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살면서 너무도 그리웠다…

양기철

Visit2,099 Date2011.08.01 00:00


전통 이어가는 현대판 육의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봐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듯, 먼 나라 프랑스에서 살면서 나는 이제 겨우 서울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된 걸까? 아니,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타향에서 살다 보면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항상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서울에 오면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게 바뀌어도 항상 그곳에 있을 것 같은 다양한 시장들, 그 속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싶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을지로2가에서 종로2가에 걸쳐 있는 중부시장과 방산시장, 광장시장은 과거 조선시대 육의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육의전에서는 비단, 면포, 명주, 종이, 모시, 어물, 이 여섯 가지 물품만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이 시장들에서는 좀 더 다양한 물건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대표적인 건어물 시장인 중부시장은 멸치, 다시마, 황태채, 오징어채부터 온갖 젓갈류와 마른 굴비까지 없는 게 없다.


프랑스에서는 쥐포나 오징어포 종류가 상당히 비싸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른 오징어에서 ‘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은 마른 오징어를 쉽게 사오지 못한다. 하지만 뭐 어떠랴. 우리에게는 ‘발 냄새’ 나는 치즈가 그들에게는 최고의 디저트인 것처럼, 내게도 마른 오징어가 최고의 심심풀이 간식인 것을. 그런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길이 명확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게 이름이 없는 곳도 많은데, 저마다 단골 가게를 찾아가는 모습이 참 경이롭게 여겨진다. 물건 가격이 쓰여 있지 않은 것은 일일이 물어야 하고, 그래놓고 사지 않기란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몇 번의 미안함을 거친 후에야 사람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반기는 한 가게에서 아내가 조갯살을 발견한다. 칼국수,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너무 조개가 그리웠다는 아내. 프랑스에는 이런 조개가 없으니 꼭 사가야 한단다. 조갯살을 사면서 프랑스에 산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진공포장을 해준단다. 진공포장이라는 말에 혹해 생각에도 없던 한치와 쥐포 등, 프랑스에서 맥주 마실 때 함께 곁들일 안주를 고른다. 여러 물건을 사니 덤도 주고 깎아주기도 하는 한국의 인심. 역시 한국이다!


중부시장을 빠져나오니 길 건너에 방산시장이 보인다. 방산시장은 벽지, 아크릴, 광고나 판촉물 등의 재료를 살 수 있는 곳이다. 굳이 과거의 육의전과 비교한다면 종이를 팔던 곳이라고 할까. 방산시장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청계천이 보였다. 청계천 주변에 우거진 수풀이 제법 자연스럽고, 예전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방산시장과 광장시장이 마주하고 있다.



광장시장은 육의전의 비단, 면포, 모시, 명주 같은 옷감을 팔던 곳을 재현해놓았다. 외국에 살다 보니 의외로 한복을 입을 기회가 종종 생긴다. 아내는 결혼 전 바로 이 광장시장에서 맞춘 한복을 아직도 프랑스의 집에 가지고 있다. 저고리의 선이 닳아 구멍이 났다며 저고리만 사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한복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긴 망설임 끝에 남색 치마에 어울리는 흰색 조끼가 달린 연노랑 색동저고리를 샀다. 2층 한복 코너에는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은 듯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 젊은이들처럼 우리의 전통문화를 물려받을 수 있는 젊은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한국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프랑스어로 고급 맞춤옷을 일컫는 말)이니 말이다.


광장시장의 명물 중 하나는 단연 마약 김밥. 나는 예전에 지나다니면서 먹어보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는 말에 마약 김밥을 찾아 나섰다. ‘원조마약김밥’이라는 간판이 붙은 김밥집이 나란히 있어, 정말 어떤 집이 원조인지 아리송했다. 한 집을 골라 앉아 김밥 1인분을 시켰다. 당근과 단무지만 든 조그마한 김밥을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는 것뿐인데, 우리가 1인분을 먹을 동안 수많은 사람이 김밥을 사가는 것을 보고 이 김밥의 인기와 마약 김밥이라고 불릴 만한 중독성을 다시금 확인했다. 아마 나도 한국을 떠난 뒤 머지않아 이곳, 이 김밥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글/양기철(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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