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향나무의 숨겨진 이야기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3.12.05. 00:00

수정일 2013.12.05. 00:00

조회 3,228

창덕궁 향나무는 용틀임하는 듯한 수피를 지녀 오래 눈길을 머물게 한다

[서울톡톡] 서울엔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 온 노거수(老巨樹: 오래되고 큰 나무)가 많다. 이 나무들은 '600년 고도(古都)'인 서울의 갖가지 역사를 품고 있다. 노거수 중에서도 보존가치가 높아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것이 바로 적게는 수백 년에서 많게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나이테에 간직한 천연기념물이다. 서울에 사는 총 12그루의 천연기념물 나무 중 두 그루가 향나무로 용두동 선농단과 종로 창덕궁에 살고 있으며 수령이 각각 500살, 700살이 넘은 노거수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 향나무 속에 속하는 늘 푸른 바늘잎나무(常綠針葉樹)다. 상나무, 노송나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와 마찬가지 양성수(陽性樹)여서 해를 좋아하며 그늘진 데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을 비롯해 경상북도 울릉도와 동해안에 자생하며 일본·중국·몽골에 분포한다.

곧게 자란 향나무가 군계일학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좌), 굽이치는 독특한 나무껍질로 향나무의 특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우)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던 선농단 향나무

향나무는 예부터 정원이나 우물가에 심기도하지만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리던 중요한 장소에 심었다. 그런 장소 중의 하나인 용두동 선농단(先農壇: 사적 제 436호)에 천연기념물 제 240호의 향나무가 살고 있다.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13.1m, 가슴높이의 둘레는 약 2.28m이다. 이 향나무는 선농단을 조성하였던 성종 7년(1476년)에 중국에서 선물한 어린 묘목을 심은 것이라고 한다. 제사가 끝나면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넣어 국을 끓이며,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지어서 농부들과 구경나온 노인에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이어 제사에 사용된 막걸리를 나무에 붓는데, 이 때문에 선농단의 향나무는 술 마시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또한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선농단엔 측백나무와 리기다소나무, 물오리나무, 현사시나무 등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데 제단의 문인석이 바라보고 있는 향나무가 군계일학처럼 자리하고 있다. 선농단을 축조할 당시 예닐곱 그루의 향나무를 심었다는데 이 한 그루만이 살아남아 선농단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대개 오래된 향나무는 구불구불 비틀어져 자라는 것과는 달리 이 나무는 곧게 자라고 있는데 이유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라 여러 나무가 같이 심겨졌다가 키우기 경쟁에 이긴 이 나무만 살아남아 그런 것이라고 한다.

선농단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내년 4월까지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있으며, 동대문구청에서는 선농단의 상징인 노거수 향나무 앞에서 매년 곡우(양력 4월20일경) 무렵 선농제를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ㅇ 위치 : 1호선 전철 제기동역 1번 출구 도보 5분
ㅇ 문의 : 동대문구청 문화체육과 02-2127-4321

2010년 태풍에 쓰러지기 전의 향나무 모습 (사진제공:창덕궁)(좌), 2010년 태풍에 부러진 모습이 마음 아프다(우)

태풍에 상처 입은 궁궐의 향나무

창덕궁 향나무(천연기념물 194호)는 수령이 7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 뿌리부분의 둘레가 5.9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 12.2m, 남북 7.5m로 퍼져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 담장을 따라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학자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100m 정도 걷다 보면 절로 눈길을 끄는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무려 700살이 넘은 신령스런 분위기의 향나무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자 왕실은 경복궁을 폐허로 버려두고 창덕궁만을 재건해 정궁으로 사용했다. 750살로 추정되는 이 향나무는 1824~1827년 사이 그려진 궁중 기록화인 <동궐도>에도 지주로 받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영욕을 50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본 이 생명체가 바로 천연기념물 창덕궁 향나무다. 향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부정을 씻어 주는 정화 기능을 가졌다고 믿어져 이렇게 궁궐을 비롯해 사찰, 사대부의 집에도 많이 심었다고 한다.

2010년, 가슴 아픈 일이 발생했는데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인해 12m나 되던 키가 4.5m에서 부러지는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큰 가지의 절반 이상이 부러진 실제 나무 모습을 보니 마치 존경받던 집안 어른 한 분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우람한 줄기나 용틀임하는 모습은 남아 있어 천연기념물로의 보존 가치는 여전하다고 한다. 잘린 부분은 종묘제례나 궁중 행사 등에서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한다고. 향나무는 향을 풍기는 여러 식물 중 가장 유명하다. 나무를 태울 때 강한 향이 나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시신이 상할 때 생기는 냄새를 없애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향나무를 태우는 향은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도 믿어져 제례에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향기를 뿜어내는 나무의 희생이 인간사에 많은 의미를 만들어준 셈이다.

위의 선농단 향나무도 그렇고 우리나라에 사는 나이 많은 향나무들은 모두 저마다의 강렬한 개성과 인상을 가지고 있다. 창덕궁 향나무의 가지들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무척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첫인상은 마치 나무가 용틀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무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 몸체에 마치 용(龍)이 하늘을 오르는 듯한 모양의 줄기가 꼬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침 옆을 지나던 외국인이 "Oh, my God!" 감탄을 하며 다가올 만하다. 향나무 특유의 용트림 하듯 가지가 뒤틀린 모습하며, 우람하고 당당한 밑줄기는 그런 감탄사가 충분히 나올 만하다. 비록 세월의 무게에 겨워 무거워진 몸을 철제 지지대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노거수의 위용은 여전하다.

소나무, 느티나무와 함께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나무지만 다른 나무들과 달리 향나무는 번식이 쉽지 않다고 한다. 잘 익은 씨앗을 땅에 심고 정성껏 돌봐주어도 싹은 잘 나오지 않는다. 향나무는 독특한 번식 전략을 갖고 있는데, 하늘을 나는 새를 이용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을 택한 것. 향나무는 새들의 눈에 잘 띄는 열매를 가지 끝에 맺어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이 향나무 열매를 삼켜서 씨앗에 붙은 과육을 소화시키는 동안 씨앗의 껍질은 새의 소화액에 의해 서서히 부식된다. 곧이어 씨앗을 품고 땅에 떨어진 새의 배설물은 싹이 틀 때까지 적당한 온도를 제공하면서 씨앗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일정한 양분까지 제공한다. 스스로 새로운 자리로 옮겨갈 수 없는 향나무를 대신해서 새들이 더 넓은 공간으로 씨앗을 퍼뜨려주기까지하는 흥미로운 후계목 생산 방법이다.

ㅇ 위치 :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에서 담장을 따라 100m 도보
ㅇ 관람문의 : 창덕궁 안내소 02-762-8261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

#창덕궁 #천연기념물 #선농단 #향나무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