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커다란 심벌즈처럼 충돌하더라도...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6.20. 00:00

수정일 2014.10.05. 19:44

조회 974

부탄은 희말라야의 작은 행복의 나라로 불린다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거나,
발아래 땅이 꺼져버리거나,
하늘과 땅이 커다란 심벌즈처럼 강하게 충돌하거나,
머리가 불타오르거나,
독사가 무릎 위로 기어오르거나,
여유롭거나, 바쁘거나,
굶주리거나, 배부르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17세기의 성자이자 마술사, 무사, 그리고 부탄을 통일한 왕
샤브드롱 나왕 남갈(Shabdrung Ngawang Namgyal)

[서울톡톡]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너무 불행한 기분이 들어서 행복한 이야기를 찾다가 《부탄과 결혼하다》라는 제목의, 실제로 부탄 남성과 결혼해 사는 미국 여성이 쓴 책을 읽게 되었다. 살짝궁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없지는 않지만, 그녀가 쓴 그대로라면 부탄은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행복한 나라'다.

티베트와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깊숙이 자리 잡은 아주 작은 불교국가인 부탄은 바깥 세계의 변화와 무관하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농업국이긴 하지만 1960년대 화폐가 등장하기 전까지 물물교환의 방식을 유지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선호하는 부탄 사람들에게 돈이란 있으면 쓰고 없으면 친구나 친척들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다. 내향적이고 자기반성이 깊은 부탄 사람들은 고요한 종교생활과 친목에 만족하며 1999년까지는 텔레비전조차 없이 살았다. 그곳의 시간은 그야말로 느리게 흘러, 오전 10시에 만날 약속이라면 아침 9시부터 낮 12시까지가 모두 약속시간으로 열려 있다. 윤회를 믿는 그들에게 시간이란 일직선이 아니라 돌고, 돌고, 돌아......순환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탄이 이처럼 '행복한 나라'가 된 데에는 왕, 혹은 정치가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부탄은 엄연한 민주국가다. 그런데 그것은 2006년 왕조 역사상 네 번째로 즉위한 왕의 신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국민에게 언제나 훌륭한 왕이 있을 수는 없으니, 부탄은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전쟁이나 혁명 없이 왕이 스스로 민주주의에 찬성하는 일은 세계사상 최초이자 유일인 셈이다. 이런 나라이기에 GNP(국민총생산) 대신 GNH(국민행복지수)를 우선시할 수 있었다. 부탄에서는 군대에서 럼주와 위스키를 제조하고, 정부는 국민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콘돔을 무상배급 한다고 한다. 술과 사랑! 그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부탄을 통일한 샤브드롱 나왕 남갈이 남긴 시이거나 주술 같은 잠언은 행복이란 결국 삶 그 자체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들이라고 마냥 여유롭고 배부르고 행복하기만 할 것인가? 기후 변화로 인해 빠르게 녹아들어가고 있는 북쪽 빙하에 대한 불안만큼이나 그들도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기에, 무슨 일이 생겨도 자기의 속도와 질서를 지키며 결코 절망하지 않기에 행복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치미는 의심,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유토피아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접어두기로 했다. 누구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해도, 누군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이자 희망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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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행복 #부탄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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