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이상의 집'에서 문학 그 이상을 만나다

시민기자 김은주

발행일 2020.02.06. 14:00

수정일 2020.02.06. 17:55

조회 10,362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이상의 집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이상의 집 ⓒ김은주

경복궁 서쪽 마을인 서촌을 걷다 보면 골목길 감성에 젖게 된다. 북촌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서촌은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곳이다. 편안하게 다가오는 낡은 한옥들, 작고 좁은 카페, 감각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파는 소품 가게, 오래된 전통시장까지 마천루 가득한 도심 속 일상생활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상의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상의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한다 ⓒ김은주

서촌엔 '오감도'의 작가 이상의 집이 있다. 이상은 국어 시험문제에도 자주 출제될 정도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작가다.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를 읽고 이상을 좋아하게 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구도 쓰지 않았던 스타일의 문체와 독특한 소재의 스토리는 매력적이었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시, 소설, 수필 등 여러 문학 장르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이상은 일제 식민지시대 대표작가로 짧은 생을 살다 요절했다.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시 '오감도'는 난해시로 여겨지며 독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결국 연재를 계속할 수 없었던 오감도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이상의 집의 아카이브 모습
이상의 집의 아카이브 모습 ⓒ김은주

서촌을 수없이 많이 와봤는데 이상의 집을 지나쳐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상의 집을 찾다가 못 찾았던 경험도 있다. 그만큼 다른 곳과는 달리 간판도 작고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어 지나치기 쉬웠던 것이다.

연대기별로 확인해볼 수 있도록 제작된 아카이브
연대기별로 확인해볼 수 있도록 제작된 아카이브 ⓒ김은주

이상의 집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이상의 집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본명 : 김해경)이 세 살부터 20여 년 간 머물렀던 집터의 일부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은 세 살 때부터 이곳 통인동의 큰 아버지 김연필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다. 20년 간 살았던 통인동 집은 300평이 넘는 넓은 집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집은 여러 필지로 나뉘어져 팔리게 되었고, 철거될 위기에 놓였던 이곳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 모금과 기업후원으로 매입해 보전과 관리가 이뤄지게 되었다. 만약 그때 철거되었다면 작가 이상의 흔적은 서울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의 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이상의 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김은주

이상의 집은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의 작품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통유리로 된 문을 밀고 들어가면 왼쪽 벽면에 빼곡하게 전시된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 아카이브에는 이상의 작품인 소설과 수필, 그림, 도안, 삽화, 서신을 분류해 연대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이상의 작품집과 해설서들도 있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특히 이상 작품의 최초 발표본까지 볼 수 있었다. 아크릴판으로 되어 있는 그의 작품과 그림의 보존방법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한옥의 지붕과 중정의 모습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한옥의 지붕과 중정의 모습 ⓒ김은주

이상의 집에는 이상의 방이 있다. 콘크리트 프레임 속 큰 철문은 너무나 견고하게 보여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만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의 방이 나온다. 그 안에서는 이상과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깃든 영상을 볼 수 있다. 맞은편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비밀스러운 공간과도 같은 발코니가 등장한다. 두 사람도 허용되지 않는 비좁은 이곳에 서면 아래로 이상의 집 중정이 펼쳐지고 그 위로는 한옥의 지붕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중정 한 번 쳐다보고 한옥의 지붕을 쳐다보길 여러 차례 하다보면 어느새 서촌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을 느껴볼 수 있다.

중정에 설치된 이상의 흉상
중정에 설치된 이상의 흉상 ⓒ김은주

발코니에서 바라보았던 중정은 1층의 중앙 유리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중정으로 나가면 이상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 흉상 조각은 조각가 최수앙 작가가  이상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이 그린 그림의 초상화와 여러 사진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이상의 집에 걸려 있는 여러 초상화 속 이상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일정금액의 기부금을 내면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
일정금액의 기부금을 내면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 ⓒ김은주

이상의 집을 둘러보다 보면 그가 그린 그림과 그를 그린 그림을 많이 마주할 수 있다. 그런 그림들은 엽서로 제작되어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으며 2,000원 이상 기부금을 내면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수도 있다. 사람이 많지 않다면 의자에 앉아 커피와 함께 이상의 시를 읽기에도 좋다. 이상의 집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이상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가 쓴 책과 그가 그린 그림,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관련 자료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서촌의 골목길을 걸으며 인문학적 사유를 할 수 있었던 이상의 집은 작가 이상을 경험하기 참 좋은 곳이었다.

■ 이상의 집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 (3호선 경복국역 2번출구)
○ 운영시간 : 월~일요일 10:00~18:00(점심시간 12:00~13:00)
○ 휴관일 : 설, 추석연휴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52-7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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