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가 그린 `기린교` 아직도 있었네!
발행일 2013.05.02. 00:00
[온라인뉴스 서울톡톡] 당신에게 가장 좋았던 혹은 좋은 산은 어느 산이냐고 묻는 질문에 작가 김훈은 '집에서 가까운 산인 정발산'이라고 그의 수필집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거추장스러운 등산장비들을 갖추고 큰 맘먹고 가야하는 산들과 달리 사시사철 부담없이 오를 수 있는 동네 뒷산은 요즘 같은 날씨엔 정말 제격이다 싶다. 해발 338.2m의 나즈막한 산 인왕산은 리포터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대표적인 동네 뒷산이다. 얼마 전 어느 미술관에 들렀다가 옛 선조의 그림으로 이 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 (仁旺霽色圖)>가 그것. 인왕산 자락의 종로구 수성동 계곡 부근에 살았다는 그 또한 인왕산이 동네 뒷산이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림이 무척 새롭게 보였다. 문득 정선의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떠올리며 인왕산을 사진에 오롯이 담아 보고 싶어졌다.
인왕산도 다른 산들처럼 오르는 들머리가 여러 길이 있는데 이번 산행은 종로구 수성동에 있는 수성동 계곡을 들머리로 삼았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와 있는 이 계곡은 작년에 복원되어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곳이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 아래 첫 계곡으로, 조선시대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 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으며, 수성동의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 또는 계곡' 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오랜시간 막혀있었던 숨통을 터트리기라도 하듯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참 맑고 청아하다. 특히 이곳에 위치했던 아파트가 철거되고 이 지역을 원형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정선의 그림에 그려진 <수성동(水聲洞)>의 계곡과 다리 '기린교'의 모습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곳이기도 하다.
그 옛날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玉流洞)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으로 흘렀다. 뒤로 펼쳐진 소나무 숲 사이로 인왕산이 아름다운 병풍처럼 나있어 계곡에서 쉬이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수성동 계곡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인왕산길이 이어진다. 인왕산도 수성동 계곡처럼 한동안 긴 잠을 자야 했다. 1968년 발생한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출입이 전면 통제된 것. 간첩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25년 동안 평온한 잠을 잔 인왕산은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3월 25일 다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수성동 계곡에서 오르는 코스의 산행은 인왕산을 두 번 오르게 한다. 산의 초입에 있는 안내 팻말에 정상으로 가는 산길과 산속에 있다는 석굴암으로 가는 산행길이 나뉘어져 있다. 덕분에 인왕산을 두 번 오르게 되었는데 이것도 산의 높이가 낮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크고 작은 바위가 많은 산이지만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르다보면 바위와 소나무들 사이로 어느새 도시 서울의 전경이 발밑에 펼쳐진다. 풍수적으로 한양의 우백호라고 여겨졌다는 산이라고 하더니 낮은 산임에도 전망은 으뜸으로 쳐줄만하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답게 암자도 커다란 바위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시피 들어서 있다. '석굴암'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석굴암까지 오르느라 흘린 땀만큼 약수물을 실컷 마시고 산의 초입길로 내려와 다시 인왕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석굴암으로 오를때와는 또 다른 길과 풍경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앳된 얼굴의 군인이 인사를 하기도 하고 복원된 서울 성곽을 마주치기도 해 산행길이 다채롭다.
삶의 반세기를 인왕산 자락에서 살며 인왕산 곳곳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던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 '인왕제색도'는 그가 남긴 400여점의 그림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국보(제 216호)로도 지정되었다. 그의 나이 76세 때 비 온 뒤의 인왕산 경치를 지금의 효자동 방면에서 보고 그린 것이라고 한다. 겸재 정선은 중국풍 일색의 풍경화에서 벗어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畵風)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역시 예술이란 독창성을 빼놓을 수 없는 분야인가 보다.
돌계단과 성곽길을 번갈아가며 오르다보면 남산 위 남산타워와 북악산이 손 앞에 잡힐 듯 나타난다. 정상에 서니 인근의 서대문은 물론 멀리 일산까지 한 눈에 조망된다. 대통령이 사는 집 청와대는 마당이 보일 정도.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이 산자락에 도성과 궁궐을 짓자고 한 이유가 실감나는 산이다. 결국 정도전에 밀려 경복궁은 이웃 백악산 (현재의 북악산)에 짓게 되었지만….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主山)으로 궁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도전은 백악산이 좋다며 반대했다. 그는 무학대사가 추천한 위치는 동쪽이고 터가 너무 좁아 경복궁 위치로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200년 후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저주 같은 예언으로 정도전을 압박했지만 결국 경복궁은 정도전의 고집대로 백악산을 등진 현재의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무학대사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인지 딱 200년 뒤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동네 뒷산답게 한달음에 오르기에는 약간 벅차고, 등산복 제대로 갖춰 입고 오르기에는 낯간지러운 애매한 높이의 산이지만, 소나무와 화강암 바위들의 조화로 이뤄진 늠름한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다. 국보 <인왕제색도>가 괜히 탄생한게 아니었다. 평소 디지털카메라에 왜 아직도 흑백사진기능이 있나 의아해 했는데 아마 이런 멋진 산을 그림처럼 담아보라고 그런 기능을 남겨둔 것이 아닌가 싶다.
ㅇ 교통편 :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09번 마을버스를 타면
수성동 계곡 바로 앞이 종점 (20여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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