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의 사연 깃든 정릉, 겨울숲 산책도 강추!

시민기자 염승화

Visit398 Date2019.12.13 13:40

지난 주말,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 왕릉을 찾았다. 다녀온 곳은 성북구 아리랑로에 있는 서울 정릉(貞陵)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왕릉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를 모신 능이다. 대부분의 왕릉처럼 경관이 수려한 산기슭에 조성되었다. 약 29만 7,800㎡(약 9만 평) 규모다.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왕비임에도 두 아들을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모두 잃은 비운의 여성이다. 의붓자식이자 정적인 태종 이방원과 함께 자주 회자된다. 최근 절찬리에 방영되다가 종영된 TV 액션 사극 <나의 나라>에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오늘날에도 능 이름이 정릉동과 정동 등 지명으로 쓰이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정릉의 병풍석과 난간석 등을 이용해 복원공사 자재로 활용한 청계천 광통교.
릉의 병풍석과 난간석 등을 이용해 복원 공사 자재로 활용한 청계천 광통교 ⓒ염승화

정릉은 조선 건국 뒤 처음으로 쓴 왕조의 능이기에 마땅히 그 역사 가치와 의의가 높다. 1970년 5월 이래로 사적 제 20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다만 오랜 연혁에 비례하듯이 우여곡절 또한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96년(태조 5) 신덕왕후 사후 처음에는 능이 중구 정동, 옛 한성부 황화방(皇華坊)에 번듯하게 조성되었었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한 1408년 5월 25일 이후부터 본격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계모인 신덕왕후와의 사이가 극히 좋지 않았던 태종이 그 이듬해 신덕왕후의 신분을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지금 자리인 옛 사흘한(沙乙閑)으로 천장한 것이다. 구 정릉(초장지)에 있던 병풍석 등 석물들을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의 보수 자재로 쓰는 수모를 준 1410년(태종 10) 8월 8일의 증거도 현 광통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느 왕릉과 달리 능 입구가 주택가와 밀접해 있다.
여느 왕릉과 달리 능 입구가 주택가와 밀접해 있다 ⓒ염승화

신덕왕후는 무려 260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왕후로 복위되고 능도 다시 왕릉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박해를 받은 태종 당대의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정릉 정문에서부터 그것을 마주하게 된다. 여느 왕릉들과 달리 정릉은 문턱만 벗어나면 바로 주택가들과 부딪힐 만큼 주변이 좁다. 아마도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한 태종 때의 조치 때문이리라. 또한 난간석과 병풍석 없이 봉분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능침공간도 그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다.

정릉 재실과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노거수의 위용
정릉 재실과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노거수 ⓒ염승화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먼저 왼쪽 언덕 위로 재실이 보인다. 소실되었던 이 재실은 2014년에야 복원된 것이다. 재실, 행랑, 제기고 등으로 구성된다. 평범해 보이는 공간이나 행랑채가 ‘신덕왕후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특이점이 있다. 우람한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재실 대문 앞과 측면 담장 밑에 마치 능의 수호신인양 우뚝 서 있는 점이 인상 깊다. 수령이 모두 380년쯤인 노거수들이다.

자연석 위에 돌다리를 짜임새 있게 놓은 정릉 금천교 ⓒ염승화
자연석 위에 돌다리를 짜임새 있게 놓은 정릉 금천교 ⓒ염승화

홍살문밖에서 바라본 참도가 기역자로 꺾인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홍살문 밖에서 바라본 참도가 ㄱ자 모양으로 꺽인 독특한 모양을 띠고 있다 ⓒ염승화

정릉 신덕왕후 비각에는 고종황제 때 황후로 추존되면서 세운 표석이 세워져있다.
정릉 신덕왕후 비각에는 고종황제 때 황후로 추존되면서 세운 표석이 세워져 있다 ⓒ염승화

