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아끼는 사람은 샛길을 만들지 않는다

시민기자 이승철

발행일 2014.07.14. 00:00

수정일 2014.07.14. 00:00

조회 1,691

[서울톡톡] 지난 7월 8일, 금년 11월 완공을 앞둔 서울둘레길 중 제3코스인 일자산 구간을 걸어봤다. 서울둘레길의 코스방향은 북한산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3코스는 광진구 아차산 아래 광나루에서 암사동 생태공원과 고덕산, 명일동 공원을 지나, 다시 일자산을 거쳐 수서역에 이르는 구간이다. 걷기는 일자산에서부터 시작했다. 시계방향이 아니라 반대방향을 택한 것이다. 길이 일방통행이 아닌데 어느 방향에서 걸은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둔촌동 보훈병원 근처 건널목을 건너 일자산으로 접어들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러나 비는 곧 그쳤다. 길바닥의 먼지만 살짝 쓸어낸 '먼지잼' 비였다.

일자산의 조형물 [둔촌 선생께서 후손에게 이르기를]

나지막한 산 위에 오르니 이정표 하나가 손짓한다. 둔촌 이집선생 은거지가 표시된 이정표였다. 조금 더 걷자 그리 넓지 않은 둥그런 광장에 멋진 조형물 하나가 서있다. 역시 둥그런 화강석에 새겨진 글이 눈길을 붙잡는다. '둔촌 선생께서 후손에게 이르기를'이란 글이다. [독서는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늙어서 무능하면 공연히 후회하게 되니, 머리맡의 세월은 괴롭도록 바쁘기만 하느니라. 자손에게 금을 광주리로 준다 해도,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니라. 이 말은 비록 쉬운 말이나, 너희들을 위하여 간곡히 일러둔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교훈이 될 만한 좋은 가르침이다. 둔촌 이집선생은 고려말인 공민왕 시절의 학자였다. 당시 권력자였던 신돈에게 바른말을 하였다가 미움을 받아 이곳 일자산에서 피신하며 은거하였다고 한다.

밟히는 감촉이 참 좋은 황토길

길바닥은 누런 황토색이다. 발바닥에 밟히는 감촉이 참으로 좋다. 길은 계속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가 내린 후인데도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곳곳에 마련된 쉼터와 운동기구들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만난 이정표들이 조금 이상하다. 서울둘레길 이정표는 보이지 않고 '강동그린웨이'라 쓰인 이정표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쪽 구간에는 아직 서울둘레길 이정표가 세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길옆은 온통 나무들이 잘 자란 숲이다. [진짜 일자산을 아끼는 사람은 샛길을 만들지 않습니다]라고 쓴 작은 안내판이 시선을 붙잡는다.

시선을 붙잡는 작은 안내판

길가엔 여기저기 예쁜 꽃들이 피어나 곱고 예쁜 자태를 뽐내는 듯하다. 나리꽃과 개망초, 싸리꽃, 자귀나무꽃, 능소화와 무궁화까지, 길동생태공원으로 가는 언덕엔 아담한 꽃밭에 어우러진 노랗고 빨간 꽃들이 참으로 예쁘다. "우와! 저 꽃 좀 봐? 환상적이다." "어라! 이쪽에도 있는 걸, 저기 좀 봐? 저 꽃 덩어리" 길을 걷던 일행들이 감탄사를 터뜨리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명일동 근린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가 양쪽 저만큼에 서있는 커다란 나무 위를 뒤덮은 능소화를 보고 놀란 것이다. 무리도 아니었다. 마치 한 덩어리처럼 피어난 모습이 참으로 놀랍도록 아름답고 멋졌기 때문이다.

자귀나무꽃과 꽃봉오리, 나리꽃과 개망초꽃, 특이하게 피어난 능소화

양편에 꽃집들이 늘어서 있는 도로를 건너 명일동 근린공원으로 올라갔다. 산길이었지만 높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여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이 공원에는 특별한 곳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몰아닥친 태풍 곤파스로 나무들이 쓰러져 큰 피해를 입은 공원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나무를 심어 복원한 '강동아름숲'이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모습이었다. 명일동 근린공원을 지나 길을 건너 강동구화학교 길로 접어들어 잠깐 걷자 고덕산 뒷길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숲이 더욱 울창해진다. 날씨는 무더웠다. 더구나 아침에 잠깐 내린 비 때문에 습도도 높았다. 그러나 울울창창한 나무숲에서 풍겨오는 숲 향이 마냥 감미롭기만 하다. 샘터공원 배드민턴장에는 운동에 열심인 주민들의 땀방울이 한 층 건강한 삶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샘터공원 삼거리를 건너면 왼편에 고덕산이 반가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명일 근린공원 입구

고덕산은 더욱 짙은 녹음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준다. 약간의 경사진 길을 올라 왼편으로 방향을 잡고 1,5km쯤 걷자 고덕산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이랬자 나지막한 언덕이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조망이 일품이다. 이곳은 2006년에 서울시로부터 '우수조망명소'로 선정된 곳이었다. 주변엔 산책 나온 주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그늘에 앉아 쉬는 모습이 평화롭다. 일행들도 잠깐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몸을 풀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오른 편 길로 빠지자 잘 가꾸어진 묘역이 나타난다. 광주이씨 조상들의 묘역이다. 예스런 모습의 비각과 문인석을 둘러보며 우리 전통 장묘문화를 생각해 보았다.

고덕산에서 내려와 암사동 선사유적지로 가는 도로 오른편에는 주말농장이 제법 넓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잘 가꾸어 놓은 농작물들이 탐스럽다. 싱싱하게 자라는 고추와 가지, 그리고 토마토와 옥수수, 농장 옆 개울에서 자란 부들의 아기토시처럼 생긴 모습도 재미있다. 참깨들도 하얀 꽃을 활짝 피웠다.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 건너편엔 선사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꿔 가로수 그늘이 멋진 길을 잠깐 걷자 왼편에 '선사마을' 표지석이 나타난다. 조금 더 걷자 드디어 '암사동선사유적지'다. 입장료는 어른 500원, 어린이는 300원, 노인은 무료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나란 나무에 활짝 피어난 무궁화가 일행들을 반겨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커다란 소나무들이 즐비한 유적지엔 그늘에 벤치들이 잘 비치되어 있어 노인들 몇이 무더위를 식히며 망중한의 모습이다. 신석기 시대 유적인 고인돌과 움집들을 둘러보고 암사동 한강둔치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암사동 한강둔치 생태공원

시내와 한강둔치 사이 토끼굴을 빠져 나오자 시원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암사동 한강둔치 생태공원이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갈대밭이 드넓다. 이곳저곳에 서있는 버드나무들. 그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와 길가에 곱고 예쁘게 피어난 꽃들, 강 건너 아차산의 풍경까지, "서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줄이야?" 일행들이 감탄하며 행복해 한다. 생태공원을 둘러보고 광진교를 건너다가 다리 밑 문화공간인 '8번가'를 둘러보고 광나루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5시간이 지나 있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싱그러운 숲과 아름다운 풍경에 더위도 잊고, 일행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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