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정원 '백사실계곡' 다녀왔어요

시민기자 최병용

발행일 2020.05.07. 14:43

수정일 2020.05.07. 15:18

조회 7,962

서울 도심에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비밀 정원 같은 곳이 있다. 바로, 5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문학과 역사와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백사실 계곡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운동화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도심 속의 자연,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산책로의 매력으로 가득하다.

백사실 계곡 산책은 부암동 골목에서 시작된다

백사실 계곡 산책은 부암동 골목에서 시작된다 ⓒ최병용

백사실 계곡을 가기 위해서는 부암동 골목에서 시작해 올라가는 게 편하다. 곳곳에 나무 팻말로 백사실 계곡을 안내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라면 백사실 계곡을 찾아도 충분하다. 4월의 새순들로 초록 초록한 길을 따라 시간이 멈춘 듯 그저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면 된다.

백사실 계곡을 가면서 현통사를 먼저 만나는 행운도 누린다. 숲을 거슬러 올랐는데 주택가를 벗어나니 너럭바위에 세워진 아담한 현통사가 보인다. 현통사를 병풍처럼 두른 산도 온통 초록이다. 현통사를 방문했던 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지만 코로나19로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1개월 후인 5월 30일로 연기된 탓에 화려한 연등만이 절을 지키고 있다. 거대한 백색 암반을 2단으로 타고 내려오는 멋스러운 물길이 백사실 폭포다.

백사실 폭포 너럭바위에 자리 잡은 현통사

백사실 폭포 너럭바위에 자리 잡은 현통사 ⓒ최병용

백사실 폭포를 지나자 바로 흙길이 나온다. 주변이 온통 푸름으로 가득하고 고요해 ‘이곳이 진정 서울인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맑은 새소리와 청량함이 주변을 에워싼다. 산속으로 들어선 지 10여 분 만에 이런 계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오솔길을 따라 걷노라니 ‘도롱뇽 서식지’ 안내판이 보인다.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서울 4대문 안에 도롱뇽 서식지가 발견된 곳으로 백사실 계곡이 유일하다고 하니 왠지 더 조심스러워진다.

백사실 계곡으로 갈 수 있는 녹색 그늘길

백사실 계곡으로 갈 수 있는 녹색 그늘길 ⓒ최병용

숲길을 따라 걸으며 옆을 보니 작은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체가 서식해 서울시 환경 조례로 보존되는 지역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백사 이항복이 살았던 500년 전의 역사적 정취에 자연 생태까지 배우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서울 4대문 안 유일한 도롱뇽 서식지이다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서울 4대문 안 유일한 도롱뇽 서식지이다 ⓒ최병용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는 백사실 계곡은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계곡은 아니다. 조선시대부터 깨끗하고 조용한 휴식 공간으로 사랑을 받아왔던 곳이다. 500여 년의 역사가 묻어나는 돌계단 하나에도 느낌이 와 심장이 두근거린다.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로 알려진 곳에 다다랐다. ‘ㄱ’자형 건물 터에는 십여 개의 초석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최근 추사 김정호가 매입해 새로 지었다는 문헌이 발견돼 논란 중이다. 연못과 지주석 규모로 봤을 때 상당한 규모의 별서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오성과 한음이란 일화로 잘 알려진 이항복은 임진왜란 중에 다섯 번이나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선조의 신임을 받았던 훌륭한 재상이다.

백사 이항복 별서터

백사 이항복 별서터 ⓒ최병용

별서터에서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커다란 연못과 6각형의 정자가 있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는 6개의 정자 주춧돌이 보인다. 백사실 계곡은 조선시대에는 '백석동천'으로 불렸다. 동천이란 '경치가 빼어난 곳, 신선이 사는 별천지와 같은 곳'을 뜻하는 말이다. 즉 백석동천이란 '백악(북악산)의 수려한 산천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별서의 정자와 연못 터

별서의 정자와 연못 터 ⓒ최병용

백사실 계곡을 지나 능금마을로 향했다. 1급수의 계곡답게 1급수에 사는 어류들이 많이 보인다. 차와 사람들로 꽉 찬 광화문 광장에서 불과 몇 km 떨어지지 않는 곳에 이런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믿기 힘든 사실이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백사실 계곡의 물고기 떼

백사실 계곡의 물고기 떼 ⓒ최병용

세검정에서 시작해 현통사를 거쳐 백사실 계곡을 보고 능금마을에 도착하는 데 불과 30여 분도 안 걸린다. 능금 마을은 과거에 눈처럼 하얀 자두 꽃이 피는 자두 밭 천국이었다. 자두와 함께 사과나무가 많아 능금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사과나무가 많이 보인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걸어서 올 수도 있다.

능금마을로 향하는 길은 더 호젓하다

능금마을로 향하는 길은 더 호젓하다 ⓒ최병용

백사실 계곡은 사람이 붐비지 않아 조용하다.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며 호젓하게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에 딱 좋은 곳이다. 백사실 계곡은 휴식과 쉼을 주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한다. 최근 가뭄과 관광객의 부주의로 도롱뇽의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만약 백사실 계곡 방문 예정이라면, 계곡을 오염시키지 말고, 도롱뇽 보호를 위해 눈으로만 감상하고 돌아오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 백사실 계곡
○ 위치 : 서울 종로구 부암동 115

○ 교통편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7730버스 '세검정 초등학교', 7018 버스 '부암동'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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