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더불어 숲길'

시민기자 김창일

발행일 2020.02.14. 09:23

수정일 2020.02.17. 10:49

조회 2,745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길 ⓒ김창일

2017년 1월 성공회대 뒷산 항동 산 23-1번지 일대에 길이 480m, 폭 2m로 ‘더불어 숲길’이 조성됐다. ‘더불어 숲길’은 故 신영복 선생을 기리는 길이다. 故 신영복 선생의 저서 ‘더불어 숲’에서 착안했다. ‘더불어 숲길’에는 선생이 쓴 서화작품 31점을 전시하고 있다. 일상이 힘겨울 때, ‘더불어 숲길’을 걸으면 잠시 나를 놓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더불어 숲길’을 만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성공회대를 통해서 입장하는 방법이다. 성공회대 입구에 구두인 하우스가 있다. 구두인 하우스에서 성공회대 안쪽으로 직진하면 동아시아 연구소가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더불어 숲길’ 초입이다. 두 번째는 푸른수목원으로 입장하는 방법이다. 푸른수목원 후문 달록뜰 안쪽 어린이나라로 가면 ‘더불어 숲길’ 입구가 나온다. 세 번째는 항동철길이 있는 구로올레길 3코스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성공회대 입구 구두인 하우스
성공회대 입구 구두인 하우스 ⓒ김창일

세 가지 방법 중, 성공회대를 통해 입장했다. 성공회대 입구에는 이국적으로 건축된 작은 주택이 하나 있다. 구두인 하우스이다. 1936년 건조된 건물로 故 유일한 박사의 사저로 사용된 건물이다. 당시 서양식으로 건축돼 건축학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더불어 숲길 초입
더불어 숲길 초입 ⓒ김창일

성공회대를 가로지르면 ‘더불어 숲길’ 입구에 다다른다. 잠시 일상의 복잡함을 덜어 놓고 故 신영복 선생의 글을 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글귀에 대한 해석은 개인차가 있다. 

故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
故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 ⓒ김창일

더불어 숲길에서 가장 처음 본 글귀는 ‘처음처럼’이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중략) 그렇게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오늘은 내가 가장 젊은 날이자, 가장 늙은 날’, ‘나도 이 나이를 처음 살아봐서 매번 실수를 해’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처음’인 날을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처음’은 그렇게 녹슬어 버렸다.

슬픔과 기쁨의 무게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
슬픔과 기쁨의 무게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 ⓒ김창일

살면서 등가의 법칙이 적용되는 순간은 없는 거 같다. 슬픔과 기쁨의 크기가 같을 순 없다. 큰 슬픔을 겪었다고 해서 다음 역경이 더 쉬운 건 아니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이 악물고 버텨야 지나간다. 그렇게 시간의 홈이 파여 주름이 되고, 애쓴 힘이 머리에 스며들어 색이 바래진다. 아이러니하게 기쁨은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마치 치유라는 알약을 삼키는 것처럼, 슬픔의 중력을 해체시켜 마음을 무중력으로 날려준다. 무중력에 풀린 얼굴은 미소를 지으며 물리법칙을 일깨워 준다.


공부는 깨는 것이다. ⓒ김창일

'공부는 갇혀 있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여태까지 해온 공부는 콘크리트를 부으며 절대 움직이지 않는 진리를 만들고자 했다. 굳어지는 생각, 넓어지지 않은 생각이라 생각지 않고, ‘나 이거 알아’, ‘이거 아는척하기 좋은 소재’인데라며 답습하기 바빴다. 나를 깨려면 나의 페르소나를 깨야 한다. 그런데 그게 두렵다. 사회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르시시즘으로 가득 차버린 페르소나. 그게 나다.

항동철길, 올레길 등을 알려주는 이정표
항동철길, 올레길 등을 알려주는 이정표 ⓒ김창일

이정표다. 저기로 가면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내비게이션이 아닌 일종의 나침반이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우회전, 좌회전 등을 통해 목적지 앞까지 데려다 준다. 나침반은 내가 원하는 방향을 그냥 저기다고 손짓만 한다. 그 중간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내일의 어려움이 찾아온다고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준다면 안심이 될까? 내일이 새로운 처음이 되려면, 나침반 같은 이를 벗으로 만나고 싶다.

더불어 숲길을 산책하는 주민
더불어 숲길을 산책하는 주민 ⓒ김창일

길을 거닐 때, 평평하고 쭈~욱 뻗은 길을 걸으면 맘이 편하다. 그러다 굽이쳐 흐르는 길을 만나면 저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답답한 맘이 든다. 그래도 함께 걷는 이가 있어 의지하고 걷는다.

무감어수 (無鑒於水)
무감어수 (無鑒於水) ⓒ김창일

나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눈은 타자와 세상을 본다. 물에 나를 비추면 좌우가 대칭돼 진정한 나를 볼 수 없다. 나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타자다. 다른 사람만이 온전한 나를 볼 수 있다.

항동철길에서 진입할 수 있는 더불어 숲길
항동철길에서 진입할 수 있는 더불어 숲길 ⓒ김창일

더불어 숲길을 내려가면 푸른수목원을 만날 수 있다. 푸른수목원을 둘러보고, 항동철길 천왕역 방향으로 이동하면 ‘더불어 숲길’을 거닐 수 있다. 길이란 어느 방향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어느 길을 가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다. 오늘 처음 걷는 더불어 숲길을 걸으며 해시태그까지 써가며 마음을 업로드한다. 타자에게 나를 비추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나를 비췄다.

■ 더불어 숲길
○ 위치: 성공회대 뒷산 항동 산23-1번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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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더불어숲길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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