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으로 농구만 하나?

admin

발행일 2010.04.26. 00:00

수정일 2010.04.26. 00:00

조회 3,006

청계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겨운 공연.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웃고, 박수친다. 모처럼 산책을 나온 시민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거리아티스트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장르로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그립(GRIP) 프리스타일이라고도 하고, 스포츠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농구공과 손이 붙어 있는 것 같다. 한 개는 물론이며 4개까지, 공을 가지고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보인다. 관객들을 저절로 흥분시키는 힙합 뮤직뿐 아니라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드는 사물 장단에도 맞춰 멋들어진 레퍼토리를 개발했다. 예술가 민경진(29) 씨를 만났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주문하는 농구

“초등학교 때 한 편의 비디오가 절 이리로 이끌었죠.” 민경진 씨가 농구공을 이용한 묘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우연히 빌려 본 비디오 때문이었다. 농구를 좋아하던 그는 농구공으로 하는 그 묘기들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고,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영상에서 본 모습들을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무언가 배우고 싶었지만 93년도 당시에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죠.”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던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자신을 가르쳐줄 누군가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농구공을 이용한 묘기를 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는 막연히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고, 그 영상을 하나하나 분석해가면서 그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하루 10시간 정도씩 연습을 하기도 했죠.” 방법은 직접 몸으로 익혔다. 간단해 보이는 기술조차도 쉽게 얻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때 연습에 몰두할 때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기술연습을 위해서 보내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농구공에 열중할 수 있는 건 농구공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 때문이었다. 하나의 기술을 습득했을 때의 성취감은 연습으로 오는 통증, 불만을 해소시키기에 충분했다.

농구공과 함께 해 온 쉽지 않은 여정

“월드투어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유튜브에서만 보던 친구들이 절 알아봐 줄 때 무척 기뻤습니다.” 민경진 씨는 오래 전 월드투어를 한 적이 있다. 세계를 돌면서 자신의 농구공 묘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농구공 묘기를 하는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무작정 월드투어 길에 올랐다. 자신의 일정을 소개하고 함께 농구공 묘기에 대해서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독일에 있을 때 폴란드 친구들이 연락을 해왔다. 지금 대회가 열리고 있으니 참석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폴란드는 농구공 묘기에서는 거의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긴장됐지만, 최선을 다했고, 당당히 2위에 입상했다.

“한 때는 정직하지 못한 기획사에서 속기도 했죠.” 그러나 이렇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경진 씨는 다양한 스포츠 행사에서 공연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 때 알게 된 모 기획사의 제의로 그곳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고. 그는 기획사에서 일한 시간동안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많은 것들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기획사를 떠나 독립해 지금은 혼자 활동하고 있다.

“제 공연을 보면서 무척이나 기뻐하는 아이들을 볼 때 보람을 느끼기도 하죠.” 그는 한번은 모 통신회사에서 소외계층에 인터넷을 보급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묘기를 보여주었는데, 그 묘기를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같이 살자’면서 그에게 매달렸다고 한다. 힘들고 지칠 때면 그때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고. 지금 거리에서 공연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행인들만큼 솔직한 사람들은 없다

“친구가 거리아티스트에 대해 소개해 줬죠.” 민경진 아티스트가 학교를 졸업했을 때 한 친구가 ‘거리아티스트’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거리아티스트’에 대해서 잘 몰라서 사양했지만, 계속되는 권유로 알아보다보니 꽤 매력적인 프로그램인 걸 알게 됐다. 외국에서 공연자에게 허가증만 주는 것과 달리, 서울은 공연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제공했다. 그는 오디션을 봤고 2년 전부터 거리아티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행인들만큼 솔직한 사람들은 없어요.” 거리아티스트로 일을 하기 전에도 그는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했었다. 또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지만, 거리에서 공연을 하면서 일방적인 보여주기만으로는 그리 큰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금새 흥미를 잃고 가던 길을 갔다. 그는 거리 공연을 하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연을 꾸미고 있다. 관람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걸고, 그들에게 직접 공연에 참여하게도 한다. 앞으로는 스토리가 있는 공연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솔직한 반응 덕분이라고 한다. 그에게 거리아티스트는 스스로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거리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연장이 좀 더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민경진 아티스트는 서울의 공연자 배려가 외국에서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상당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거리아티스트로 일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앞으로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확대가 되면 좋겠다고. (참고로 현재 거리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은 청계천, 광화문광장뿐이다.) 그의 바람이 이뤄져 더 많은 예술가들이 서울 구석구석에서 시민들에게 예술의 통로를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민기자/김정상
amorfati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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