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수록 설레는 `서울숲 남산길`

시민리포터 이은자

Visit4,754 Date2013.03.29 00:00


[서울톡톡]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로 나와 10여 분을 걸어 서울숲 원형광장으로 갔다. 날씨가 꽤 쌀쌀했는데도 서울숲은 가족, 연인, 그리고 체험학습장을 찾은 어린이들로 북적거렸다. 아직은 삭막한 서울숲이 가장 빨리 만개한 노란 산수유꽃 덕분에 화사했다.


이곳을 찾은 건 친구가 들려줬던 ‘독서당’에 대한 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간다. 세종은 집현전 소속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서 독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실시하고, 관료들에게 삶의 지혜와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책을 통해 배우게 했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 총명한 젊은 인재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여가를 주고 글을 읽혀 훗날 크게 쓸 바탕을 갖추게 하고자 시행된 인재 수양, 양성시설이 바로 독서당이다.


찾아보니 독서당공원이 바로 ‘서울숲 남산길’ 2코스라는 걸 알았다. 삼한사온의 겨울날씨처럼 봄날씨도 꽃샘추위와 황사 등으로 변화가 심해서 쾌청한 주말나들이의 행운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완주계획을 세우고 집을 나섰다.


서울숲에서 남산에 이르는 코스는 모두 7코스로 8.4km 거리다. 1코스는 ‘하늘전망대길’로 서울숲에서 응봉산 팔각정까지 1.4km, 2코스는 ‘새소리길’로 응봉산 팔각정에서 대현산까지 0.8km, 3코스는 ‘어울림길’로 대현산에서 대현배수지공원까지 0.9km, 4코스는 ‘꿈나무길’로 대현배수지공원에서 금호산 맨발공원까지 1km, 5코스는 ‘건강숲길’로 금호산에서 매봉산 팔각정까지 1.6km, 6코스는 ‘생태체험길’로 매봉산 팔각정에서 국립극장까지 1.5km, 7코스는 ‘솔내음길’로 국립극장에서 남산N타워까지 1.2km이다.


서울숲만을 기웃거려도 한나절이 걸릴 텐데, 갈 길이 멀어 안내지도로 가서 1코스인 응봉산 팔각정으로 가는 지름길인 용비교를 찾았다. 그런데 용비교가 공사 중이어서 2014년까지 보행로가 폐쇄됐다는 안내문을 읽고 사슴목장으로 가서 바람의 언덕에 올라 생태숲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생태숲다리를 지나면 한강수변공원을 지나 중랑천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응봉역으로 갈 수 있다. 용비교 공사로 꽤나 먼 길을 휘돌아 왔지만, 사슴목장과 생태숲, 생태숲다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스러운지! 그리고 뜻밖에도 시원한 한강과 바로 이어져있어 숨은 비경을 찾아낸 것처럼 감탄사를 연발했다.


응봉산 팔각정, 야경 사진의 명소


서울숲에서 바로 지척인 응봉산 팔각정, 개나리축제로 유명한 응봉산에 아직 개나리가 만개하지 않아 심심하고 다소 지루하기도 했지만 팔각정에 오르자, 이 코스가 ‘하늘전망대길’인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청계산, 우면산, 관악산이 병풍을 이루고 강변북로와 한강 위의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의 기하학적 조화가 서울을 실감나게 해줬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역동적인 한강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팔각정이다. 이곳에 와서 팔각정에 오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특히 이곳에 있는 포토존은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야경 작품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명소라고 한다.



다음 코스는 바로 ‘독서당공원‘을 경유한 ‘새소리길’이다. 응봉산팔각정에서 내려오자, 바로 길 건너 독서당공원으로 갈 수 있는 생태통로가 나왔다. 독서당공원은 무허가 난립촌을 개발하기 위해 1973년에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으나 35년 이상 방치됐다가 ‘공원화사업지구’로 변경 지정돼서 2009년 생태공원으로 탄생됐다고 한다.


