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구슬이 반짝! 국내 첫 베트남 옥에오 문화전

시민기자 방주희

Visit280 Date2020.01.30 13:01

‘옥에오? 오레오? 과자이름인가? 아~ 베트남 옥외오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구나!’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베트남 하면 일명 ‘박항서 마법’으로 불리는 베트남 축구의 큰 활약으로,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베트남 쌀국수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고대 왕조시대의 유산이 전해져온 옥외오 문화. 국내 최초 베트남 문화 전시가 열리고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의 겨울 특별전으로 시간 여행을 다녀오자.

지난 12월 20일에 국제교류전 ‘베트남 옥에오(Óc Eo)문화-바닷길로 연결된 부남과 백제’가 개막하였다. 베트남 옥에오문화유적관리위원회의 소장품 202건 12,715점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재)대한문화재연구원 등과 함께 국내로 들여와 소개하는 국제교류전이다.

베트남 남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옥에오 유적은 1~7세기의 부남국 관련 유적으로서, 부남국이 백제와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에오 문화는 7세기 동안 베트남과 캄보디아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광활한 지대에서 발달했던 고대 문화를 말한다. 옥에오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운 부남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고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교역국으로 성장하였다. 옥에오에서는 인근 동남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국, 인도, 로마 등지에서 유래된 외래적인 요소가 강한 문화재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고대 동서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특별 전시가 펼쳐진 풍납토성 성벽의 단면이 어우러진 한성백제박물관의 로비 ⓒ방주희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며, 1부에서는 베트남의 고대문화를 먼저 소개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베트남 옥에오 유적 발굴 역사와 옥에오 문화를 다룬다. 2부에서는 ‘옥에오의 대외교류(부남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살펴보고 마지막 3부에서는 ‘옥에오 사람들의 삶’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입장에 앞서 베트남에 대해 알고 가자. 베트남의 정식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다. 수도는 하노이이고,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있으며 중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언어는 베트남어를 쓴다. 국토면적은 약 331,210㎢(2018년 기준 세계 64위)로 남한의 3.3배 크기이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길이는 1,650km에 이른다. 인구는 9,646만 2,106명(2019년 기준 세계 15위)이다. 1992년 한국은 베트남과 수교를 맺었으며,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량은 2019년 기준 682억에 달한다. 서울시 거주 베트남인은 2017년 기준으로 약 2만 명에 달한다.

박물관 로비로 들어서자 풍납토성 성벽 단면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백제 초기 왕성인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의 단면을 떼어(전사) 설치한 토층이다.(2011년 발굴).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을 기준으로 아랫변 43m, 윗변 13m, 높이 11m로 추정 복원하였다. 그곳을 지나 전시실로 향하자 베트남의 고대문화가, 한성백제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한성백제박물관으로 펼쳐졌다. 2020년 새해 어느 날에, 기원전 500년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6세기 ‘남신상’으로 머리에 보관을 쓴 힌두교의 신을 형상화 했다 ⓒ방주희

1부, 베트남의 고대문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 무렵은 철기시대로서, 최초의 국가가 출현하고 국제 해상교역이 발전한 초기 역사시대에 해당한다. 북부 동선 문화, 중부 사후인 문화, 남부 동나이 문화로 나뉜다.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전성기를 누린 동선 문화는 베트남 북부를 흐르는 홍강과 마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청동북, 무기, 도구 등을 만드는 청동 주물 기술이 특징이다. 사후인 문화는 중부 해안 문화로, 출토된 옹관 내부에서 장신구, 철기, 청동기, 소형 토기가 확인되었다. 동나이 문화는 메콩강 삼각주 남동부 지역의 동나이부터 호치민에 이르는 지역에서 발달하였으며, 기원후 1세기 말 메콩강 삼각주 남서부에서는 국제적 상업 도시가 발달한 옥에오 문화가 나타났다. 그 이후에도 베트남에서는 옥에오 사람들의 모습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메콩강이 흐르는 베트남 남쪽에는 매우 발달한 옥에오 문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습은 잊혀졌다. 그러던 1943년 어느 날 프랑스 고고학자인 루이 말레헤가 옥에오 유적을 발견하였고, 조금씩 그 모습이 밝혀지게 되었다. 돌과 벽돌로 만든 건물들을 발굴하였고, 엄청나게 많은 구슬과 보석으로 만든 장식품들을 찾아냈다.

