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미로(美路), 옥인동 골목 기행

시민리포터 김종성

Visit4,554 Date2013.05.16 00:00

[서울톡톡] 화창한 주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렸다. 한양 도성 성곽길로 가는 중장년층의 등산복 입은 사람들, 삼청동과 북촌 · 통의동과 서촌으로 향하는 젊은 여인들, 경복궁으로 가는 호기심 가득한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그 많은 사람들과 차츰 거리를 두고 걷다보니 오래된 골목길이 나타났다. ‘서촌’ 마을이라 불리는 종로구 옥인동 골목. 내 어머니 이름이 ‘정옥’이어서 그런지 ‘옥인동’ 동네가 마냥 푸근하게 느껴진다.


옥인동으로 가는 길, 한옥집으로 된 동네의 터줏대감 ‘헌책방 대오서점’, 서점인지 동네 사랑방 혹은 문화 모임방인지 정체가 궁금한 ‘길담서원’, 아들이 빵 배달을 하며 가업을 배우고 있는 동네 빵집 ‘효자 베이커리’…. 참새의 발길을 붙잡는 방앗간들이 많아 시간은 자꾸만 지체된다.



한옥집과 단층의 주택들, 현대적인 건물들이 모여 있지만 어느 건축물도 하늘을 가리지 않고 동네 뒤편의 인왕산을 자랑하듯 내보인다.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걷고 있는데 날 쳐다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네에서 오래 살았음직한 고양이 한 마리가 한옥 지붕 위에 서서 낯선 여행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옥인동 언덕 동네로 가기 위한 관문인 신교동 80계단을 올랐다. 양 옆의 손잡이며 계단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계단에 떼로 앉아 있다가 날아오르는 참새들처럼 각종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동네 꼬마 녀석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런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 계단이란 단순히 층(層)의 반복일 뿐,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힘만 무척 드는 구조물일 것이다. 서울에 있는 후암동 108계단, 남산 삼순이 계단, 이화동 꽃계단, 삼청동 돌계단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 건 어릴 적 계단이 놀이터였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그 만큼 많기 때문이 아닐까.


노약자를 위한 손잡이가 있는 언덕 골목들이 마음 짠하게 다가온다. 어떤 이에겐 남루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겐 정겨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각기 다른 감성을 갖게 하는 게 옥인동 골목의 매력이다.


골목마다 어지럽게 들어선 전봇대와 전깃줄은 이웃 간의 긴밀한 교류를 상징하는 듯하고, 어느 집 붉은 벽돌 담장 위에 방범용으로 만든 뾰족한 쇠가시마저도 정답다. 언덕동네에 웬 고급스럽게 보이는 주택들이 지어져 있나 했더니 경관이 수려한 옥인동엔 옛날부터 부호들의 집들이 많았단다. 그런 집들 중의 하나가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파 윤덕영이 지은 이국적인 별장으로, 당시 사진으로 보아도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별세계 같은 집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왕산이 눈앞에 점점 다가와서 산행하는 기분으로 골목과 언덕길을 올랐다.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른 언덕배기 끝엔 말로만 들었던 옥인동의 보물, 종탑이 정말 있었다. 종을 울릴 때 쓰는 밧줄까지 걸려 있어 금방이라도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았다. 종탑 앞에 서면 인근 동네가 한 눈에 펼쳐져 눈이 시원해진다. 고층의 아파트와 드높은 빌딩이 안 보이는 서울 전경이라니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양 옆엔 청와대를 품고 있는 북악산과 늠름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인왕산이 들어서 있어 가히 좌청룡, 우백호란 풍수지리설 용어가 실감이 난다.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담으며 속으로 연신 감탄을 하고 있는데 교회 신자로 보이는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 같은 외지인이 종종 찾아오는지 해 저문 야경도 좋다는 정보까지 알려 주신다. 더불어 이 교회의 이채로운 내력까지 알려 주셨다. 1958년 건립 당시, 교회의 원래 이름은 ‘하와이 한인 기독교 독립교회’였단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육군공병단을 동원하여 지은 교회로 그가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했던 하와이 한인교회에서 이름을 딴 것이라고.


인왕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내려앉기 시작한다. 검게 변해가는 산의 실루엣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하니 무척 인상적이다. 교회 신자분의 말대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 동네 야경이 여유롭고 따스하고 정답다. 종탑에서 연말 자정에 새해를 알리는 재야의 종을 친다하니, 잊지 말고 꼭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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