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사랑한 정자 '석파정'에서 만난 봄!

시민기자 문청야

발행일 2020.04.23. 12:21

수정일 2020.04.24. 11:58

조회 3,256

약간의 비가 내린 다음 날 하늘이 유난히 맑고 봄기운을 머금은 햇살이 따스하게 창가로 스며들었다. 가까운 곳이라도 가서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도심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 백사실계곡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 내려 1711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터널 입구, 석파정에서 하차를 하는데 서울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리로 옮겨졌다.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문청야

측면에서 미술관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데 안에 정원이 보였다. 비밀의 정원 같은 그 안이 궁금해졌다. 바로 석파정이었다. 석파정(石坡亭)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선대원군 별서(興宣大院君 別墅)에 딸린 정자이다. 현재 서울미술관을 통하여 들어가게 되어있다. 석파정을 보려면 1층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열 체크와 마스크 확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이동하여 밖으로 나가야 한다.

서울미술관 옥상 정원
서울미술관 옥상 정원 ⓒ문청야

미술관 옥상 정원으로 나오니 북악산 서울 성곽 길과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암동이 눈에 들어왔다. 전날 조금 내린 비로 하늘은 푸르고 눈앞에 펼쳐진 봄 풍경은 맑게 씻긴 듯 선명한 색이었다. 맑은 하늘과 쾌청한 공기가 날아갈 듯 기분 좋게 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웠다. 코로나19로 인해 벚꽃 구경을 제대로 못했는데 왕이 사랑한 정원에서 다채로운 봄꽃을 보며 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이색적인 공간인 석파정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이색적인 공간인 석파정 ⓒ문청야

멀리 인왕산이 보이고 또 몸을 돌리면 낮은 언덕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석파정은 고즈넉하고 차분하고 정갈해 보였다. 코로나19 여파로 한적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비밀의 정원 곳곳에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이 많이 보였다. 젊은 층이 이런 곳을 좋아하는 것이 의외였다. 석파정은 온갖 봄꽃들로 가득했다. 분홍빛 꽃들은 소녀감성을 소환했다. 바람이 솔솔 잘 통할 것 같은 멋들어진 한옥에서 바로 뒤를 돌아보니 여기가 왜 별장으로 쓰였는지 알 것 같다.

비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로 가득한 석파정
비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로 가득한 석파정 ⓒ문청야

석파정은 일제강점기 이후 흥선대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하다가 한국전쟁 후 고아원, 병원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사설 미술관인 서울미술관 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석파정은 정자로 지어진 별장 건물이지만 사랑채, 안채, 별채, 정자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살림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에서 보이는 북악산과 서울성곽
사랑채에서 보이는 북악산과 서울성곽 ⓒ문청야

사랑채는 흥선대원군이 난을 그리는 등 예술 활동을 하였던 곳이다. 건물은 앞면 5칸에 누마루를 두고 있고, 누마루에 벽돌을 이용하여 문양을 만들고 있다.

사랑채 마당에 있는 석파정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한 노송
사랑채 마당에 있는 석파정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한 노송 ⓒ문청야

사랑채 옆으로는 늙어서 휘어진 노송이 너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석파정의 주인공이 수형이 멋진 소나무인양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있었다.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비바람을 견뎌낸 노송의 이름은 천세송, 천 년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60호로 지정된 이 노송은 현재 650살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기세가 드높고 형태가 매우 정교하다. 실물을 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자아냈다.

