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성북동 예술탐방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0.11.17. 00:00

수정일 2010.11.17. 00:00

조회 4,449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10월 27일부터 11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금요일(오전 10시~12시 30분), 성북동에 포진한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약 2시간 30분가량 소요되는 이 탐방 프로그램은 성북구립미술관의 도슨트가 동행하며 작가와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들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곁들여줬다. 화가 장승업 집터-최순우 옛집-운우미술관-간송미술관-성북구립미술관-이태준고택- 만해 한용운 사가 심우장-서울성곽 등을 도보로 돌아보는 코스였다. 몇 걸음만 가면 예술가들이 지냈던 집터요, 몇 걸음만 가면 미술관, 문화재가 즐비한 성북동은 늘 걷고 싶은 거리 중 하나였다. 혼자 조용히 예술혼 깃든 곳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전문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마련된 코스 중 몇 곳은 개인적으로 몇 차례 다녀 온 곳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위치를 잘 모르는 곳이기에 기대가 컸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5번 출구에 도착하자 진행을 맡은 황미애 도슨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10명을 정원으로 조촐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첫 탐방지는 화가 장승업 집터. 늘 어디쯤일까 궁금했었는데 성북동 길을 오르면서도 유심히 보지 않아서일까? 집결지에서 약 50미터정도 올라가니, 집터였음을 알리는 알림판이 붙은 건물이 나타났다. 현재는 주민들을 위한 성북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이 한 때 작품 활동을 하던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표석을 세운다’는 문화체육부가 세운 표석은 참으로 조촐했다.

장승업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근대 회화의 기초를 다지며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산수와 인물 등을 잘 그렸고, 필치가 호방하고 대담하면서도 소탈한 맛이 풍겨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거장으로 일컬어졌다. 장승업은 속박과 얽매이는 것을 몹시 싫어해 배가 고프면 밥과 술을 얻어먹고 그 값으로 그림을 그려줬다고 한다. 그 출중함에 왕실은 그에게 정 6품 감찰 관직을 제수했지만 유랑생활이 몸에 젖은 그는 궁궐을 세 번이나 도망쳐 나왔다는 일화도 알게 됐다. 장승업은 단원 김홍도, 해원 신윤복처럼 자신의 호를 ‘오원’이라 해 그들과 동등함을 내세웠는데 이런 그의 행적은 임권택 감독이 만들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올랐던 영화 ‘취화선’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인근 간송미술관의 가을전시 ‘화훼영모대전’에서 장승업의 ‘연당원앙 초원지록’을 본 기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장승업 집터를 뒤로 한 채 일행들은 혜곡 최순우 옛집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도 발걸음 했던 이곳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뛰어난 안목으로 그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쳤던 최순우 선생이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와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집필한 곳. 그리고 집안 곳곳의 매죽수선재, 매심사, 오우당 등 추사 김정희와 단원 김홍도의 글씨로 새겨진 현판 속에서 선비의 멋과 풍류를 엿볼 수 있는 곳. 방문객들은 아담한 옛집의 뒤뜰 쪽마루에 앉아 최순우 옛집이 주는 가을 정취에 취했다.

최순우 옛집을 나와 대로를 건너 성북동 주택가로 조금 들어가 오른쪽 막다른 골목으로 눈을 돌리자 마법처럼 운우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소문은 들었으나 어디 있는지 잘 몰랐기에 반가움은 컸다. 운우미술관은 운보 김기창 화백과 우향 박래현 화백이 기거하던 공간을 재단장한 곳으로 미술관의 이름인 ‘운우’는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던 운보와 전통 수묵채색부터 서구 모더니즘 회화까지 두루 섭렵한 우향의 호에서 한자씩을 따 왔다. 지금은 개인 소유가 되어 건물 외벽에 ‘운우미술관’이란 글자와 건물 앞에 집터이자 미술관이었음을 알리는 작은 표석만이 남아 있었다. 어렸을 때 청력을 잃은 김기창 화백은 1993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할 당시 하루에 만 명이 찾아와 관람하는 진기록을 세운 작가이자 만 원짜리 지폐의 세종대왕 그림을 그린 인물로도 유명하다. 나중에 우향이 암 진단을 받고 약 2년 정도 투병생활을 하다 작고하자 운보는 부인을 사랑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함께 생활하던 집을 개조해 운우미술관을 만들었다 한다. 미술관이 개인 소유가 되자 미술관에 있던 작품들은 충북 청원 운보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지금은 미술관이 아닌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운우미술관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며 지척에 있는 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로 칭송받는 간송 전형필이 평생 동안 수집해 온 전통미술품 및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이곳은 1971년부터 매년 5월과 10월에만 소장 문화재를 테마별로 전시하는데,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하지만 전시가 열리지 않을 때는 출입이 통제되고 미술관의 앞뜰만 볼 수 있다. 올해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는 고려 말과 조선시대의 꽃과 풀, 새와 짐승 그림이 총 망라된 ‘화훼영모대전’이다.

