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장충단 공원으로 떠나는 ‘호국의 길’

시민기자 이봉덕

Visit88 Date2020.06.22 10:37

매년 6월은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오늘은 서울 중심에 있음에도 지나치기만 했던 일제 강점기의 아픔이 서려 있는 남산 장충단을 찾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아픈 역사에 한걸음 더 다가가 깊이 알고 싶었다.

.장충단 공원 초입에 위치한 정자 장충정

장충단 공원 초입에 위치한 정자 장충정 ⓒ이봉덕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앞에 장충단 공원이 있다. 장충단은 을미사변,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순국한 대신들과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1900년 고종 황제가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제사를 금지하고 장충단비를 철거하며 1920년대 후반 벚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만들어 장충단 공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장충단 제향은 맥이 끊어졌지만, 1988년부터 매년 장충단 추모제 제례위원회를 구성해 제를 올리고 있다.

장충단 도보 탐방코스 '호국의 길' 안내도 (출처: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장충단 도보 탐방코스 ‘호국의 길’ 안내도 (출처: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역사적 문화유산이 밀집한 장충단 공원 일대에 ‘호국의 길’ 도보 탐방코스가 있다. 탐방로는 장충단 공원 내 ‘사명대사상, 장충단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비, 수표교, 이준 열사 동상, 이한응 선생 비에 이어서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유관순 열사 동상, 3·1독립운동 기념탑, 국립극장, 김용환 지사 동상, 자유센터’로 이어진다. 탐방에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공원 초입에는 도보 코스를 안내하는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각 코스 지점에서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역사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장충단 공원에 세워진 장충단비

장충단 공원에 세워진 장충단비 ⓒ이봉덕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많은 장병들이 일본인을 물리치다가 죽음을 당했다. 그 넋을 기리기 위해 고종 황제가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지었다.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당은 파괴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고, 대신 ‘장충단비’가 세워졌다. 앞면에 새긴 “奬忠壇(장충단)”이란 전서(篆書) 제목은 순종(재위 1907∼1910)이 된 황태자의 예필(睿筆)이며, 뒷면에 새긴 비문은 그 당시 육군부장이던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이 짓고 썼다.

민영환은 친일 대신 관료들과 수차례 대립했고, 일본 제국의 내정 간섭을 성토하다가 주요 요직에서 밀려나게 된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을 크게 개탄하며,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일제 헌병들의 강제 진압에 의해 실패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했다.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비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비 ⓒ이봉덕

‘파리 장서(長書)’는 유림들이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이다. 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한 유림들은 체포, 투옥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말 구국 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장충단 공원에 위치한 이준 열사 동상

장충단 공원에 위치한 이준 열사 동상 ⓒ이봉덕

이준 열사는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들의 무시 속에 이준 열사는 순국하고 말았다. 그 뜻을 기리 위해 ‘이준 열사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이한응 열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영국 주재 외교관으로 1904년 영국 외무부에 한반도 정세에 관한 장문의 메모를 전달했다. 그러나 영국의 냉담한 반응과 일제의 강요로 공사관이 문을 닫는 등 주권을 상실하게 되자 약소국가의 외교관으로서 자긍심과 독립 의지를 표출할 마지막 방법으로 1905년 공사관 건물에서 자결하여 항거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이봉덕

일제 강점기 가혹한 민족 말살 정책 아래, 최현배 선생은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말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1937년 국어의 문법 체제를 최초로 정립한 <우리말본>을 출판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는 선생의 사후 1971년에 세워졌다.

장충단 공원에 시민의 휴식을 위해 조성된 산책길

장충단 공원에 시민의 휴식을 위해 조성된 산책길 ⓒ이봉덕

장충단 공원 일대에는 위 문화재에 외에도 유관순 열사 동상, 3·1독립운동 기념탑, 국립극장, 김용환 지사 동상, 자유센터 등이 있다. 또한 장충단 공원은 서울의 중심 남산에 위치한 도심 공원으로 시민들이 편히 들러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광장과 테니스장, 놀이터 등을 갖추고 있으며 수표교와 생태연못, 지압보도, 산책길 등이 조성되어 있다.

장충단 공원 '기억의 공간' 전시실

장충단 공원 ‘기억의 공간’ 전시실 ⓒ이봉덕

‘장충단 공원 전시실’에는 대한제국 이후 장충단과 남산에 얽힌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상설 전시장으로 일제 강점기 장충단과 남산의 역사적 비극을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해설사와 함께하는 ‘호국의 길’ 도보관광 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역사적 갈등의 주요 원인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극복의 시작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충단 공원을 산책하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사랑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장충단비 뒷면에 새겨진 민영환이 자결 직전에 국민들에게 남긴 유서인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에서 모두 진멸당하려 하는도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돕기를 기약하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배 더욱 기운 내어 힘씀으로써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그 학문에 힘쓰고, 마음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

■ 장충단공원
○ 위치: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96번지
○ 대중교통: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도보 1분 / 6호선 약수역 10번 출구 →도보 10분

■ 장충단 ‘호국의 길’
○ 탐방코스: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열사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 김용환 지사 동상
○ 해설사와 함께하는 도보관광 ‘장충단 호국의 길’ 신청 : http://www.junggu.seoul.kr/tour/content.do?cmsid=4897
○ 문의: 중구청 문화관광과 02-3396-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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