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햄릿은 비디오카메라를 들었다

시민기자 박관식

발행일 2010.09.29. 00:00

수정일 2010.09.29. 00:00

조회 3,125


연극에도 올림픽이 있을까? 넌센스 퀴즈 같지만, 지금 서울의 문화거리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세계 연극인들의 연극 축제인 ‘2010 서울연극올림픽’이 지난 24일부터 시작됐다. 이 중 국내 연극 팬들에게 특이한 체험을 전해 줄 독일 작품 『햄릿』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베를린 샤우뷔네의 젊은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충격적인 메시지로 전달해 일찍이 관심을 끌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에 강렬한 표현과 제스처, 록 음악을 접합하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연출로 ‘햄릿’을 재탄생시킨 것. 세계 연극 팬을 감동시킨 유럽 연극계 차세대 리더의 연출 감각이 빛난다. 이 작품에 제대로 빠지려면 이전의 ‘햄릿’을 잊는 게 바람직하다.

『햄릿』은 『오셀로』·『리어왕』·『맥베스』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웬만한 연극 팬이라면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연극학도는 기본으로 익혀야 할 만큼 익숙한 데다 그동안 숱하게 국내 무대에도 올려졌다. 그러나 외국 배우가 열연하는 ‘햄릿’ 무대, 그것도 적잖은 충격을 주는 실험정신이 깃든 작품은 구경하기 힘들다.



28일 오후 공연 장소인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햄릿』 리허설이 열렸다. 첫 무대가 관객을 압도한다. 급히 난감해진다. 주검을 상징하는 관(棺) 탓이다. 어두운 조명이 밝아 오면서, 무덤에 묻힐 관이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진짜 흙이 무대 바닥 전체에 깔려 햄릿 부왕의 죽음이 더 사실적이다. 무대 뒤로 커튼이 드리워진 데다, 또 그 뒤에 술과 음식이 차려진 만찬장이 있다. 장례식과 결혼식이 커튼을 장막으로 하여 동시 진행된다. 그것도 장례식 음식이 결혼식에도 쓰인다. 바로 그 점에 햄릿은 분노한다.

여러 가닥의 가느다란 줄로 연결된 커튼에 배우의 표정이 영상으로 그려진다. 햄릿이 극중에 다른 배우의 다양한 얼굴을 비디오카메라로 직접 찍는 장면은 그야말로 실험의 극치를 달린다. 17세기 고전 속 햄릿이 비디오카메라를 든 21세기 햄릿으로 분해 주변인물의 이중성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색다른 경험을 한다. 배우들의 대사가 독일어이므로 한국어 자막을 보는 동시에 영상까지, 게다가 출연자들의 기막힌 표정 연기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즐거운 고통이 따른다. 차라리 그 통증은 행복한 고민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 있는 몰입, 즉 문화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려면 미리 ‘햄릿’의 줄거리를 익혀 두는 것이 좋다.

덴마크의 햄릿 왕이 급서하고, 왕비 거트루드가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재혼하면서 벌어지는 비극. 숙부의 흉계를 안 햄릿 왕자가 복수극을 펼치는 내용이 연극의 기승전결 측면에서 교과서적이다. 물론 아주 드문 경우이지만,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인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쓴 배경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덴마크 왕족의 ‘콩가루 집안’ 내력을 까발린 작품을 17세기에 쓴 이유를.



“덴마크 왕실의 침대가 근친상간의 소파로 쓰이면 안 된다.” “괴상해진 나를 보더라도 상관 마라.” “나는 어긋난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태어난 거야!” 햄릿의 독백이 유리 까팡이 같다. 그러나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감춰진 뭔가가 있다. 그 해결은 곧 관객의 몫이며 능력이다.

8세기 말 바이킹의 한 부류인 데인족(덴마크의 조상)이 영국 땅의 일부를 점령한 치욕스런 과거 역사가 있다. 그런 영국의 작품을 독일 연출가가 새롭게 실험한 연극이라는 점도 관객의 끝 모를 상상적인 감상법에 도움이 될 듯. 연출가 오스터마이어는 마리우스 폰 메이엔부르크의 각색으로 주인공 햄릿을 제외한 5명의 배우가 둘 이상의 역할을 소화하게 했다. 마치 불안과 혼돈의 삶을 사는 유럽 동시대의 모습을 엿보는 듯한 이 작품은 2008년 아테네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같은 해 전세계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라 불리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공연 장소인 남산예술센터는 구 드라마센터로, 박상원‧최민수‧김민종‧김명민 등 서울예대 출신 스타들의 흔적을 가늠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와 한전 우측 언덕길을 오르면 나온다.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저녁 8시마다 3회 공연된다.

문의 : 서울연극올림픽 사무국 ☎ 02) 747-2901~3, http://www.theatreolympics.or.kr
         인터파크 ☎ 1544-1555, 사랑티켓 ☎ 02) 762-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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