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하디드, 당신과 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민기자 이나미

Visit2,296 Date2014.03.17 00:00

[서울톡톡] 설계자 자하 하디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찾은 지 이틀째인 12일, 이날 하디드는 공동대표 패트릭 슈마허와 함께 DDP 알림터를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DDP와 하디드식 건축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포럼에서 건축관을 밝히는 자하 하디드(오른쪽)와 공동대표이자 파트너 패트릭 슈마허(왼쪽)

건축평론가이자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배형민 교수 사회로 열린 ‘자하 하디드_360˚’ 포럼에선 전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와 마찬가지로 ‘DDP 공간용도’와 ‘(성곽과 운동장이 있던) 역사성을 어떻게 반영했나’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무엇을 기준으로 과하냐는’며 단호하게 표현했던 전날과 달리, 이날 하디드는 동일한 질문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며 상세하게 답변했다.

DDP는 역대 자하 하디드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로, 포럼에서 하디드는 “건물과 공원이 함께 흐르는, 풍경을 담은 건축물”임을 강조했고 공간용도에 대해선 “시민은 물론 전문가 관광객이 만나는, 동시에 한국 디자인에 세계에 선보이는 글로벌 디자인 트렌드 허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배형민 교수(맨 오른쪽)의 사회로 진행되는 포럼

동대문 시장에 착륙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DDP. 이미 많이 이야기 된 곡선형 건물을 제외하고.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외부와 내부 모두 기둥이 없다는 점. 또 지하철 1번 출입구인 DDP 진입로에서 부지를 거쳐 DDP 옥상 앞 잔디까지 이어지는 건축물의 도보 동선이다. 기존 건축물에서 보면 옥상은 건물 일부이지만 이용자 진입이 차단된 영역이었으나, DDP는 어느 구간에서 진입하든 잔디가 있는 건물 상층부까지 이용자가 진입할 수 있다.

이 동선흐름에 대해 하디드는 “DDP가 주변의 풍경과 연결될 수 있게 하나의 공간이 흐르는 듯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DDP는 새로운 동대문 시장의 모습을 만들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작업은 어바니즘을 살펴보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3월 21일 개관을 앞둔 DDP 동일한 모양이 하나도 없는 최대 비정형 형태 건축물이다

초기 디자인과 완공된 건축물이 일치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점에 대해 뒤이어 보충 발표에 나선 공동대표 패트릭 슈마허는 새로운 기술 도입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3차원의 가상공간에 건축물을 미리 구현하고 설계와 시공방법 등을 검토하는 방식)이라는 첨단 기법을 국내 공공건축물에 최초로 도입하였따. 이를 통해 크기와 형태 모두 다른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을 직접 생산해 곡선형 외피를 덮는 작업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계무대를 활동하는 건축가들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움)을 받은 ‘건축계의 여제’가 그녀 이름 앞에 따라 붙지만, 세계 정중앙에 이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0년생인 하디드는 처음엔 고향인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수학을 공부했으나 건축으로 전향, 1977년 영국 런던 AA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후 네덜란드 대표 건축가 렘 콜하스 건축사사무소(OMA) 초기 멤버를 거쳐, 1980년 런던에 자신의 건축 사무실을 열었다. 하지만 독일 ‘비트라 소방서'(1993년 완공)로 주목을 받기 전까진 하디드식 디자인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건축주들에겐 기피 대상이었고, 지을 수 없는 건축들만 그린다고 해서 한동안 ‘페이퍼 아키텍트(종이 건축가)’로 불린 적이 있다.

포럼을 찾은 1000여 명의 청중들

이날 알림터를 찾은 청중들 상당수는 건축전공자였는데, 세계적인 건축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 질문들도 쏟아졌다. 이중 건축전공자인 김정우 씨는 “당신과 같이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떤 방법을 거쳐야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지”에 대해 물었다. 하디드는 “만약 지원서에 오늘 포럼에 있었던 일을 쓴다면 참고는 하겠지만, 확답은 할 수 없다. 실력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바로 패트릭의 마음을 얻는다면 자신과 일하기 쉽다”고 재치 있게 답변했다.

사회를 맡은 배형민 교수는 하디드에게 ‘지금도 드로잉 작업을 하는지’를 물었고, 하디드는 “과거에는 몇 천 건의 드로잉에서 아이디어를 찾았었는데, 현재는 3D로 작업한 뒤 회의를 거친다”며, “컴퓨터 작업에서 여러 툴과 기술이 발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드로잉을 하는 게 흥미롭고, 지금 3D작업도 과거 수작업을 했던 밑천에서 나오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배 교수는 ‘부지 역사성과의 연관성’에 대해 설계자로서의 입장을 물었다. 패트릭 슈마허는 “성곽의 역사성이 경기장 역사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현재 건물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유적을 보이도록 자리를 그대로 남겨놓았다. 또 DDP는 유동적으로 변하는, 이를테면 공원이나 다른 요소를 더하거나 빼는 작업이 가능한 건축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포럼에 참석한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이선영 교수는 “DDP의 완공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비용`과다 논란과 주어진 환경에 대해, 건축가로서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자하 하디드는 “대형 공공건축물을 설계하는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넓게 보면 결국 사람을 위한 자산이 되고, 생산성을 높여주는 나아가, 서울의 건축, 산업, 디자인을 높여주는 일이다”면서, “페르시아 공원을 보면 수 백 년 전에 만든 거지만, 현재까지도 매우 아름답다. 도시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이 공공스페이스에서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런 과정은 굉장한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가치를 제공하는데 저희 작품이 역할을 하고 싶다. 아직도 DDP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따르지만, 저희는 7년 동안 열심히 협력하며 정해진 예산을 맞추고자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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