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할 줄 아는 아이들을 꿈꾸며

시민기자 안혜련

발행일 2010.11.04. 00:00

수정일 2010.11.04. 00:00

조회 4,007

11월 1일, 서울 지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체벌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그 실효성과 현실적 대안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우리의 아이들을 창의적인 인재로 자유롭게 교육시키면서도 실제 교육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방안이란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성공적인 교육 사례를 찾기 위해, 청소년 창의교육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를 찾아 10년간 창의교육의 선봉장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대안적 사회를 향한 교육실천운동가인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 시대 대표적 청소년창의교육전문가로부터 듣는 우리 청소년 교육의 문제점과 실천적 대안에 귀기울여보자.

-1990년대 초반, '또하나의 문화'에서 발간되었던 선생님의 저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시리즈에 매혹되었던 독자이자 여성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성학자에서 청소년교육실천운동가로 변모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1990년대 중반까지 남녀평등 여성운동가로 연구하면서 '여성 스스로 말할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장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민주적 가정에서 자라나 여성차별이나 억압에 관해 쌓인 한이 별로 없는 편이었기에 남녀평등에 대한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수월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여성학적 접근에서 치열한 자기 투쟁은 부족하다고 느껴졌었죠. 여성의 권리의식이 꽤 높아진 1990년대 중반부터 슬슬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느낄 즈음, 소비사회와 대중문화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청소년 문제가 급부상하게 되었어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며 권위에 도전하고 개성 찾기에 나서면서, ‘투표 나이를 낮추자’거나 ‘두발을 자유화하자’는 등 그 동안 간과되어오던 자신들의 인권과 복지 그리고 문화적 향유권에 대해 사회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정작 당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가족해체와 중장년 실업자 문제에 쏠려 있었고,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력풀과 마인드가 부족하여 바람직한 모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지요. 문화인류학 전공자로서 학업중퇴자들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이 같은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결국 대안교육문제에 힘을 보태게 된 것이지요.

-분명 제도권 교육의 수혜자신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창의적 교육 기획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요?

개인적으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점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께서 고아원을 운영하셔서 고아원 친구들과 창의적인 놀이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저의 창의성 발달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또 제 친구들이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차별을 받는 것을 보며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인식하고 때로 공생을 위한 작전회의까지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런 비판적 시선 역시 창의적 요소 중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페스탈로치 같은 외할아버지의 고아원에서 공동생활을 한 덕분에 어린 시절에 사회성을 키울 수 있었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몸에 배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데 늘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좀 더 자라서는 사회의 중심에 안주하기보다 중심과 주변을 넘나들며 사회전체의 흐름을 보고 싶어 역사학자와 인류학자가 되고 싶었지요. 기본적으로 세상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읽어내는 것이 제 장기이자 취미이기도 하니까요. 여행을 좋아했고 유학생 시절 영미 사회를 관찰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해 상상한 것들도 제가 시대를 읽고 시대적 실험을 하는데 자양분이 되어준 것 같아요. 물론 최근 취업전문기관처럼 변해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지식의 전당이자 창의적 공공지대인 대학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활발한 토론과 실험을 행할 수 있었던 것도 창의성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현장에서 교육문제를 실천하신 십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도, 이 사회의 청소년들도 참 많이 변했을 텐데요. 그 변화의 과정을 스케치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 사회가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그 나라는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일정 수준으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비와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고 자란 청소년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88올림픽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문화적 창의성을 지닌 차세대를 육성하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청소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청소년의 거리도 생겨났습니다. 가정, 학교 등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기치로 내세우며 혜성처럼 등장한 일명 서태지 세대의 청소년들은 톡톡 튀는 개성과 강한 주장으로 사회의 중요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로 부상했지요. 1980년대의 거리가 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대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면, 1990년대의 거리에서 가장 가시적 존재들은 비주얼한 청소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위 거리를 둘러보면 그 많던 청소년들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입시 학원으로 몰려가기 때문이지요. 이제 2000년대의 가장 가시적인 존재는 아마도 학원 입시설명회 강당에 차고 넘치는 어머니들일 것입니다. 학교는 내신을 관리해주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학원 문화를 빼고 청소년 또래 문화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학원은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부상하며, 청소년들의 삶의 공간은 이분화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시점이 1997년 IMF 외환위기입니다. 외환사태가 조장한 위기의식이 국가경제를 불신하는 부모들로 하여금 개별적 대안 찾기에 몰입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국가의 경제 정책을 믿지 않는 자기주도적인 어머니들이 “내 아이는 내가 책임진다”는 마인드로 매니저 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 어머니들은 우리 교육문제의 제도적 교육을 충분히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엘리트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려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들을 조기 유학 보내거나, 과외에 투자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존경쟁의 장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되는 겁니다.

