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극인 가야금과 아쟁의 대화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양준희

발행일 2012.08.03. 00:00

수정일 2012.08.03. 00:00

조회 2,287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작년 덕수궁 정관헌에서 공연을 할 때 설렘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정관헌처럼 관객이 같이 호흡해 주는 곳은 흔치 않은 만큼 그 성원에 보답코자 이번엔 꼬박 한 달을 준비했습니다."

얼마 전 덕수궁 정관헌에서 아쟁과 가야금 합주를 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과정 중인 김성근(28), 박이슬(25)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3년 넘게 호흡을 맞춘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지만 이번 공연에 있어서 만큼은 둘 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모습이다.

악기 궁합에 있어 아쟁과 가야금은 상극적인 음률을 지녔기에 더욱 그랬다. 자칫하면 가야금 소리가 아쟁에 잡아먹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순간이었고 아쟁은 연주 내내 가야금을 신경을 써 줘야만 한다.

이번 공연은 굉장한 모험이자 새로운 시도인 셈이었다. 전문가들도 악기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조합이 있는 반면 일방적으로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조합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한쪽 소리가 완전히 묻히는 조합 즉, 만나면 안 되는 조합도 있는데 국악에서는 아쟁과 가야금을 꼽는다.

이유는 아쟁의 굵고 강한 음색이 민속악 합주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내지만 반대로 가야금은 탄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경쾌하고 담백한 선율이 특징. 이 둘이 조합되면 가야금은 아쟁 소리에 묻혀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사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조합으로 덕수궁 정관헌 무대에 섰다. 속사정을 알리없는 관객들은 마냥 기대에 찬 모습이다. 오후 7시  정각, 공연이 시작되었고 두 사람이 현을 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묵직한 아쟁의 소리가 선두를 치고 나가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는듯 했지만 예상과 달리 이내 아쟁 소리는 잦아 들었고 가야금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야금 산조(독주)와는 확실히 다른 소리가 들린다. 가야금 소리에 안정적인 뒷배의 여운이 느껴질 만큼 탄탄한 조화가 느껴지면서 어느 순간 가야금 소리가 귀에 감기기 시작했다. 가야금만으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소리가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아쟁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힘 조절은 물론이려니와 현까지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했다. 그만큼 아쟁의 소리가 절대적이며 매 순간 가야금을 배려하는 결코 쉽지 않은 구성이 연출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과감한 시도가 성공하는 순간이었고 관객들 역시 이내 소리에 빠져 들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 후 석관동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박이슬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방과후 학습으로 가야금을 시작한 것이 어느새 18년이나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이제 막 프로 세계에 입문한 초짜라며 한사코 겸손을 떤다.

"다른 분들에 비해 연주 경력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감히 말씀드리면 우리 음악에는 희노애락이 전부 다 있습니다. 앞으로 평생 연주를 하겠지만 이제 겨우 가야금을 조금 안 듯한 느낌입니다."

악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덕수궁 공연에 대한 뒷얘기가 나왔다. "정관헌 공연은 한달 전에 기획하고 2주 전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했습니다. 사실 그날 응원차 와 준 친구들조차 아쟁과 가야금 조합을 보며 기대반 우려반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솔직히 '재들 뭐 해?' 라는 사람까지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고는 모두 굉장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지는 몰랐던 부분입니다."

같이 아쟁을 연주했던 김성근 씨 역시 같은 학교 3년 선배로 집안이 3대째 국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음악을 이해하는 가치관이 비슷해 박이슬 씨와는 3년째 같은 팀으로 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 국악은 많은 창작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렇다할 형태를 찾지 못하는데에서 오는 혼란 즉, 과정 자체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도기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창작들이 시도되어지고 있으며 저희 역시 뭔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발전된 모습으로 대중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가려 합니다."

두 사람은 모든 음악이 그렇듯 국악도 기본기 위주와 테크닉 위주로 연주하는 부류가 있는데 본인들은 기본기 위주로 악기를 탄다고 밝혔다. 그리고 여기에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약간의 변화를 주는게 포인트라고 덧 붙였다. 아쟁과 가야금의 합주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가치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다양한 창작 연주를 시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요즘 양악이 하우스 콘서트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옛날부터 사랑방 문화라는 게 있었습니다. 안방에 사람들이 있고 마루를 건너 사랑방에서 연주자가 악기를 탔습니다. 저희 역시 혹여 이런 자리가 마련 된다면 관객수와 상관없이 어디든 갈 계획입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함께 발전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차세대 명인들의 선전이 기대되는 대목이며 더불어 앞으로의 우리 음악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의 발전상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이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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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국악 #정관헌 #아쟁 #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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