그럼 왜 이곳이 독서당공원일까? 성동구에는 중종 때 옥수동 한강 어귀에 세운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 있었다. 1989년 서울시에서 ‘독서당 표지석’을 설치했는데, 구청이 2009년 표지석을 새롭게 정비해 전통과 현대,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거리로 조성한 것이다.


3코스 어울림길인 대현산배수지공원은 면적 7만 5,570㎡의 대현산배수지 위 공간을 활용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콘크리트로 복개된 대현산배수지 위에 들어선 공원은 다양한 생활체육·휴식 공간과 녹지공간으로 구성됐으며, 공원에는 다목적 잔디광장, 다목적경기장을 비롯하여 조깅트랙, 배드민턴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등의 다양한 체육시설이 조성돼 있다. 공원 곳곳에는 느티나무·소나무·메타세쿼이아 등 44종 5만 주 가까운 수목이 식재됐고, 조명시설도 잘 돼 있어 야간에 이용하기에도 좋고, 24시간 개방되며 주로 성동구 금호동과 왕십리 지역 주민들의 휴식·체육 공간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배수지공원에서 내려가면 신금호역에서 청구역으로 가는 금호동길이 나온다. 길을 건너 재개발로 어수선한 가파른길을 한참 오르는데 5번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어디를 가든 마을버스를 만나면 정겹고 안도도 된다. 마을버스가 보이지 않은 길 끝에 닿아 돌아서니 대경상고와 동산초등학교, 버스종점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4코스 꿈나무길 끝인 ‘응봉근린공원’ 표지석이 크게 자리한 금호산 맨발공원이었다. 코스를 지날 때마다 코스 안내가 잘 돼 있고, 코스마다 역사, 문화, 건강, 생태 등의 테마를 담고 있어서인지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초행이지만 다음 코스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은…


그러나 맨발공원 앞에서는 이곳에서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금호산에서 매봉산으로 가는 5코스 건강숲길 이정표를 보고 머뭇거리다가 금호산공원 산책로로 내려갔더니 낯익은 남산타워와 그 아랫동네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잘 닦여진 트레킹코스와 생태이동통로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 새 6코스 생태체험길까지 왔다. 서울방송고를 지나 매봉산 팔각정에 오르니, 이제껏 보아온 어떤 조망보다도 탁월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탄성을 질러대는 것보다 더 큰 서울의 매력을 조용히 느낄 수 있었다.


서울숲 남산길 코스에서는 응봉산과 매봉산 두 팔각정에 반드시 올라가서 한강을 내려다 봐야 한다. 매봉산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한강상류의 정경은 정말 압권이었다. 응봉팔각정의 전망이 역동적이라면, 매봉팔각정의 전망은 고요한 호수처럼 정적이었다. 팔각정 아래 세워진 오동춘 시인의 ‘매봉산에서’라는 시비를 잠시 음미하며, 마지막 코스 7코스로 가기 위해 버티고개 생태통로로 내려갔다. 이곳은 다산로로 끊긴 남산과 매봉산을 생태적으로 연결시켜놓은 중요한 생태통로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오르면 남산성곽길, 장충단공원으로 가게 되고, 국립극장으로 내려가면 마지막 7코스인 솔내음길, 피톤치드 산림욕을 하며 20리길 서울숲 남산길의 마무리 남산N타워에 오르는 길이다.


점심도 거르고 고구마 두 개와 생수 한 병으로 완주해 온 ‘서울숲 남산길’, 마치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역사소설 한 권을 정독하듯 그렇게 푹 빠져 걷고 또 걸었다. 아직 봄이라기보다는 겨울 끝을 느끼게 하는 숲이었지만, 이제 싹 틔우는 새싹과 수수 알갱이처럼 맺혀있는 꽃망울들이 더 귀하고 앙증맞아 내내 설레고 즐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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