-청소년 교육에 관한 어머니들의 성찰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 또한 다시 살펴봐야겠군요.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는 극성엄마의 모습은 실은 소수입니다만 그들이 교육계를 주도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이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처럼 교육특구를 찾아 몇 년이 멀다하고 이사하는 어머니들이 자녀를 일류대학에 입학시키면 모성으로서도 성공이라 생각하고 사회에서도 그런 식으로 대우해줍니다. 점점 더 많은 어머니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녀들을 입시 전쟁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입시’에 집중되어 있는 입시 공화국의 모습은 아파트 투기공화국이라는 것과도 통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실은 어머니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입니다. 국가에서 건강한 미래 세대 양육의 질을 담보해주지 못하고 아이의 미래를 염려해야 하는 어머니들이 불안해하며 그 짐을 짊어지다보니 이런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나서서 다음 세대의 성장과 교육의 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대인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대표적 문제점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지금의 청소년들은 누군가와 어울려 무엇인가를 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는 승자 독식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경쟁적인 인간으로 양육된 아이들이다보니 공존의 마인드가 길러질 새가 없죠. 매니저 맘을 든든한 지원군으로 가진 아이들이 학원가에서 자라나 엘리트 고교를 거쳐 SKY대에 진입하고 나면 성공이 보장되는 각종 고시공부에 돌입하는 코스가 성공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승리한 듯 보이는 이 과정이 결코 승리가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에서 결국 친구없는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나 하는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지요. 엄마의 기획과 지원으로 성장한 이들 중에는 친구가 엄마밖에 없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30대가 되어서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요즘 아이들은 내재적 동기가 유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육되어 왔기 때문에 스스로는 자기주도적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만의 현실이 아닌 서구 선진국 아이들의 보편적 특성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우리 사회는 단기간에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이 진행된데다가 입시 열풍마저 극심하다 보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 같은 양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엄마의 세심한 기획대로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누군가가 다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는 반응을 나타내는 등 매우 수동적인 능동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기도 싫어하여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히키 고모리 (은둔형 외토리)같은 존재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사회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청소년들에게 빚진 게 많군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어릴 적부터 엄마들에게 잘 길들어진 일류대 출신에 화려한 스펙으로 경쟁력을 갖춘 청년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집 장만과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어려워진 부모들의 경제사정으로 인해 점점 비싸지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들이니까요. 사회 출발점부터 경제적 약자로 만들어진 그들은 점점 불안해하며 더욱 스펙 쌓기에 몰두하게 되는 등 잔뜩 움츠려든 형국이지요. ‘돈 없으면 죽는다’의 경쟁 마인드가 아니라 ‘인간은 돌봄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상생 마인드로 바뀌지 않으면 그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 질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은 많은 빚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면서 그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요즘 조한혜정 선생님의 우리 사회에 관한 걱정은 무엇인가요?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로 가야 하는데,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대로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해가고, 갖지 못한 자들 역시 점점 사회로부터 내몰리고 있습니다. 일평생 자녀에게 돈, 시간, 열정을 쏟아 부은 부모들은 노후를 보장받지 못해 고통스럽고, 청년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들을 갚을 길이 없어 심리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채무를 지고 출발하는 형국이니까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근대화, 산업화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돈의 순환을 사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으므로 속도를 줄이고 자신을 점검하면서 돈만이 아닌 창의적 인간으로서의 모습 회복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 어머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아이들은 우리가 살던 시대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주체성을 지배하지 않으면서 그를 키우는’ 모성의 본래 의미와 달리 우리는 정작 그들의 주체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단기적인 목적으로 자녀의 삶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개입과 간섭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더욱 살아남기 힘들어진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조한혜정 …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여성학자이자, 대안적 사회를 꿈꾸는 교육실천운동가. 1984년 여성학자들과 함께 ‘또하나의 문화’를 결성하여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에 대해 각인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이후 1999년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를 만들어 청소년 대안교육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노리단’, ’오가니제이션 요리’ 등 여러 성공적인 사회적기업을 배출해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이자, 도시형 대안학교 ‘성미산 학교’ 초대 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공동체마을을 모색하는 등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창의적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자센터 #청소년창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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