1943년에서 1999년에 이르기까지 옥에오 유적 발굴의 역사를 표시하였다 ⓒ방주희

 

관람객이 베트남에서의 발굴성과를 살펴보고 있다 ⓒ방주희

2부, 옥에오의 대외교류

옥에오는 인도 칸치푸람에서 중국 광동성까지 연결한 동·서 교역로의 중간 기항지였다. 이 해로는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동북아시아까지 연결된 해상 실크로드였기 때문에 옥외오에는 중국, 페르시아, 인도, 로마 등지로 오고가는 온갖 종류의 물걸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에서는 당시에 사용했던 배의 일부와 교역활동의 증거인 동전, 인도 문자가 새겨진 화물표,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과 로마 황제의 금화, 현지에서 세공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한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 및 구슬들이 발견되었다. 유리나 원석 등으로 만든 옥에오의 구슬은 아름다운 희소성 덕분에 여러 지역에서 거래되었으며 세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여러 형태와 색상, 투명도를 지닌 유리 구슬은 이곳이 고대 유리의 대표적인 생산지였거나 가공처였음을 말해준다.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지닌 보석구슬은 석영과 자수정, 마노, 홍옥 등의 원석을 깎아 육각형, 튜브형, 다이아몬드형, 원통형, 단추형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옥에오 유적은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부남국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1~7세기의 부남국은 중국에 빈번하게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백제와도 직·간접적으로 교류했다. 543년 백제 성황이 부남의 재물을 보내왔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보이며, ‘남당고덕겸모양원제번객입조도’에는 백제국과 부남국의 사신이 동시에 모사되어 있다.

구슬이 오묘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방주희

3부, 옥에오 사람들의 삶과 문화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문화가 왕성히 발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 중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메콩강에서 일상을 펼친 사람들의 삶을 만나보자.

옥에오의 고대 주거 양식은 고상가옥인 냐산의 형태로, 나무로 만든 높은 집을 말한다. 나무기둥을 땅에 박고 땅 위 1.5m 정도의 높이에 집을 지었다. 다른 곳으로 갈 때는 작은 배를 탔고, 배에서는 가랑에 불을 피워 음식을 해먹거나 몸을 따듯하게 하였다고 한다. 옥에오 주거지는 대체로 저지대와 늪지대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 때문에 수상가옥인 경우가 많았다.

주거유적에서는 이동식 화로인 가랑을 비롯하여 항아리, 병, 냄비 등의 생활용품, 갈판, 갈돌, 그물추, 통발, 가락바퀴 등의 도구들이 출토되었다. 어엇! 씨앗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만들 때 쓰는 갈판과 곡식 또는 열매, 씨앗 등을 빻는데 쓰는 갈돌, 그물추와 가락바퀴 등은 마치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유물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3~5세기 갈판과 갈돌이 정겹다 ⓒ방주희

1세기 항아리(위)부터 2~3세기 작은 냄비(아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방주희

옥에오의 여러 유적에서 토기 생산 도구와 금속·유리 관련 도가니, 수천 점의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옥에오 사람들이 토기 제작과 금속·유리 가공, 보석 세공 등에 종사하였음을 보여준다. 금판과 귀걸이, 반지 등에서는 타출, 누금세공, 새김눈 장식 기법 등 수준 높은 공예기술을 볼 수 있다. 교역을 통한 금속재료의 수입과 선진기술의 유입 또한 금속공예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유리나 원석으로 만든 구슬은 작은 크기로 인해 휴대가 편리해졌다.

