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을까?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2.09.24. 00:00

수정일 2012.09.24. 00:00

조회 2,924

9월은 왜 독서의 달일까?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니, 가을이 놀러가기 좋은 계절이라 국민들의 독서량이 줄어드는 관계로 책읽기를 독려하기 위해 그리 정했다는 답이 달린다. 근거 불명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 가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2007년 12권을 기록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락 중이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영상문화와 인터넷, 모바일을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의 선두에 선 SNS까지 책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종이책에는 다른 무엇이 충족할 수 없는 묘한 감수성과 안정감이 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가을에 제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종이책 냄새를 듬뿍 맡을 수 있는 도서관을 시민리포터들이 찾아 나선다. 첫 번째는 아름다운 가족이 뜻을 모아 만든 너무나 귀한 어린이 도서관이다.

[서울톡톡] "저희들끼리 좋아서 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아무 때고 와서 영어 동화책 실컷 보고 가면 되는 거예요."

강북구 우이동에 작은 영어도서관이 생겼다. 지난 8월 10일 개관한 <강북그린 작은 영어도서관>(관장 이성일)은 문화시설이 취약한 곳에 문을 열어 반가움을 더하고 있다. 뿐인가, 영어도서관이 만들어진 과정을 소상하게 듣고 나면 이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전남 나주에서 서울로 상경해 이곳 강북구 우이동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후, 37년간 한 장소에서 방앗간과 떡집을 운영해 왔던 이윤헌(67), 정춘자(61) 부부. 2남 1녀 자녀들도 모두 이곳에서 낳고 키웠으니, 이들에게 있어 우이동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아이들도 무탈하게 잘 커 줬고, 성실하게 일한 덕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빌라 앞에 3층 상가 건물도 소유하게 됐다. 그 건물 1층에서 한미방앗간을 운영 중인 이윤헌 씨는 늘 자녀들에게 "강북 사람들 덕에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니, 동네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없던 중고등학교시절엔 부모님께 제발 이사 가자고 졸랐어요. 부모님은 꿈쩍도 않으셨어요. 아버지가 이 동네를 너무 좋아하시는 거 있죠." 큰딸 이숙영(38) 씨의 회고다.

막내아들 이성일(34) 씨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통계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한 재원으로 캐나다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해 놓은 상태에서 한 달 동안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십자인대를 크게 다쳐 수술했던 그는 한국에 들어온 김에 검사를 받게 됐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 재수술과 1년 넘게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캐나다 입국을 포기한 그는 재수술 후 1년 넘게 강도 높은 재활 치료를 해야만 했다. 십자인대는 손상되면 운동선수들도 수술 후 호된 재활기간을 거쳐야 제 기능을 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상태가 호전된 그에게 어머니 정춘자 씨는 "그동안 외국에서 공부한 것이 있으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이라도 해라"라며 아들의 재능을 아까워했다.

이성일 씨 역시 미국유학시절 외부활동으로 학점을 채우는 시스템의 일환으로 한 학기 동안 데이케어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책을 읽어줬던 경험을 떠 올리며,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줄만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에서의 이 같은 경험도 경험이지만 외국에서 생활 할 당시, 동네 작은 서점에서 서점 주인이 직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곤 했다.

강북구 첫 사립 영어도서관, 가족들의 재능 기부로 탄생하다

이성일 씨는 도서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그의 제안에 부모님과 형, 누나 등 가족 모두가 동참했다. 부모님은 흔쾌히 자신 소유의 건물 2층에 있는 40여 평 공간을 내 주었을뿐 아니라 아버지 이윤헌 씨는 자비를 들여가며 영어도서관의 내부 인테리어를 도맡아주었다. 통역관이면서 미국에서 군인으로 있는 장남 이계훈(36) 씨는 미국에서 중고책 4천여 권을 구입해 보내줬다. 7살과 3살 자녀가 있는 그는 아이들에게 어떤 책이 유익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자신의 아이에게 읽힌다는 생각으로 책을 선택해 보내주며 도서관 탄생에 일조했다.

형으로부터 받은 책을 꼼꼼하게 연령대별, 난이도별로 분류하는 것은 이성일 관장의 몫이었다. 선별을 거친 책 3천500여 권 겉표지에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주황, 검정 등 총 6단계의 스티커를 부착해 아이들이 쉽게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부족한 책은 인터넷을 통해 추가 주문하기도 했다. 도서관 운영을 준비하면서 타 지역의 도서관도 꼼꼼하게 둘러봤다.

<강북그린 작은 영어도서관>을 방문한 어린이에게 이성일 관장은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관장님'을 자청했고 결혼해서 광진구에 살고 있는 이 관장의 누나 이숙영 씨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도서관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서관의 정리정돈은 물론 도서관 안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책꽂이 모서리에 안전장치를 붙여 놓는가 하면 책을 읽으러 온 아이들이 그린 그림까지 벽에 소중하게 붙여 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있다. 화초를 잘 가꾸는 어머니 정춘자 씨는 개관식 때 들어 온 화분과 자신이 키웠던 화분들을 과감하게 영어도서관 가운데로 몰아 작은 녹색정원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 놓으니, 너무 좋구나!"

가족들 모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재능으로 <강북그린 작은 영어도서관>을 꾸몄다. 이렇게 가족 모두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도서관에 제일 애착이 큰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님. "이렇게 해 놓으니 너무 좋다"며 하루에 몇 번씩 올라와 본다고 한다. 이곳을 즐겨 찾는 주민들 또한 "어딘가로 멀리 찾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거리와 불편함이 없어 너무 좋다"며 반가워한다.

"이곳이 아이를 키우는 강북 주민들이 즐겨 찾는 영어 문화 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 이성일 관장의 바람 전부다. <강북그린 작은 영어도서관>은 자유롭게 앉아 영어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메인 홀과 유아들이 놀 수 있는 유아존, 영어 학습을 할 수 있는 강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도서관이 좀 안정 되면 영어학원에 갈 형편이 못 되는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다.

1인당 2권에 한해 일주일간 무료로 영어동화책을 대출 해주고 화~금요일(오전 11시~ 오후 6시), 토요일(오전 11시~ 오후 4시)은 영어도서관 내에서 영어 동화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 02)990-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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