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개통 120주년…다시 돌아온 ‘서울의 전차’

시민기자 한우진

Visit2,100 Date2019.12.24 11:05

1899년 한성을 달렸던 대한제국시대 전차 모습

알아두면 도움되는 교통상식 (153)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기획전시

지금 서울 대중교통의 대표라면 당연히 지하철과 버스일 것이다. 그럼 더 오래 전에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전차(電車)였다. 흔히 노면전차 혹은 트램으로 불리는 이것은 도로 바닥에 철길을 심어두고 그 위를 운행하는 열차다. 전차는 자동차와 달리 전기로 달리는데, 공중에 설치된 전깃줄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20일부터 ‘서울의 전차’기획 전시를 열고 있다. 새문안로를 지나가면서 박물관 버스정류장 앞에 서울시의 옛 전차 381호가 복원 전시된 것을 본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전문적인 전시가 열린다기에 이곳을 다녀왔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서울의 전차’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20일부터 ‘서울의 전차’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차가 첫 개통된 것은 구한말인 1899년 5월 4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는 일본 도쿄보다도 빠른 것이고, 세계 최초의 전차 개통인 1881년에 비해서도 그다지 늦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근대 발전에서 전차의 의미는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근대적인 도시개발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고종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전차 도입을 추진했다. 실무를 맡은 사람은 당시 한성판윤(현재 서울시장)이었던 이채연이었다. 친미개화파였던 그는 전차 운행을 위해 우선 시내 도로를 50척으로 넓히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서울전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이채연 당시 한성판윤 (앞줄 왼쪽)

그 후 미국인 사업가들과 협력하여 한성전기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대문에 발전소와 차량기지를 건설하고 선로를 부설하고 차량을 도입하는 등 절차를 차근차근 추진했다. 도시계획을 하고, 계획적인 개발을 실시하며, 자본을 끌어들여 주식회사를 만들고, SOC를 도입하는 등 현대적인 도시행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두 번째는 전차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전차의 개통은 단지 새로운 교통수단이 추가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들이 전차를 이용하면서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가 생겨났다. 대중교통인 전차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차였다. 차비를 내면 평면도 양반과 같은 차를 탈 수 있었고, 차비를 내지 못하면 양반이라도 탈 수 없었다. 여자라고 타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 전차를 통해 계급의식이 해체되어 갔던 것이다.

당시 신문에 실린 전차안에서의 에티켓 삽화, 지금 지하철에서의 에티켓과 다를 게 없어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시공간에 대한 감각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시간에 맞추어 운행하는 전차를 타면서 시간의 규칙성을 학습하였다.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전차의 막차시간이 밤 11시까지로 늘어나면서 밤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차를 통해 도시 확장에 대응해왔다는 것이다.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전차는 큰 혼잡에 시달렸다. 1938년 기사에 따르면 하루 24만 명이 탔다고 한다. 이렇게 만원(滿員)전차 문제가 심각해지자 걸어서 등교하기 운동과 시차출퇴근제까지 도입되기도 했다. 현대의 교통정책인‘교통수요관리’와 동일한 형태인 것이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자 119개 정류장중 43개를 통과하는 급행전차까지 도입되었는데, 이는 지금의 서울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의 시조라고 할 만하다.

결국 해방 이후 서울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서자 전차의 혼잡은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서울시가 택한 방법은 전차보다 수송력이 높은 새로운 교통수단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하철이었다.

서울전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서울의 마지막전차 노선도,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축소된 모습이다

지하철을 지으려면 전차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서울 전차의 차량기지는 동대문에 있었고, 전차의 핵심 노선은 종로였기 때문이다. 지하철 공사를 하려면 땅을 파내야 하는데, 이러면 전차가 달릴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966년 당시 서울 전차를 운영하던 한국전력으로부터 전차 사업을 인수 받은 후 2년 후인 1968년 11월 29일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했다.

이후에는 지하철 건설을 위한 절차가 착착 진행되었다. 우선 세종로 지하도가 지어졌고, 1971년 착공된 지하철 1호선(종로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되었다. 이처럼 수송력 부족에 시달리던 서울 전차는 서울 지하철로 새롭게 바뀐 것이다. 현재 서울지하철 노선도와 당시 서울 전차 노선도를 비교해보면 놀랍도록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20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전차는 서울의 풍경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용량 부족과 낮은 서비스 수준 때문에 쫓겨났던 노면전차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세먼지 환경오염과 고령화 시대에 전차가 갖고 있는 친환경성과 높은 접근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차는 자동차와 달리 전기로 달리며, 지하철과 달리 지상에서 탈 수 있다. 또한 당초의 문제였던 낮은 용량과 속도는 열차를 여러 량 연결하고, 도로통합 첨단신호를 도입해 해결하였으며 차량도 최신형으로 새로 만들었다. 자동차 시대에 ‘애물단지’였던 전차가 보행자 및 자전거 시대에는 ‘복덩이’로 돌아온 셈이다.

위례선 노선도(☞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위례선 노선도

서울시에서도 동남쪽 위례신도시에 노면전차(트램)인 위례선(마천역-복정역, 5km, 8개역)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기본계획 수립단계다. 위례선이 개통된다면 서울의 전차가 약 60년 만에 화려한 복귀를 하게 되는 셈이다. 오래전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전차가, 이번엔 또 어떤 모습으로 서울을 변화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 기획전시 ‘서울의 전차’
○일시: 2019.12.19.~2020.3.29.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구성: <1부. 근대로의 질주>, <2부. 궤도와 바퀴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3부. 70년간 운행의 종료>
○내용: 전차로 인해 바뀌었던 도시의 모습, 사람들의 생활상, 희귀 자료 및 사진
○홈페이지 : 서울역사박물관
○관람료: 무료
한우진 시민기자어린 시절부터 철도를 좋아했다는 한우진 시민기자. 자연스럽게 공공교통 전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시민의 발이 되는 공공교통이야말로 나라 발전의 핵심 요소임을 깨달았다. 굵직한 이슈부터 깨알 같은 정보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입장에서 교통 관련 소식을 꾸준히 전하고 있는 그는 교통 ‘업계’에서는 이미 꽤나 알려진 ‘교통평론가’로 통한다. 그동안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 알면서도 어려웠던 교통정보가 있다면 그의 칼럼을 통해 편안하게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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