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시민리포터 이나미

발행일 2013.04.12. 00:00

수정일 2013.04.12. 00:00

조회 1,912

'밤의 도서관에서 번개 어때요?'

[온라인뉴스 서울톡톡] 옛 '서울시청'이 시민의 랜드마크인 '서울도서관'으로 태어난 지도 벌써 반년이 다가온다.

이 도서관에 벌어지는 모습은 세상 모든 도서관과 똑같다. 예를 들면, 도서관 이용시간이 끝났음에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학생들부터 온종일 대출서비스와 민원으로 씨름하는 도서관 직원들, 도서 조회용 PC로 몰래 인터넷 서핑을 하는 시민들까지 도서관하면 쉽게 떠오르는 풍경이다.

단, 서울도서관에는 다른 도서관에서 보기 힘든 이색적인 공간이 있다. 바로 '벽면서가'와 '생각마루 계단'이다. 도서관 1층과 2층 사이를 연결하는 이곳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장소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진종일 동화책을 끼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그곳을 이용해 또 한 번의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다. 바로 '밤의 도서관에서 만나는 번개'였다.

6일 오후 2시. '밤의 도서관' 행사 전 앞서 도서관 4층 사서교육장에서는 '낮의 도서관, 아프지만 괜찮아'라는 북 토크가 마련되었다. 작가이자 CBS 라디오 PD인 정혜윤씨가 사회를,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쓴 아동문학가 고정욱 씨와 <괭이부리말의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 씨가 출연자로 나왔다. 이들은 만성, 희귀난치성 환자와 환우가족들과 함께 세상을 힘차게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의 도서관에서 책과 영화로 여행을 이야기하다

도서관 이용시간이 종료되길 기다려지기는 처음, 드디어 불이 꺼졌다. 어두워진 도서관에서 소음이라곤 창밖의 빗소리 뿐.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했다.

저녁 7시 15분. 보슬비를 뚫고 온 120명의 시민들은 숨죽이며 도서관으로 하나둘씩 들어왔다. 그 후 생각마루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수첩 하나만 들고 혼자 방문한 학생부터 수많은 데이트 명소를 뒤로하고 밤의 도서관을 선택한 연인들, 정장 차림의 할아버지까지 모두 달콤한 토요일 밤을 북 토크와 함께 하고자 이 불이 꺼진 도서관에 온 것이다.

어느새 북 토크 시간이 다가왔고 벽면서가에는 레이저빔을 이용하여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란 명화가 비춰지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이어 '낮의 도서관'을 진행했던 정혜윤 PD가 다시 등장해 반가운 마음과 북 토크 콘셉트 동시에 담은 인사말로 '밤의 도서관'의 시작을 알렸다.

"빗속을 뚫고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좋아하는 책은 비밀리에, 비밀 장소에서 얘기해야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합니다."

북 토크는 '책과 영화, 여행이 만났을 때'를 주제로, 여행가이자 작가 김남희, 영화평론가 김세윤, 씨네 21 주성철 기자가 초대 손님으로 나와 시민들과 밤의 도서관을 밝혔다.

총 2부로 진행된 행사는 먼저 남미 여행이야기로 1부를 꾸몄다.

체 게바라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로 유명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있다. 이 영화는 영화평론가 김세윤 씨에게 잡지사를 그만두고 남미 여행을 시도하도록 용기를 선물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남미 여행의 에피소드를 전한 김세윤씨는 시민들에게 "좋은 책과 여행이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6개월을 선물해 준 '남미'에게 고맙다. 여행과 책을 통한 경험은 이전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 뭔가 의미 있게 다가오게 해준다. 여러분들도 한번뿐인 하루를 여행, 책, 영화로 채워나갔으면 좋겠다"고 책과 여행의 가치를 강조했다.

"나는 거리로 나가련다.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

이어서 여행가이자 작가인 김난희 씨가 칠레가 낳은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책에 부치는 노래') 일부를 읊으며 밤의 도서관의 즐거움에 또 하나의 불을 밝혔다.

김씨는 "여행과 책은 우리를 잘 사게 하기 위한 수단 즉, '몸으로 읽는 책'이다. 이것이 책과 여행이 갖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일 년이 넘는 남미 여행 중 '파타코니아'라는 지역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말한 그녀는 실제로 여행을 떠나기 전, 루이스 세풀베다가 쓴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를 읽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지역에 대해 "(파타고니아에서는)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만 바라보다가 하루가 지나갔다. 그래서인가 이곳을 모든 방랑자들의 종착지이며, 모든 욕심, 시기, 질투가 씻겨 나가는 땅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시작한 2부는 '씨네21'의 주성철 기자가 출연해 시민들과 함께했다.

최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란 책을 출간한 주기자는 장국영을 매개체로 한 자신의 책과 여행 이야기를 풀어갔다. 평생 장국영에 관한 모든 걸 기록하고 수집했다는 그는 여행에서도 장국영을 잊지 않았다.

"제주도도 한번 가본 적 없던 내가 홍콩은 무려 30번이나 찾았다. 그만큼 장국영과 홍콩을 좋아했고,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매번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장국영의 영화 촬영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 후 다시 그곳을 찾을 때마다, 촬영 장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웠다. 장국영이란 배우를 통해 나를 포함한 우리는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90년대 시절을 떠올린다. 결국 여행이란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굳이 밤의 도서관을 열고 싶었던 이유

"이 세상은 이미 지옥이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을 지옥 같지 않게 사는 것은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옥같이 묻혀 사는 것. 두 번째는 지옥 같은데서 지옥이 아닌 것처럼 사는 사람을 찾는 것"

북 토크가 끝을 향해 달리자, 정 PD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책 구절을 읊었다. 이 구절을 통해 행사가 갖는 깊은 뜻을 시민들에게 표현했다.

책과 영화도 여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정PD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리워하는 방법이 도서관과 밤 아닐까"라고 책과 밤의 공통점을 말했다. 끝으로 시민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밤의 도서관을 구상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인간은 가련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하루에 겪은 일들을 다 생각하면 못 버티죠.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밤과 잠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굳이 밤의 도서관을 하려고 했던 이유였습니다."

고단한 하루에서 쉼을 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밤의 도서관이었다는 의미. 아마 그 쉼을 향해서였기에 비를 뚫고 그 많은 이들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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