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딸, 고맙고 미안하다

백**

발행일 2010.11.16. 00:00

수정일 2010.11.16. 00:00

조회 2,657

“아버지, 오늘 웨딩드레스 잘 맞게 줄여놨는지 다시 가서 입어 봤거든요. 여기 사진. 어 때요?”
“어디 보자. 예쁘다, 예…뻐…”
“아이… 참. 아버지 또 우시네.”

어려서부터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 딸이었는데 어느새 성장해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좋은 일에도 눈물부터 앞서니 이게 웬일인가.
건설현장에서 20년간 목공으로 잔뼈가 굵은 기능공. 그래서 피부는 검게 그을린 채 손마디 마디마다 옹이져 양복을 입는 것도 남 앞에 서는 것도 피해 왔는데 결혼식에 딸아이 손을 잡고 입장하려니 아버지로서 미안하기만 할 뿐 이다.

그것만이면 또 얼마나 다행일까. 아이에게 부모로서 면목이 없을 만큼 큰 생계의 부담까지 지우며 살아왔다. 처가가 빚으로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집을 맡겨 보증을 서 준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에는 가족이라면 당연해 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건설경기 침체로 내 일마저 끊기면서 딸아이가 본의 아니게 오늘날까지 가장 노릇을 해온 것이다.

“당장 결혼을 앞둔 딸에게 생활비를 의지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딸애한테 더는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든 일자리를 구해야 합니다.”

딸아이가 마음 편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나 역시 당당하게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를 찾아 생면부지의 상담사를 붙들고 애원하다시피 상담을 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시기에는 고령이라서 그 동안의 경력을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어르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한 자세 또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퍽 강하신 분이니 그런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자리가 있을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적인 기술보다 성실함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고, 환갑을 넘어선 나이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직업이라…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그런 자리가 나타났다. 어느 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가족농장에 녹지관리직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면접에 응시했다.
“백** 님. 밤새 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
이제는 가족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상담사의 목소리가 여느 날보다 더 밝게 들린다.

“면접 보신 곳에서 합격통지가 왔어요. 다음 주부터 출근하시면 된대요.”
자면서 꾼 꿈이 아니라 다시 일을 시작해 보겠다고 꿈을 키운 것이 대박이 난 모양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축하드릴 게 있어요. 백** 님이 저희 센터 개소 이래 천 번째 취업자가 되셨어요.”

인생 황혼에 접어들어 새로 얻은 직장. 천 번째 구직자. 아무래도 올해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만 같다.

사랑하는 내 딸. 그동안 부족한 이 애비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 고맙고, 미안했다…

백**(남, 63세)

#취업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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