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같은, 혹은 숨바꼭질 같은 전시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고은빈

발행일 2012.09.24. 00:00

수정일 2012.09.24. 00:00

조회 2,498

[서울톡톡]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는 건물 숲 사이 서울을 지키는 궁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작품이다. 그 궁을 더 가까이서, 새로운 시각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한 '덕수궁 프로젝트'다. 실험적인 전시에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찾고 있다.

역사를 품은 작품, 작품을 품은 궁

경내 작품은 주로 설치미술이라 눈에 잘 띌 것 같았지만 작품들은 궁궐 곳곳에 꼭꼭 숨어 있었다. 눈을 들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지 좀 되어서야 수상해 보이는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금빛 파도가 너울대는 것 같은 모습, 덕흥전이다. 금빛 파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좌식의자들인데, 별 의미 없이 보이겠지만 이 속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원래는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었으나 한일병합 후 입식 구조로 개조된 이곳을 좌식의자의 배치로 잠시나마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하려 한 것이다. 고종의 침전이었던 함녕전에 설치된 석 채의 보료 또한 비운의 군주였던 고종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다. 이 작품은 미술관에 있는 영상 작품과 연계되는데 3개로 나누어진 스크린에서 고종으로 대변되는 무용가가 잠에 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찍 떠난 두 아내를 그리는 한 사람이었고 위기에 처한 국가의 군주였던 고종의 고민과 불안이 그대로 묻어난다. 광해군 시대 인목대비가 5년간 유폐된 바 있는 석어당에서 외로이 빛나는 눈물 모양의 조각은 궁궐의 여인들의 운명과 한을 담고 있다.

전시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궁 내 건물은 역사를 담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이다. 평소엔 볼 수 없었던 함녕전, 덕흥전, 석어당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다. 계단 아래서 올려만 보던 궁과 직접 발을 디딘 궁은 사뭇 달랐다. 창문과 그 뒤로 보이는 풍경이 거대한 병풍을 연상케 하고 손때 묻은 사진이나 얼굴이 새겨진 거울은 과거와 현재가 분절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 했다. 마루와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으로 전해져 오는 선선함은 그 어디에서나 쉽게 접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도 작품인 양 한 건물 마다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전시

이 전시회를 제대로 즐겨볼 생각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 보물찾기나 숨바꼭질 같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간대에 짧게 방문하는 것보다 두 번 정도 다른 시간대에 방문하거나 한 번 길게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특정 시간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낮에는 미디어 전시를 보기가 힘들다. 중화전에서 펼쳐지는 미디어와 레이저의 향연은 지난 9월 22일과 오는 29일, 30일 7시 경에만 볼 수 있다. 10월에는 첫째, 셋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 6시 30분에 시작한다. 덕수궁 숲에 있는 영상 설치 작품은 낮보다는 밤에 상대적으로 더 잘 보인다. 석어당 한 편에 위치한 덕혜옹주의 사진 또한 스크린에 상영되기 때문에 밝은 낮에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해가 떨어지면 궁 내부나 궁에서 보는 풍경이 아쉽다.

숨겨진 이야기도 많고 설치미술의 경우 빛의 여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모든 모습을 찾아내는 데 시간은 걸리지만 그만큼의 찾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선선한 가을, 궁궐과 예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벗 삼아 거닐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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