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덕수궁, 경희궁만 용 그림으로 바뀐 이유?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오인철

발행일 2012.10.31. 00:00

수정일 2012.10.31. 00:00

조회 6,725

[서울톡톡] 서울시에는 조선시대의 궁궐이 다섯 개가 있고, 각 궁궐에는 임금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거나, 왕위 즉위식이나 외국사신 접견 등 국가의 중요 행사를 치르던 곳인 정전이 있다. 각 정전으로 들어서면 천장 중앙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자, 우선 황룡이 있는 정전으로 찾아가 보자. 조선시대 첫 궁인 경복궁 근정전은 태조3년(1394)에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타 고종 4년(1867)에 재건하였다. 근정전 천장을 올려다보면 한가운데에 칠조룡으로 발톱이 일곱 개인 두 마리의 황룡이 있다. 근정전 천장에 칠조룡이 있는 사연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나와 중국에서는 오조룡은 왕을 상징하며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은 황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했다. 명나라 제후국을 자처했던 조선은 발톱 4개 밖에 쓸 수 없었지만 청나라가 들어선 뒤 은밀히 발톱 5개를 적용했다. 청일전쟁 이후 고종 때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근정전 천장의 황룡 발톱을 7개로 다시 그렸다. 대한제국이 더 이상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는 뜻의 표현이자 대한제국의 존엄성을 나타낸 것이었다.

경복궁 근정전과 같이 황룡이 그려진 곳으로 덕수궁 중화전과 경희궁 숭정전이 있다. 중화전은 1902년 건립된 덕수궁의 정전이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에서 비롯된 큰 화재로 현재의 덕수궁 영역이 잿더미가 되면서 중화전은 옛 모습을 잃고, 지금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1906년 재건된다. 이곳에서는 당시의 궁핍한 재정상황과 더불어 나날이 쇠락해 가는 대한제국의 면모를 엿볼 수 있지만 천장에는 다섯 개의 발톱이 있는 두 마리의 황룡이 있다.

경희궁 숭정전은 원종의 집터에 세워진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이궁이다. 광해군 8년(1616)에 세워진 경희궁은 원래의 규모는 약 23만1,405여m²(7만여 평)이었다. 그러나 민족항일기인 1907년부터 1910년에 걸쳐 강제로 철거되어 궁궐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였고 궁터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변형되어 결국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2002년 숭정전 지역을 복원하여 시민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숭정전 천장에는 커다란 구름 사이에 7개의 발톱을 가진 두 마리의 황룡이 있다. 황룡의 그림모습이 다른 두 정전의 모습 보다는 다소 빈약하다. 3곳의 정전 규모와 복원 시점에 따라 다른 모습의 황룡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봉황이 있는 정전으로 찾아간다. 황룡은 천자만이 쓸 수 있는 상징물이요 그 아래 왕후는 봉황을 쓰게 하여 종속관계를 표방해온 지배철학이 있었다.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로부터 유래된 서조(瑞鳥)로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라고 전한다.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암수를 같이 불러 봉황이라 한다. 봉황의 생김새는 앞 모습이 기러기(군신의 의), 뒷모습은 기린(어진성군), 부리는 닭(밝음을 가져옴), 턱은 제비(천심전달), 등은 거북(재앙을 막고 앞날 예견)을 닮았다고 한다.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이다. 창덕궁 인정전은 정궁인 경복궁 근정전보다 더 많이 쓰인 정전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 근정전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전이 되었다. 현재 인정전의 모습은 1999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인정전 천장을 보면 두 마리의 봉황이 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봉황의 출현은 성군이 존재하고 있음을, 혹은 백성이 평안한 태평성대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층 전각인 인정전 내부에 들어서도 천장의 봉황 모습을 바라보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문 밖 전면과 측면에서도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창경궁 명정전은 창경궁의 법전(法殿)으로 궁궐 내에 으뜸가는 전각이다. 원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명정전은 현재 남아 있는 궁궐의 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명정전의 천장에는 두 마리 봉황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탈색이 되어 있다.

서울 5대 궁궐의 정전을 둘러보며 천장의 벽화가 다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용과 봉황은 군왕이 갖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하여 군왕을 상징해왔는데 두 상징에 서열을 매길 때는 용을 상위에 두어 천자 곧 황제의 상징으로 삼았고 봉황은 황후의 상징이나 천자에게 사대하는 제후나 왕의 상징으로 쓰였다.

그래서 천자를 섬기던 조선시대 왕궁 정전 천장에 용을 그리지 못하고 봉황을 그렸는데 조선 말기에 고종께서 청나라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왕에서 황제로 승격되면서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 경희궁 숭정전 천장의 봉황 그림이 황제의 상징인 용 그림으로 바뀌었고 황룡의 발톱 수는 칠조룡과 오조룡으로 되어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당시 집무를 보지 않던 창덕궁 인정전과 창경궁 명정전 천장그림은 두 마리 봉황으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근정전의 용과 인정전의 봉황은 한국사의 아픈 단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 상징인 봉황을 아직도 대통령 상징문양으로 널리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것도 역사의 해프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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