2008년에는 김포 고촌면 전호리의 대지와 전답 1038㎡를 또 한서대에 기부했다. 어림잡아도 수십억 원에 달한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충남 서산 가난한 농사꾼의 딸로 태어난 죄 아닌 죄로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공부는 똑 떨어지게 했지만 입에 풀칠하기 쉽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부친은 책보를 거름통에 빠뜨리며 진학을 말렸다.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됐다. 젓갈장사를 하면서 돈이 모이는 족족 공부하고 싶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 하라며 기증하기 시작한 게 아예 장학재단까지 만들게 됐어. 장학금을 전달할 때는 책도 함께 선물하지.”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할머니의 신조다.

할머니는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몇 해 전 위암수술을 받은 후 몸이 많이 쇠약해졌단다. 이제는 건강생각해서 좀 쉬어야하지 하겠느냐 물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게 내 직업인데… 난 내가 살아있는 한 내일 지구가 망한다해도 여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거야”라고 받아친다.

“기부는 할 만큼 했으니 노후준비 하셔야죠?”라고 말했더니 “자다가도 죽는 게 사람이야. 쌓아둬서 뭐해. 100만 원을 남기고 죽어도 버리는 돈 아니냐?"고 반문한다. 할머니에게 기부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이 장사를 시작한 건 다 먹고 살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살아가면서 못 배운 것이 한으로 남았고 내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어려운 학생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어. 이 일은 내게 삶의 에너지고 보람이야.”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사전을 보낼 때 마다 할머니는 은행에 저축액을 쌓아두는 것보다 훨씬 값진 이자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평생 기부활동으로 인해 유명인사가 된 할머니의 가게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런 손님들에게 할머니는 농을 친다. “내가 업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장사 품목으로 젓갈을 선택한 것은 변질이 되지 않는게 좋아서 시작한 건데, 이것이 너무 짭짤한 종류다보니 한 번 사 간 손님들이 한참 후에나 오잖아. 싱싱한 물고기들은 금방 구워먹고 끓여먹고 다시 사러오는데 말야!" 할머니의 걱정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자꾸만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젠 난 여기 얼굴 마담이야~”라며 웃는 할머니 모습에서 이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 알것 같았다.

#기부 #노량진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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