구슬의 아름다운 빛깔이, 세금으로 사용되었다는 말을 뒷받침 하는 듯하다 ⓒ방주희

옥에오 사람들은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 훌륭한 솜씨로 그릇을 빚고, 각종 꾸미개와 화려한 샐깔의 구슬로 아름답게 몸을 꾸몄다. 또한 인도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와 불교를 믿었다. 언덕 위에 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소원을 빌었다. 또, 신에 대한 믿음을 금으로 만든 판에 표현하기도 하였다.

‘남해기귀내법전’에 부남사람들이 힌두교 천신을 모셨으며, 불교가 왕성했다고 할 만큼 옥에외 문화에는 두 종교가 공존하였다. 두 종교 모두 벽돌 사원 안에 숭배 대상을 모시고 공양물을 바쳤다. 힌두교 신자들은 사원에 시바를 뜻하는 링가와 비슈누 신상을 모시고, 셰마기둥 안에 금판을 넣었다. 불교사원에는 직접 만들거나 수입한 불상을 모셨다. 두 종교는 정치·외교적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지배층은 힌두신과 왕을 동일하게 여겨 권위를 확립하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열렬한 불교도였던 왕도 있었고, 중국에 불상을 보내고 불경을 번역해주었다. 이처럼 두 종교는 옥에오 사람들의 삶과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하리하라는 시바와 비슈누 혹은 시바와 샥띠의 모습을 하나의 상에 좌우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상은 팔과 다리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본래 4개의 팔에 각각의 신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방주희

옥에오 문화의 힌두사원에는 벽돌로 만든 종교시설인 쉐마 기둥이 있으며, 그 안에 금판을 넣었다. 금판에는 시바와 비슈누를 상징하는 황소, 심지창, 발, 수레바퀴, 소라고둥, 거북, 신상, 연꽃을 비롯해 다양한 도상을 표현하였다. 메콩강 남부의 다노이 유적을 비롯하여 넨쭈어, 꺼탑, 께못, 꺼쏘아이 유적 등에서도 확인되었다. 꺼쏘아이 금판은 불교적인 내용이 담겨 있고, 꺼탑유적 비문에는 금이나 돌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신의 발자국을 사원에 놓는 의식을 행했다고 전하고 있어 금판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형상을 한 금판이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방주희

시바의 상징인 황소 난디, 신의 모습을 그린 금판, 비슈뉴의 화신 ⓒ방주희

쉐마 기둥은 직사각형 벽돌을 5~12층으로 쌓아 만든 힌두교의 죵교시설이다. 각 층은 4개의 벽돌을 엇물리게 배치하였고, 그 안을 흰 모래와 구중품, 금판으로 채웠다. 여러 도상과 글귀를 새긴 금판은 쉐마 기둥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안장성 다노이 유적의 85DN-M2 쉐마 기둥 안에서는 시바, 비슈누의 상징물이 함께 표현된 금판이 확인되어 두 신을 함께 모신 시설임을 알 수 있다. 또 85DN-M4 쉐마 기둥에는 물고기, 거북이, 멧돼지, 발, 소라고둥, 수레바퀴 등을 새긴 금판이 확인되므로 비슈누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벽돌을 쌓아 만든 힌두교의 종교시설인 쉐마기둥이다 ⓒ방주희

이번 전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베트남 옥에오 유적의 발굴성과와 출토 유물을 소개하기 위한 한성백제박물관 베트남 옥에오문화유적관리위원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및 대한 문화재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국내 최초로 옥에오 사람들의 삶과 문화, 옥에오에 자리 잡았던 고대국가인 부남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가 베트남 옥에오 문화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한국고대문화의 국제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로비 입구에 비치된 체험활동지를 통해 전시내용을 복습하며 스티커를 붙여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전시는 내년 3월 15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체험활동지로 옥에오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며, 옥외오 문화에서 확인되는 세계 곳곳의 물건들을 지도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방주희

■ ‘베트남 옥에오문화’전
○ 기간 : 2019년 12월 21일~2020년 3월 15일
○ 장소 : 한성백제박물관
○ 관람료 : 무료
○ 홈페이지 : 한성백제박물관 
○ 문의 : 한성백제박물관 02-2152-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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