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되찾은 기쁨이 아직도 생생한 그들

시민기자 조영관

발행일 2010.09.29. 00:00

수정일 2010.09.29. 00:00

조회 3,175


6.25에 참전한 7개국 참전용사와 참전국 수도 시장단이 60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터키,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7개국에서 온 70명은 지난 27일부터 서울에서 여정을 보내고 있다. 서울수복 60주년이 되는 지난 28일, 서울시는 용산전쟁기념관에서 16개국 참전용사들에게 오찬을 준비했다. 조영관 시민기자는 옛 군복을 입고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백발이 하얀 외국인 노병들을 만나러 갔다. 참전국 중 일부 베테랑들은 군복을 입고 있어서 긴장감과 일체감마저 느껴졌다고. 하이서울뉴스의 '서울 vs SEOUL' 코너 사상 가장 느리고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가장 짧은 대답만을 얻어낼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질문과 대답 사이의 침묵이 오히려 소중했던 인터뷰를 여기 소개한다.

서울의 하늘은 9.28 서울수복 60주년을 맞아 한껏 화창하고 푸르렀다. 시내 상공으로 공군전투기들이 흰 연기를 하늘에 수놓으며 축하비행을 하는 소리는 한껏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어린 시절 제트기가 지나간 자리에 길게 그려진 그 길을 다시 보는 것 같다.

가장 멀리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참전용사 테이블에 동석하였다. 거기서 특별한 손님을 발견했다. 고(故) 스와니폴(Swanepoel) 준장을 대신해 미망인 아이다 스와니폴(Ida Swanepoel) 씨와 그의 아들 다니엘 씨 그리고 손자까지 3대손이 참석한 것이다. 손자인 해리(40세) 씨는 호주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고 참전용사 초청 소식을 듣고 자비를 들여 서울을 방문하였다.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한국전쟁과 변화된 서울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러 온 것이다.

- (아들인 다니엘 씨에게) 참전용사인 아버지에 관해서 얘기해달라.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 한국전에 참전하셨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40세, 어머니는 30세이셨다. 아버지는 1996년에 돌아가셨는데, 지금 살아계셨다면 100세가 되실 것이다. 서울에 오신 어머니는 90세이시다. 아버지는 42년간 군생활을 하시고 은퇴하셨다.

- (미망인 아이다 여사에게) 한국전쟁에 참가한 남편에게 들은 것 중 기억 남는 것이 있다면?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된 곳이 많았지만, 한국은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했다. 전쟁동안 남아공과는 다른 혹독한 겨울날씨 때문에 긴 부츠와 두터운 겉옷을 많이 겹쳐 입고 전투에 임했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남편은 전투 비행단에서 근무하였다.

6.25 참전국은 16개국과 의료지원국 5개국을 포함한 21개국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병력과 사상자를 기록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라고 한다. 참전 미국군의 숫자는 1,789,000명이며, 그 중 전사자는 33,642명이고 부상자는 92,134명이다. 그 다음 순서로는 캐나다 참전군인이 많아서 25,687명이었고, 세 번째가 터어키로 14,936명으로 많다. 가장 멀리서 온 남아공 군인들은 826명이었는데 35명이 전사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용산전쟁기념관 내 6.25전쟁실을 관람하면서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지켜본 곳이 있었다. UN군 참전국가에 대한 전시실 중 남아공 군인복장을 한 마네킹 앞이었다. 아마도 그 군복을 보면서 스와니폴 가족은 잠시 고인이 된 남편 혹은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장시간의 비행에 지친 육신을 휠체어에 의지하여 관람을 하는 미망인의 주름진 얼굴에서 하나뿐인 아들과 부인을 남겨둔 채 비행기로 하룻길, 배로 두달여 가량을 파도를 헤치며,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건 참전 군인의 결연한 의지를 보는 듯하였다.

- (손자인 해리 씨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갖고 있나?
할아버지의 한국 참전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은 처음이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공군준장으로 군생활을 40년간 하셨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하셨을 때는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관람실에서 또 다른 터키 참전용사 네카티 코달(Necati Kodal, 82세)를 만났다. 22세 때 한국전에 참전했는데 한국에는 참전 이후 처음 방문이시라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국전쟁 참전 느낌을 또박또박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국가의 자유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자유 없는 국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 (Freedom does not come cheap. You need to pay a price for it, not only for freedom of nation but also indiviual freedom and no nation can't survive without freedom.)"

그의 말 외에도 영국에서 오신 참전용사 한 분의 한 마디도 기억에 남는다. “자유는 당신의 미래에 왜, 언제, 어떻게를 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Freedom means the ability to decide your own future why, when, and how!)”

세계 여러 나라 젊은이들의 피 값과 이 땅에 수많은 죽음으로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딛고 전후 복구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현재 세계무역규모 10위, GDP 기준 13위의 경제대국으로 눈부시게 발전을 하였다. 올 11월에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6.25 참전 16개국 중 G-20에 속한 나라는 7개국이다. 이번 행사를 통하여 우리나라와 우방국가들 간의 관계가 한층 더 돈독해지고 다양한 교류협력으로 무역에도 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들이 서울에서 잠깐 보고 느낀 것으로 참전에 대한 고마움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우방국들을 잊지 않고 무한한 감사함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참석한 분들에게 대한민국이 제2의 사랑하는 나라가 되길 바라는 욕심도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목발을 짚고 혹은 휠체어에 의지하며 서울의 발전상을 확인하러 온 백발의 영웅들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잊혀져 가는 6.25와 전쟁을 모르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