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쓴소리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3.12.20. 00:00

수정일 2013.12.20. 00:00

조회 1,121

설원(사진:와우서울)

나는 오랫동안 황금률을 추구해왔다. 즉, 나의 일반적인 연구 결과와 상충하는 사실이 공표되거나 새로운 관찰과 사상을 접하게 되면 즉시 그것을 메모해두곤 했다. 왜냐하면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런 사실이나 사상은 내 주장에 찬동하는 것들보다 훨씬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서울톡톡] 이지적이고, 사리분별이 확실하고, 심지어는 현명한 사람들이 아주 단순한 '그것'에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처음에는 무심히 외면하는 듯하다가도 결국엔 반복된 '그것'에 홀라당 넘어간다. 끝끝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내색하지 않더라도 이후로 '그것'을 바친 사람에 대한 대우는 확실히 달라진다. '그것'은 바로 '아부'다. 아첨, 감언이설, 비위를 맞추기 위해 거짓을 고해바친 게 아니라 좋은 의도였음을 감안한다면 찬사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십여 년 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제목이 있었다. 범고래에게 멋진 쇼를 하게 하기 위해서 조련사가 칭찬과 격려를 거듭하는 '고래 반응'을 소재로 인간관계에서의 긍정적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를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해야지 안 그러면 '칭찬은 고래나 춤추게 한다'. 그저 한바탕의 '쇼'를 위해!

아부는 심지어 그 말이 희번드르르한 아부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사람마저 흔든다. 자기 살이라도 아까워하지 않고 베어줄 것 같이 턱 밑에 붙어 사근사근히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을 차마 내치지 못한다. 날탕이든 사탕발림이든, 일단은 달콤한 말이 듣기 좋은 것이다. 쓴소리와 직언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듣기 싫다. 그리하여 신분과 지위가 높아질수록 주변에는 아부꾼들이 늘어가고, 그는 결국 허영에 들뜨고 자기도취에 빠져 진실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이다.

뉴턴, 갈릴레이와 함께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대 과학자로 꼽히는 다윈의 자서전 제목은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이다. 제목대로 그는 평생토록 진리를 찾기 위해 외로운 은둔과 고립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진화시켰다'. 세상의 찬사에 함부로 춤추는 '쇼'를 하지 않기 위해 이 고집쟁이 과학자는 자기주장에 찬동하는 것들보다 자기와 다른, 때로 자기를 반박하는 관찰과 사상을 접하면 즉시 그것을 '메모'하였다. 그 이유에 대한 고백이 참으로 솔직하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쓴소리는 달콤한 말보다 훨씬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니까.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망각은 축복이다. 그 중에서 기억하기 싫은 것은 기억하지 않는 동기적 망각은 큰 불행을 겪은 인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게 한다. 하지만 곱씹어 괴로운 이야기를 빨리 잊어버리고자 하는 것이 본능에 가까운 방어기제일지언정, 정당한 비판과 문제제기까지 망각 속에 흘려보낼 수는 없다. 물론 그만큼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많지 않기에 더욱 귀하다. 나도 모르게 꽃노래에 취해 귀를 막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며,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에게는 관대해지고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해질 수 있기를, 기어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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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칭찬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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