파란 하늘과 연둣빛 잎사귀가 함께 어우러진 청명한 서울 풍경
파란 하늘과 연둣빛 잎사귀가 함께 어우러진 청명한 서울 풍경 ⓒ문청야

사랑채에서 뒤편 언덕에 세워진 별채로 들어가는 작은 협문. 벽돌로 장식한 중국풍 건축 양식이다. 별채는 고종이 행전이나 행궁 시 임시 거처로 석파정에 머물 때 썼던 곳으로 전해진다. 높은 자리에 위치한 별채의 구성과 별채로 진입하는 협문, 과거에 있었던 꽃담 등은 왕이 묵던 곳으로서 손색없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안채 뒤편 언덕에 위치한 별채.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5칸의 큰 건물
안채 뒤편 언덕에 위치한 별채.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5칸의 큰 건물 ⓒ문청야

주변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별채
주변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별채 ⓒ문청야

별채는 사랑채 위쪽에 위치한 덕에 주변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루에 앉아 보았다. 서울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북악산 봉우리, 인왕산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고종 황제가 바라봤던 전경은 지금 보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다. 고종의 시선을 따라 풍광을 바라보고 구름길로 향했다.

꿈의 정원 같았던 석파정 정원
꿈의 정원 같았던 석파정 정원 ⓒ문청야

경사진 언덕까지 오르면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경사진 언덕까지 오르면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문청야

꽃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건네는 길
꽃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건네는 길 ⓒ문청야

별채를 나서는 길에는 봄을 상징하는 개나리와 벚꽃이 찬란히 빛났다. 구름길을 따라 걷는데 진달래와 다홍빛의 철쭉과 꽃이 아름다운 서부해당화, 황금빛 황매화가 어우러진 정원은 꿈의 정원 같았다. 석파정 곳곳 경치 좋은 곳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색을 즐기기에 한없이 좋은 자리이다. 석파정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음악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앉아보았다. 꽃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건네고, 길과 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코로나19로 긴장되었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경사진 언덕까지 오르면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이곳은 사람이 별로 없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천천히 산책하기 좋았다.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던 너럭바위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던 너럭바위 ⓒ문청야

구름길 끝에 다다르면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석파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너럭바위는 코끼리를 닮았다고 하여 코끼리 바위로도 불리는데 바위산인 인왕산의 웅장함을 잘 드러내주는 자연 석조물이다. 비범함에 걸맞게 예로부터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석파정 안쪽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풍 정자
석파정 안쪽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풍 정자 ⓒ문청야

너럭바위를 지나 찾은 곳은 숲속 한편에 위치한 정자, 석파정이다.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주변은 온통 나무와 풀들로 둘러싸인 곳,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유수성중관풍루'로 불린다. 석파정 위쪽으로 물을 품은 길을 따라 걸으며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정자를 위에서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솔솔 부는 바람에 꽃잎이 흩날린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물을 품은 길에는 영화 속대사, 노래 가사, 소설이나 시의 구절 등이 적혀 있는 팻말이 군데군데 놓여있다.

석파정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소수운련암’이라 새겨진 각자
석파정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소수운련암’이라 새겨진 각자 ⓒ문청야

길 끝에는 신라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신라 삼층석탑을 지나 바위에 새겨진 ‘소수운련암’각자가 보인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이라는 뜻으로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적으로 표현한 글귀이다. 운치 있게 자연을 노래했던 조선 선비들의 심성이 느껴진다. 물을 품은 길은 얕은 계곡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펑퍼짐한 너럭바위가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석파정은 앞마당과 계곡 주변 숲을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곳의 내력을 말해주는 바위에 새겨진 각자들이 남아 있다.

계곡 주변 노란 개나리가 그늘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계곡 주변 노란 개나리가 그늘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문청야

봄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물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봄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물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청야

계곡 주변 다른 곳은 지고 없는 노란 개나리가 그늘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아이들은 올챙이를 보겠다고 연못 속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수줍은 듯 예쁘게 꽃잎을 터트린 매화와 보랏빛 정향나무 꽃이 화사하다. 너럭바위로 올라가는 길가에 붉은 색감이 매혹적인 명자꽃도 예뻤다. 왕이 사랑한 꿈의 정원에서 보낸 하루가 눈부시다. 

■ 석파정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 관람시간 : 화요일 ~일요일 11:00~17: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석파정 일일입장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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