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하면 돈 못 벌어!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은자

발행일 2012.01.03. 00:00

수정일 2012.01.03. 00:00

조회 2,532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라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교육가 돈 보스코의 말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돈 보스코처럼 교육합시다>는 늘 곁에 두고 있는 책입니다.

필자는 섬마을, 산골, 도시학교에서 두루 중등 교사를 해오다, 현재는 서울지역에서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입시를 겨냥한 수업이 아니어서, 조급하지 않게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감성을 껴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초등학생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고, 그런 교실 안 풍경을 일기처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둘씩 펼쳐 보이겠습니다.

episode 1- 아이들의 꿈 이야기는 끝이 없다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오늘도 동호는 실내화로 갈아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은 채 교실로 들어와 쾅쾅거리며 교실을 휘젓고 다닌다. 늘 다툼이 잦았던 민서와 예림이가 책을 읽느라 대꾸하지 않자, 슬그머니 책 몇 권을 쌓아두고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림이가 “선생님, 동호가 오늘은 정말 책을 조용히 읽고 있어요!”
“진짜네! 그렇게 칭찬해 준 예림이가 나는 더 예쁘다.”
동호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늘 일러대고 싸우곤 했던 예림이의 칭찬이 계속 이어진다.
“선생님, 동호는 화가 해도 될 거예요. 그림도 잘 그려요.”

그랬더니 책에 푹 빠져있던 동호가 벌떡 일어나 “야, 나 화가 안 될 거야. 화가 하면 돈도 못 벌어!” 예림이가 맞장구 쳤다. “맞아, 우리 할머니도 화가 되면 밥도 못 먹고 산다고 했어.”

화가가 꿈이었던 민서가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때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들의 ‘어른’ 같은 얘기에 그냥 웃고 말았는데, 씁쓰레한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아 저녁 식탁에서 얘기를 꺼냈다. 큰아이는 그게 요즘 우리 현실이라며, 아이들을 통해서 현실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했고, 작은아이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물었다. 돈보다 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직은 돈을 버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거들기도 했다.

초등학생들의 이런 대화를 듣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 날 작정하고 꿈에 대한 수업을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여섯 살 때, 꿈을 선생님으로 정했던 사연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들려줬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분위기도 진지했다. 꿈이 계속 바뀐다는 종혁이,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새빈이,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도현이... 아이들의 꿈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episode 2-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시켜주세요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공개수업으로 연극을 한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워낙 마음에 든 작품이어서 감행하기로 했다. '현대 우화의 거장'으로 칭송받은 레오 리오니의 <티코와 황금날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날개가 없어서 날지 못하는 작은 새 티코를 친구들이 잘 보살펴 주고 사랑해줬는데, 어느 날 소망의 새가 황금날개를 달아줘 티코가 행복감에 넘쳐 하늘 높이 날자, 친구들은 황금날개를 달았다고 잘난 체한다며 모두 날아가 버렸다.

티코는 외롭게 혼자 날아다니다가 아픈 아들 치료비가 없어 울고 있는 광주리장수, 인형이 없어서 인형극을 못하는 인형극장 주인, 목도리를 짤 물레가 없는 할머니, 나침반이 없어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어부, 어여쁜 처녀 등을 만나 황금날개를 다 뽑아주어 다시 까만 날개가 돋아 친구들과 똑같은 모습이 됐다. 친구들은 “이제 우리와 같아졌다”며 기쁨에 넘쳐 지저귀었다. 그러나 티코는 마음속으로 ‘내 날개도 친구들처럼 새까맣지만, 나와 친구들은 똑같은 건 아니야. 우리는 모두 제각기 서로 다른 새들이지. 저마다 다른 기억들이 있고 또 저마다 다른 보이지 않는 황금빛 꿈들이 있지’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공연을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등장인물 배역은 오디션을 거치기로 했다. 물론 심사위원은 학생들이다. 해설 한 명을 뽑는데 다섯 명이 경합을 벌여 남녀 학생 두 명으로 늘려 선발했다. 주인공 티코 역시 여섯 명이나 하겠다고 하여 역시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최종 한 명을 뽑았다. 나머지 배역도 같은 절차로 결정이 됐다. 그러나 책상 위에 환자로 누워있는 역할만 해야 하는 광주리 장수 아들 역은 모두 외면했다. 그런데 평소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해서 지적을 받아온 민수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마지막 배역이 결정이 되자마자, 연습을 서둘렀다. 그런데 누워있어야 할 환자 역을 맡은 민수가 여전히 교실을 휘젓고 다녀서 배역을 다른 아이로 교체했다.

공개수업을 하기 위해 수업준비를 하고 있고, 참관 학부모도 일부 앉아 있는데 민수가 칠판 아래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시켜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대본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데 민수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도 진지하게 요청을 해와 외면할 수가 없어서 순간 교체됐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 역시 누워있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통을 치고는 원래 배역자인 민수로 또다시 교체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시켜달라고 졸랐기 때문에 민수는 누구보다도 환자 역을 잘 해냈다.

오디션을 거쳐서 배역을 정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역할을 성실하게, 적극적으로 해냈다. 참관 선생님과 학부모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다. ‘공개수업’에 대한 일기쓰기를 했는데, 평소 서너 줄도 제대로 쓰지 않았던 1학년 민수가 집중해서 2쪽 분량의 일기를 써 모든 아이들이 박수치며 환호를 해 연극보다 더 감동적인 시간이 됐다.

우리는 늘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결과에 박수를 치고 결과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과정이 충실하면 최소한 치명적인 나쁜 결과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결과를 위해 너무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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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방과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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