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서 '만세'를 외치다!

시민기자 김수정

발행일 2020.10.30. 11:08

수정일 2020.11.02. 13:35

조회 2,315

독립문이 우뚝 세워져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은 필자가 1년에 한 번 이상 방문하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매번 독립문을 지나쳐 서대문형무소만 보고 돌아왔는데, 공원 안에도 서대문형무소 못지않게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조형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대문구에서 운영하는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다.

지난 주말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 참여했다.

지난 주말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 참여했다. ⓒ김수정

사전예약을 한 후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독립공원 방문자센터를 향했다.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을 시작하기 전 독립문이 생기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강사가 설명해주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왕이 된 태종은 자신을 왕으로 적합한지 보러 온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서대문 밖에 '모화루'를 세웠다. 이후 세종은 모화루의 규모를 확장해 '모화관'으로 개칭하고, 그 앞에 환영한다는 의미로 화강암 위에 홍살문을 세웠다. 이 문이 독립문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탐방에 앞서 독립문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탐방에 앞서 독립문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수정

설명이 끝나고 독립문으로 향했다. 이복형인 연산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자신의 정통성을 명나라에 설득하기 위해 문을 개축해 청기와를 입히고 '영조문'이라는 액자를 내걸었다. 그러나 명나라 사신은 ‘조’라는 글자는 황제가 있는 나라에서 써야 한다며 '영은문'으로 고치게 했다. 이렇듯 영은문은 조선이 중국에 휘둘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이 개국하고 500년이 흐른 후 고종 때 우리도 청나라와 대등한 나라로 자주독립을 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 생겨난다. 그 중 한 명이 독립운동가 서재필이다. 그는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백성들이 깨우쳐야 한다며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한다. 또한, 치욕의 문이라 생각된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만들도록 한다. 청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당당함을 드러내고자 한 상징물이 된 것이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기 위해 영은문의 화강암 기둥은 남겨두었다. 

개선문을 본떠 만든 독립문. 안쪽에 정상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있다.

개선문을 본떠 만든 독립문. 안쪽에 정상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있다. ⓒ김수정

독립문은 서양의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지만, 우리만의 전통이 담긴 것도 있다. 천장의 붉은 벽돌로 만든 아치형 모양이 그것이다. 우리 전통건축 양식으로 ‘홍예문’이라 일컫는다. 한쪽 기둥에 작은 문이 있는데 안쪽으로 정상으로 통하는 돌계단이 있다고 한다. 문의 크기를 보면 100여 년 전의 사람들이 지금보다 키가 아주 작았음을 엿볼 수 있다. 홍예문의 머릿돌에는 이씨 왕조를 뜻하는 오얏꽃 모양이 새겨져 있고, 현판석에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함께 좌우에 태극무늬가 있다. 독립문을 세우기 위해 국민 모금을 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

천장의 붉은 벽돌의 아치형 구조에서 우리 전통건축 양식인 홍예문을 엿볼 수 있다

천장의 붉은 벽돌의 아치형 구조에서 우리 전통건축 양식인 홍예문을 엿볼 수 있다. ⓒ김수정

독립문에 담긴 염원과는 달리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된다. 독립문에서 앞을 바라다보면 1919년 3·1 독립선언기념탑이 보인다. 그 시절로 돌아가 강사가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기념탑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기념탑에 도착한 후 다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요약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독립선언문에는 세 가지 공약을 덧붙이고 있는데, 한자로 된 공약을 한글로 바꾼 낱말 붙이기도 해보았다.

태극기를 흔들며 3•1 독립선언기념탑까지 행진을 한다.

태극기를 흔들며 3·1 독립선언기념탑까지 행진을 한다. ⓒ김수정

1919년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시작된 3·1운동은 수개월 동안 전국 곳곳에서 지속되었다. 이에 일제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7만 명이 넘는 이들을 감옥에 가둔다.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자 현대식 감옥을 전국에 8개 만드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있는 ‘서대문형무소’다. 서대문형무소를 지나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독립투쟁의 역사적 활동상을 새긴 부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김수정

만세동상 뒤로 100년 전 작성되었던 독립선언문이 돌판에 새겨져 있다.

만세동상 뒤로 100년 전 작성되었던 독립선언문이 돌판에 새겨져 있다. ⓒ김수정

순국선열추념탑 중앙에는 한반도 14개도 전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의미로 14개의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좌우에는 항일의병무장상, 윤봉길〮이봉창열사상징상, 독립군의병 순국선열 처형상, 유관순열사 운동상, 3·1독립만세상, 안중근의사이토 히로부미 저격상, 순국선열 의병체포 처형상, 청산리전투상 등이 새겨져 있다.

순국선열추념탑에는 태극기와 순국선열들의 기념적인 모습이 새겨져 있다.

순국선열추념탑에는 태극기와 순국선열들의 기념적인 모습이 새겨져 있다. ⓒ김수정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 있다. 앞서 영은문과 함께 만들어졌던 모화관이 있던 자리다. 서재필은 독립문의 건설과 함께 '독립관'으로 명명하고, 독립협회 회관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순국선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 헌화를 하고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위패를 둘러보던 한 아이가 왜 김구 선생의 위패는 없느냐고 물어본다. 해설사는 김구 선생은 해방 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순국선열이라 칭하지 않고 애국지사라고 불린다고 알려주었다.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독립관'은 중국 사신들을 맞이했던 옛 모화관이 있던 자리다.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독립관'은 중국 사신들을 맞이했던 옛 모화관이 있던 자리다. ⓒ김수정

한편 독립공원 역사탐방 프로그램은 11월에도 계속된다.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2시 2회씩 진행된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비는 무료이고,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http://yeyak.seoul.go.kr)를 통해 사전예약해야 한다. 방문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가슴 깊이 감사함을 새길 수 있길 바란다.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 안내
○ 장소 : 서대문 독립공원 전역,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현저동 101)
○ 집합 장소 : 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 > 독립공원 방문자센터 앞
○ 운영시간 : 매주 토, 일 11시, 14시 2차례
○ 참여대상 : 초등학교 3년 이상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총 12명)
○ 신청방법 : http://yeyak.seoul.go.kr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검색)
○ 문의 : 안산공원관리사무소 02-3140-8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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