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 이런 곳이? 드라마 촬영지 '백빈건널목'

시민기자 김혜민

발행일 2019.12.18. 14:58

수정일 2019.12.18. 16:56

조회 17,657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용산구 백빈건널목 ⓒ김혜민'땡땡거리'라고 불리는 용산구 백빈건널목 ⓒ김혜민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용산구 백빈건널목 ⓒ김혜민

"땡땡땡" 
신호음이 울리니 정지라고 적힌 표지판에 불이 들어오고 빨간 불도 더불어 들어왔다. 차단기가 스르륵 내려오면 주변은 더 소란스럽다. 역무원은 주변을 살핀다. 부지런히 지나다니던 차도, 자전거도, 사람도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몇 초 뒤 전철이 휘리릭 지나간다. 어떨 땐 지하철이고 어떨 땐 ITX 기차다. 이 전철 안에는 멀리 떠나가는 사람도 있을 거고, 가까운 거리를 떠나온 사람도 있을 거다. 네모난 박스는 그렇게 어디론가 흘러간다.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땡땡" 경고음이 동네방네 울려 퍼진다고 해서 거리 이름도 '땡땡 거리'다. 참 귀여운 별명을 부여받았다.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이 건널목의 정확한 이름은 백빈건널목이다. 조선시대 궁에서 퇴직한 백씨 성을 가진 빈이 이 근방에 살면서 이 길로 행차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빈은 조선시대 후궁 서열 중 정1품에 해당되는 궁녀를 일컫는다.

백빈건널목 주변은 화려한 용산 도심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김혜민
백빈건널목 주변은 화려한 용산 도심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김혜민

용산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백빈건널목은 이제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이다. 주변은 온통 늘씬하고 길쭉한 건물들이 자리한 빌딩 숲인데, 화려한 도시를 잠시만 벗어나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건물들, 추억의 상자를 열어 오래전 그때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의 골목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쌩쌩 달리던 차도 건널목에 도달하니 느린 거북이가 되었다. 사람도 차도 건널목에선 공평하게 잠시 멈춰 선다.

백빈건널목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김혜민
백빈건널목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김혜민

맞은편에 옛 첫사랑이 서 있다. 마침 차단기가 내려가 건널 수 없다. "철거덕, 철거덕" 열차가 다 지나가는 동안 건너편 사람의 얼굴도, 표정도 확인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웃고 있을까.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까. 아니면 발걸음을 홱 돌아서 가버렸을까. 4분 정도의 짧은 멈춤이지만, 참 재미있는 상상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치킨 한 마리를 사서 집으로 향하는 엄마를 건너편에서 마주치는 건 어떨까. 전철이 다 지나가면 엄마에게 달려간다. 전철이 다 지나가는 그 잠깐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 묘한 상상이 현실로 펼쳐질 것 같은 백빈건널목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백빈건널목에는 하루 300여 회씩 다양한 열차가 오간다 ⓒ김혜민
백빈건널목에는 하루 300여 회씩 다양한 열차가 오간다 ⓒ김혜민

교통의 요충지 용산역에서 대략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덕분에 용산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열차가 하루에 300여 회씩이나 왕래를 한다고 한다. 사진 동호인들은 이 풍경을 포착하기 위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순간을 기다린다. 순간을 놓쳤더라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열차는 수시로 나타날 테니깐.

오고 가는 사람들은 여유로운데 열차가 지나갈 때면 역무원의 신경은 곤두서 있다. 열차가 지나갈 때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더불어 이곳을 배회하는 고양이들의 안전도 역무원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 모두 이곳을 지날 때는 조심, 또 조심하자.

백빈건널목 바로 옆길의 고요한 풍경 ⓒ김혜민백빈건널목 바로 옆길의 고요한 풍경 ⓒ김혜민
백빈건널목 바로 옆길의 고요한 풍경 ⓒ김혜민

백빈건널목 바로 옆 길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폭의 골목이 나온다. 땡땡 소리가 요란하고, 철거덕 지나가는 열차가 소란스러운데도 골목은 고요하고 한적하다. 조심스럽게 골목으로 들어갔다. 담이 높은 덕분에 까치발을 해도 지나가는 열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점차 어둠이 깔리는데도 전철은 지치지 않는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왔다.

서울 오래된가게로 등록된 용산 방앗간에 도달하면 바로 백빈건널목이 보인다 ⓒ김혜민
서울 오래가게로 등록된 용산 방앗간에 도달하면 바로 백빈건널목이 보인다 ⓒ김혜민

"땡땡땡" 울려 퍼지는 이 소리가 왠지 싫지 않다. 잠시 멈춰도 된다는 신호음 같아서 오히려 더 반갑다.

한 해가 다 지나간다. 한 해를 정리한다는 핑계 삼아, 또는 내년을 준비한다는 핑계 삼아 잠시 멈췄다 가도 좋은 12월이다. "땡땡" 경고음이 울리면 우리도 잠시 쉬어가자. 그래도 좋은 12월이니깐!

참고로 인터넷 지도상에는 용산 땡땡거리가 검색되지 않는다. 지도를 이용해 방문하는 분들은 '용산 방앗간'을 검색하는 걸 추천한다. 서울 오래가게로 등록된 빨간 간판의 용산 방앗간에 도달하면 바로 건널목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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