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에서 만난 역사의 주인공들

시민기자 박세호

Visit140 Date2020.06.23 10:34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박세호

흔히 경주나 강화도 같은 지역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야말로 길거리 유적과 유물이 정말 많다. 박물관 입장은 엄두도 못내는 요즘, 걸거리에서도 역사적 장소를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종로 대로변 보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 인물들의 동상과 표지석들을 둘러보자. 

광화문하면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상징처럼 떠오른다. ‘세종대왕’ 동상은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일부양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천체관측기) 등이 함께 진열돼 있다.

세종대왕 재위 시(1418∼1450) 조선은 군사나 문화 측면에서 일본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고, 세종 1년 해안가에 수시로 출몰하여 괴롭히던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을 이뤘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종대왕의 출생지 터가 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바라보면 세종마을 입구 대로변에 표지석이 있다. 이 일대 경복궁 서쪽 마을을 서촌이라고 하는데 박노수 미술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 윤동주 하숙집, 이상의 집, 벽수산장, 배화여고 선교사 건물, 이항복 집터, 이회영 생가, 황학정, 종로도서관 외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명당, 명소가 부지기수다. 

세종대왕 동상 앞 양부일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 전시

세종대왕 동상 앞 양부일구(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의 조형물도 함께 볼 수 있다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 기개만큼이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앞자락 잔디밭을 널찍하게 간직한 채 광화문광장 끝까지 호쾌한 전망을 자랑한다.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왜군을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마지막 함대를 모아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육지에서도 왜군은 참패를 안고 돌아갔다.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박세호

이순신 장군 동상 건너편이 교보문고 입구이며 만남의 광장이다. 이곳에 벤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설가 ‘염상섭’ 실물 동상이 보인다. 소설가 염상섭은 1897년 서울 생으로 보성소학교와 일본 게이오대학을 거쳐 1920년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0년 동인지 ‘폐허’ 창간에 참여하였고,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했다.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삼대’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을 남겼다. 한국전쟁 중 해군소령으로 복무했고, 이후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됐으며 1963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인물 동상이 천연덕스럽게 벤치에 앉아있고, 사람들이 계속 그 옆에 앉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 입구의 염상섭 상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 입구의 염상섭 상 Ⓒ박세호

종로2가 4거리에 좌정한 모습의 인물은 조선 말기 동학농민혁명의 중심 인물인 녹두장군 ‘전봉준’이다. 지방고을 수령들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1894년 1월 11일 봉기하였다. 8,000여 명의 농민군을 규합하고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하고 전주 감영을 점령하는 등 사기가 충천하였으나, 1894년 11월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대패한다. 대업의 꿈을 안은 채 교수형에 처해진 것이 4월 24일(음력 3월 30일), 향년 41세였다. 그러나 반봉건, 반외세를 지향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은 조선의 근대화와 개혁, 독립운동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종로2가 영풍문고 입구의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 상

종로2가 영풍문고 입구,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 상 Ⓒ박세호

한 블록 걸어가면 을지로 입구 옛 외환은행 본점(현 하나은행)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석주’ 열사의 동상과 표지석을 만난다. 나석주 열사는 일제강점기 의열단에서 활동했으며 1926년 12월 식민지 경제 수탈의 원흉인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켰으나 일본 경찰과 총격을 벌이다 현장에서 자결했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열사 의거 기념비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열사 의거 기념비  Ⓒ박세호

그 의로운 항일 애국투쟁의 현장에 동상과 표지석을 세운 것이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인 나석주 열사는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뒤 항일공작원으로 활동했다. 3·1운동 이후 군사자금을 모금해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동지를 규합해 황해도 형산군 상월 주재소의 일본 경찰과 면장을 살해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경비원을 지냈고, 허난성 한단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구 외환은행 본점(현 하나은행)앞 나석주 열사 동상 Ⓒ박세호

나석주 열사의 동상을 보고 나서는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5가로 들어서 ‘김상옥 열사 의거터’ 정류장에서 내렸다. 몇 발자국 골목 안으로 들어섰더니 그곳이 김상옥(1890-1923) 열사의 의거장소였다. 김상옥 열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고생하신 홀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컸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김상옥 열사 상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김상옥 열사 상 Ⓒ박세호

김상옥 열사는 물산장려운동과 일화배척운동에 힘썼다. 3.1운동을 겪으며 느낀 바가 컸고, 영국인 피어슨 여사 집에서 ‘혁신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후일의 독립신문이 된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사상을 계몽, 고취하였다. 김상옥 열사 의거터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안에 김상옥 열사의 동상이 있다. 김상옥 열사는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면서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쾌거를 이뤘다.

사이토총독 암살 계획도 세웠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거처가 드러나  수백명의 무장경찰대와 홀로 맞서며 세기의 대혈투를 벌여 그 무공담이 일본 관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공원 안에는 동상 앞으로 유모차를 미는 주부, 손잡은 커플, 책 읽는 청년 등 화목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은 모두 이러한 애국자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일 테다. 

청계천 전태일다리 위의 전태일 열사 상

청계천 전태일다리 위의 전태일 열사 상 Ⓒ박세호

조금 걸으면 청계천이다. 마천교에서 물줄기 따라 나래교를 지나 버들다리(전태일다리)에 이르렀다. 다리 앞 평화상가에서 청년 ‘전태일’이 노동자들 인권을 위해 싸웠다. 전태일(1948-1970)은 1965년 재봉사로 일하다 해고되고 또 다른 회사들에 근무했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돼 노동부에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등 계속 노력하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입구에서 분신해 세인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 여파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노동운동이 확산되었다. 전태열 열사의 모친인 이소선 여사도 유지를 이어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민주화운동의 한 축으로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하였다.  지난 주 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고 이소선 여사가 국민훈장을 받았다.

전태일열사의 생애와 캐리커처

전태일열사의 생애와 캐리커처 Ⓒ박세호

수많은 인재와 우국지사를 배출한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역사(歷史)가 주변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 앞뒷집 마당과 골목마다 사연이 있고, 선조들의 체취가 배어 있다. 호국영령의 달 6월, 서울의 거리를 거닐며 잊고 살았던 역사 인물과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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