축문을 태우는 소전대는 일부 왕릉에만 보이는 독특한 석물이다.
축문을 태우는 소전대는 일부 왕릉에만 보이는 독특한 석물이다 ⓒ염승화

세계문화유산임을 나타내는 표석을 지나면 능으로 진입하는 금천교가 나타난다. 이곳 금천교는 다른 왕릉과 차이를 보인다. 자연석 위에 돌다리를 짜임새 있게 놓은 것은 물론이고 물이 잘 흐르도록 사선으로 돌기둥을 세워 놓았다. 보통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수직으로 놓이기 마련인 참도도 특징을 보인다. 금천이 제례공간에 바투 붙어 있기에 참도가 ㄱ자로 꺾인 모양을 하고 있다. 향로와 어로 등 투박한 박석이 두 줄로 깔려 있는 참도를 따라 곧 제례를 모시는 공간인 정자각 앞으로 간다. 정자각을 위시로 주변에 있는 수라간, 수복방, 비각 등 전각들을 차례로 둘러본다. 이 전각들은 모두 천장 당시에는 없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비각 안에는 ‘대한 신덕고황후정릉’라는 비문이 새겨진 표석이 서 있다. 고종황제가 1899년(광무 3년) 신덕왕후를 신덕고황후로 추존한 뒤 만든 것이다. 정자각 왼편에서 만나는 소전대도 특이하다. 축문을 태우는 돌인 소전대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등 극히 일부 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석물이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둥근 돌받침인 고석은 조선왕릉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물이다 ⓒ염승화 2017년 9월 먼발치에서 바라본 정릉 능침과 정자각 지붕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둥근 돌받침인 고석은 조선왕릉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물이다 ⓒ염승화

2017년 9월 먼발치에서 바라본 정릉 능침과 정자각 지붕
정릉 능침과 정자각 지붕 ⓒ염승화

정릉의 능침공간은 3월부터 12월까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해설사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개방이 된다. 연전에 방문했을 때는 먼발치에서 그 형태만 바라보았을 따름인데, 이번에는 운 좋게도 그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사악한 기운을 쫒는 불을 능역에 밝히는 장명등을 비롯해 혼유석, 망주석, 문석인, 석양, 석호, 석마 등 석물들과 봉분 및 그 뒤 곡장 등을 눈앞에서 자세히 조우하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여러 석물들 중에서 처음부터 정릉의 석물로 쓰인 것들은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둥근 돌 받침인 고석뿐이라고 한다. 그 탓인지 봉분 주위에 놓인 다른 석물들과는 달리 이 두 석물은 색이 더 짙게 바래있다. 조선의 가장 오래된 이 석물들이 곧 능침의 특징인 것이다.

능을 감싸듯이 안고 있는 뒷산을 한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 운치가 좋다
능을 감싸듯이 안고 있는 둘레길 운치가 멋스럽다 ⓒ염승화

능침을 오가는 호젓한 오솔길을 내려온 다음에는 금천을 따라 나 있는 운치 있는 산책로와 연결되는 둘레길로 향한다. 이 길은 정릉의 좌우 끄트머리 부근에서 오를 수 있고 거리는 약 2.5㎞다. 빽빽한 산림 사이로 이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심신이 절로 안정이 된다. 1시간 가량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길을 꼭 돌아보길 바란다.

정릉은 주차 시설이 좁으니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우이신설 경전철을 타고 정릉역에서 내린 뒤 10분 쯤 걸으면 된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수시로 다니는 마을버스를 활용해 정릉 정문 부근까지 갈 수도 있다. 조선 최초의 능에서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흔적을 만나는 역사 문화 여행지이자 도심 숲으로의 겨울 산책과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인 서울 정릉 방문을 권하고 싶다.

■ 서울 정릉 관람 및 방문 안내
⊙교통 : 우이신설선 정릉역 2번 출구 > 약 580m(도보 8~10분) > 정릉 입구
– 마을버스 성북 22번 > 성신여대입구역 정류장 승차 > 9 정류장 지나 정릉 입구 기점 하차
위치 : 서울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정릉동 508)
운영 : 화~일요일 개방/ 매주 월요일 휴관
– 11~1월 06:30~17:30(입장마감 16:30)
– 2~5월, 9~10월 06:00~18:00(입장 마감 17:00)
– 6~8월 06:00~18:30(입장마감 17:30)
* 신덕왕후도서관 : 재실 행랑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 경내 안내 및 해설 :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관람료 : 1,000원(만25세~만64세)/ 단체 10인 이상 800원
문의 : 정릉관리소 02)914-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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