탐방코스 중 ‘재발견’의 묘미를 안겨 준 성북구립미술관은 이태준 고택 바로 옆에 모던한 건물의 미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여기 이런 건물이 있었던가?’ 성북구립미술관에 들어서며 든 생각이다. 서울시 최초의 구립 미술관으로 2009년 11월에 개관하였다고 하니, 성북동에 오랜만에 왔거나 아니면 올 일이 있었을 때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 분명했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지상 2층과 3층은 전시실로 꾸며져 주민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현재 'THE PRESENCE'전(展) 2부가 11월 28일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THE PRESENCE'전(展)은 50년 이상 혹은 평생에 걸쳐 오직 하나의 길을 걸어온 한국 최고의 근현대 작가들의 현재 모습과 그 존재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균 연령이 80세에 가까운 스물 한 명의 작가 중 2부 전시에는 10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가들이 지금껏 이루어 온 업적과 작품들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를 말해 주는 듯했다. 특히 김봉태, 김형대, 박삭원, 서승원, 송수남, 심문섭, 원문자, 장상의, 정하경, 조문자 등 2부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10명의 작가들은 1950년대 이후 기존 화단의 인습에서 벗어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사고와 표현을 이끌어 왔다고 한다. 구립미술관은 가장 작은 단위의 미술관이지만 대중과 보다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소규모지만 내실 있고 깊이 있는 미술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가을날 아침나절은 제법 쌀쌀해 따뜻한 차가 그리워질 즈음, 탐방객들은 성북구립미술관 바로 옆 상허 이태준고택(수연산방)에서 따뜻한 차를 마주할 수 있었다. 후손이 개조해 한옥 카페로 운영 중인 이태준 고택은 아담한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일반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상허 이태준이 1933년 지은 집으로 이집의 당호를 ‘수연산방’이라 짓고, 이곳에서 문학 작품 집필에 전념하여 한국 근대문학을 이끌었다 한다.

특히 향기가 나는 누각 ‘문향루(聞香樓)’는 3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아담하고 아름다운 뜰을 감상하기에 제격이어서 수연산방 중 제일 인기 있는 곳으로 꼽힌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심심찮게 이용되는 이곳은 몇 번을 방문했어도 좀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 상허 이태준은 방과 연결된 이곳 문향루에서 단편 '돌다리'와 '달밤'을, 중편 '코스모스 피는 정원'을, 장편 '황진이'와 '호동왕자'를 지었을 것이며 구인회 멤버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었다.

따뜻해진 몸을 일으켜 찾은 곳은 수연산방 위쪽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의 사저 심우장(尋牛莊). 심우장까지 오르는 작은 골목들이 오밀조밀 연결된 가파른 계단 길을 올랐다. 일제의 탄압으로 거처가 일정하지 않을 때 지인들의 도움으로 짓게 되었다 한다. 연중 상시 무료 개방하고 있는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1944년 작고하기 전까지 약 10년간 살았던 집으로 간송 전형필, 오세창 등 민족주의자들과 교류를 가졌던 곳이다.

심우장은 ‘ㄱ’ 자 모양을 한 건물 한 채에 세 칸의 방과 부엌이 있는 전형적인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한옥이 대부분 남향이었던 것에 반해 심우장은 북향을 하고 있었다. 이는 만해 한용운이 조선총독부가 있는 쪽은 쳐다보기도 싫어하여 그곳을 등지고 집을 앉힌 때문이라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덕분에 북악산 줄기와 성북동 동네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나고 있었다. 앞뜰 끝에는 100년 가까운 소나뭄와 70여 년 된 향나무가 있다. 모두 만해 한용운이 직접 심고 가꾼 것이라 한다. 최순우 옛집과 수연산방에서 만난 아름답고 커다란 나무들처럼 이 나무들도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정되어 있었다.

소박하고 고즈넉한 만해의 한옥 심우장을 나와 다시 위로 난 좁은 골목을 조금 더 올라가 몇몇 주택들을 지나니 조선의 수도 한성을 품에 안고 지낸 600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서울성곽에 닿았다. 성곽 굴다리를 지나 서울성곽 안쪽으로 들어가 서울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으로 오늘의 탐방 프로젝트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서울성곽 길은 만추로 향해가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으로 참으로 아름다웠고 성북동 곳곳에서 듣게 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긴 감동과 함께 ‘그래, 난 오늘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거야’라는 기분 좋은 충만감을 갖게 했다.

문의 : http://sma.gongdan.go.kr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