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사랑하고, 침묵하라

시민기자 김태우

발행일 2010.10.20. 00:00

수정일 2010.10.20. 00:00

조회 2,397

‘길상사 가시는 분은 성암탕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직진 하세요. 들어와서 묻지 마세요.’ 버스 정류소 앞 가게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길상사에 대한 이정표가 없어 가게 주인이 답답한 마음에 적어놓은 글귀다. 이 이정표를 따라 약 15분 정도 고급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면 웅장한 자태를 가진 사찰이 아닌, 곱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길상사가 자리하고 있다.

길상사는 요정 대원각이 있던 자리이다. 대원각의 소유주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시주하여 절로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서울 도심에서 현대와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간절히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나 도심에서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길상사를 찾는다. 자녀의 성공적인 수능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이곳에 이끌린다.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 약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스님의 향취가 느껴진다. 입구로 들어가자 따사로운 햇살과 고즈넉한 모습의 법전이 반겨준다. 언뜻 보면 시골 산중에 있는 절 같아 보이지만 길상사는 서울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면 본법당인 극락전이 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극락전에서는 자녀의 합격기원을 위한 100일 기도가 한창이다. 아직 햇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씨에도 자녀를 응원하기 위한 기도는 계속된다. 수험생 딸을 위해 매일 길상사를 찾는다는 김경희(48, 우이동) 씨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딸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이 기도를 통해 딸이 성공적인 수능을 치른다면 기분이 더욱 더 좋겠다”고 바랐다.

극락전 뒤에는 수행 터인 길상선원과 열려있는 명상공간인 침묵의 집이 ‘묵언’이라는 글과 함께 굳게 닫혀 있다. 그것의 위엄 때문인지, 혹시 방해가 될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사뿐사뿐 하다. 날씨도 스님의 눈치를 보는지 이곳엔 그늘이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에 마음까지 평온해진다.

다시 극락전 앞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있다. 동자승마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그곳을 기웃거린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들여다보니 사진세례를 받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람 몸집만한 개 두 마리다. 갑자기 집에서 뛰쳐나간 개를 쫓아오다 보니 이 곳 길상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에 있는 돌계단을 따라 설법전 옆으로 올라가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자판기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길상사의 정취를 감상한다. 비 온 뒤 날씨가 맑아 멀리 있는 곳까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길상사의 돌 틈새를 구석구석 살펴보면 작은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곳에는 경주의 첨성대와 다보탑 모형이 놓여 있다. 다른 곳에는 누군가 소원을 빌고 간 듯 돌이 쌓여져 있다. 지나가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작은 돌을 그 위에 올려놓은 뒤 합장을 하고 기도한다.

도시의 화려함을 좋아할 것 같은 젊은 사람들도 보인다. 강남이나 명동 같은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과 자연의 소리를 만끽한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김태은(21, 대학생) 씨는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왔는데 화려함이 아닌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데이트 장소로 최고다”라고 말했다.

한 쪽에서는 탁 트인 서울의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김영명(23, 대학생) 씨는 “도심에서의 여유로움을 갖기 위해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조금 더 신중해야 하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길상사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은 필름카메라로 찍어야 잘 표현된다”고 했다.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령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길상사를 걷다보면 법정스님의 글귀가 많이 보인다. 그 글귀들을 따라 지장전을 찾았다. 지장전 아래층에는 법정스님이 떠나신 뒤 정식 개관한 도서관이 있다. 비록 크기는 일반 공공도서관보다 작지만 지식의 깊이는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법정스님의 저서는 물론 스님의 친필 서명본과 지인들의 헌사가 남아 있는 책들까지 이곳에 그대로 비치되어 있다. 길상사를 찾은 박고은(38, 돈암동) 씨는 “법정스님의 손길이 묻어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뜻 깊은 장소라 자주 이곳을 찾는다.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을 잃지 않고 그 분의 가르침대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길상사 #침묵의집 #수능100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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