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고 생선이고 고생을 좀 해 봐야...

조양옥

발행일 2011.08.08. 00:00

수정일 2011.08.08. 00:00

조회 1,975

외국에 살다 보면 명절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기가 일쑤고, 설사 날을 기억했다 해도 딱히 찾아갈 친척도 없으니 달리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처음 몇 해는 아이들에게 우리 명절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슈퍼마켓에서 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사다 송편을 빚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니 명절은 여느 평일과 다름없이 지나가곤 했다.

10여 년 만에 고국에서 맞는 명절. 음식 장만을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을 따라갔다.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예전에 싱싱한 생선과 횟감을 사러 가끔 들르곤 했던 노량진 수산시장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규모도 매우 커졌고, 어시장 자체가 모두 실내에 위치해 있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목포유달수산, 부안꽃게, 영광수산, 한라수산, 제주전복, 당진수산, 김천상회, 천안상회, 용문수산, 나주수산, 변산상회, 완도전복, 청해낙지 등 한반도의 내로라하는 수산 도시의 이름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다.

명절 때 빼놓을 수 없는 동태전을 부치기 위해 동태포 두 뭉치를 샀다. 지금 막 풀어놓아 파닥거리는 준치가 손님을 부르는 듯했다. ‘썩어도 준치’, ‘가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말레이시아에서 수년 동안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한 준치를 욕심껏 봉지에 집어넣었다. 준치구이를 해 먹으리라. 물오징어까지 몇 마리 샀다. 왜 이리 생선 욕심이 생기는지.

열대의 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 먹는 생선은 한국 생선과는 맛이 다르다. 하얀 생선살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덜하다. 시어머님은 생선을 잡수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여기 것들은 모두 뜨뜻한 물에서 자란 것들이라 맛이 없어. 사람이고 생선이고 찬물에도 살아보고 고생을 좀 해야 살도 단단하고 고소함도 더한 법인데….” 항상 더운 여름 날씨뿐인 말레이시아에선 바닷물이 따뜻해서 생선들이 살기가 너무 편하다는 어머니의 이론이다. 겨울의 쩡쩡한 한기를 알지 못하는 생선은 고소하고 깊은 맛이 덜하다는 어머님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맞는지는 알 수 없어도 말레이시아의 조기는 한국 조기보다 맛이 없고, 말레이시아의 병어도 한국 병어보다 맛이 없는 게 사실이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 피곤해진 다리를 쉬기 위해 횟집에 앉았다. 거대한 수족관 안에서는 붕장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주인인데 아내가 솜씨 좋게 붕장어 세 마리를 잡아내자, 남편이 껍질을 벗겨 씻고 나서 다시 아내에게 넘긴다. 아내가 옆에 있는 기계에 붕장어를 넣자 기계가 조그맣고 얇은 횟감으로 잘라내는 게 아닌가.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잘라낸 회를 다시 작은 기계에 넣었는데 그게 바로 횟감에서 물기를 제거하는 건조기인 ‘짤순이’였다. 이곳에서도 기계화와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짤순이 덕분에 물기 없이 뽀송뽀송한 붕장어를 맛볼 수 있었다. 잠시 자동화에 놀란 마음은 고소한 붕장어 회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다시 생선 장보기에 들어갔다. 이미 양손에 든 봉지의 무게로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나는 갈치는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에 비해 10배가 넘는 거금을 주고 갈치 두 마리를 샀다. 내 생선 욕심에 같이 장을 보러 간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시장에 오니 내가 고향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말레이시아로 가기 전까지 30여 년을 산 나의 고향 서울. 비릿한 생선 냄새 속에서 그립던 고향의 향기를 마음껏 담을 수 있었다.

글/조양옥(한나프레스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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