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날라리`에서 청담동 며느리로…

하재근(문화평론가)

Visit1,674 Date2013.10.29 00:00

땅값 오른다는 정보를 듣고 말죽거리로 이사 온 어느 집안의 아들 이야기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서울톡톡] 역사는 ‘제3한강교’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가 파괴된 후 남겨진 서울시민들은 막대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빠른 시간 안에 서울시민들을 남쪽으로 피난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3한강교가 만들어진다. 이 다리는 강북도심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관문이 되기도 하고, 영동지구(강남) 개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다리가 만들어질 때 일반시민들은 그리 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에서 강남북을 오가려면 배를 타야 했는데, 운행하는 배마다 손님들이 그득했다. 제3한강교가 착공될 즈음 강남의 어느 밭주인은 땅을 모두 팔아 배를 사기도 했다. 제3한강교가 만들어지더라도 배를 타고 오가는 상황에 무슨 큰 변화가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1969년 제3한강교가 완공되자 그 즉시 배를 타러 오던 손님이 끊긴다. 곧이어 강남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논밭, 허허벌판이었던 강남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밭을 팔아 배를 샀던 사람이 만약 밭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알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압구정동의 어느 밭주인이 강남개발기에 밭을 팔고, 인근 밭을 사서 다시 파는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한 후 거부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강남은 서울 도심 시장에 청과물을 대는 농촌이었는데, 청과물을 사먹던 사람은 십 년 후에도 그대로 살았지만 청과물을 팔던 밭주인은 일약 중상층으로 인생역전을 했다.


<말죽거리 잔혹사>, <신사동 그 사람>, <강남스타일>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토박이 중에서 그런 흐름을 제대로 탄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체로는 이런저런 경로로 정보를 입수한 외지인들이 강남개발을 통해 신흥부자로 떠올랐다. 이때 정보를 입수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주부들을 복부인이라 했고, 그들이 활동했던 대표적인 지역이 말죽거리였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땅값 오른다는 정보를 듣고 말죽거리로 이사 온 어느 집안의 아들 이야기다. 그 땅은 수백 배에서 천 배까지 뛰었다.


강남아파트를 부의 상징으로 완전히 결정지은 건 1970년대 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등장이었다. 이 아파트는 사회지도층의 비리특혜분양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켰는데 바로 그 논란이 강남아파트의 가치를 높였다. 사람들 머릿속에 ‘강남아파트=사회지도층’이란 등식이 생긴 것이다. 이때 이후 강남은 한국에서 부의 상징이 된다.


강남은 처음에 성인유흥문화로 떴다. 강남에 졸부가 많았고, 강북에 대한 규제로 인해 유흥업소들이 제3한강교를 넘어 강남 신사동으로 진출한 탓이다. 이때의 흥청망청하는 분위기를 ‘영동문화’라 했는데,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비 내리는 영동교> 등이 그 시대를 그렸다.


‘신사동의 그 사람’과 눈빛을 마주쳤던 그이가 졸부 1세대라면, 졸부 2세대는 1990년대에 압구정동에 둥지를 틀고 보다 세련된 향락생활을 전개한다. 바로 ‘압구정 오렌지족’의 등장이다. 이들은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길가의 여자들에게 “야 타!”를 외쳤고, 이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어느 젊은이들이 ‘지존파’ 사건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지존파’가 되기보다는 압구정동을 선망하며 그 거리로 어떻게든 진출하려고 몸부림쳤는데, 그런 모습이 바로 유재석의 <압구정 날라리>라 하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압구정 날라리>의 또 다른 버전이다.


강남 부잣집 자제들은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압구정 날라리’들에 짜증났다. 사방팔방에서 압구정동으로 밀려드는 통에 압구정동이 점점 일반 유흥가처럼 변해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탈출을 결행한다. 유재석 같은 ‘압구정 날라리’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전철도 안 다니고 버스노선도 별로 없는 곳, 바로 청담동이다. 그래서 21세기엔 청담동이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청담동 며느리가 드라마 속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세상에 우리가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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