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 속 은평한옥마을, 어디까지 가봤니?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9.11.29. 11:23

수정일 2019.11.29. 17:24

조회 12,221


북한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은평한옥마을 Ⓒ박분

북서쪽 끝자락, 은평구 진관동에는 그림 같은 한옥마을이 있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두른 덕에 공기가 그지없이 맑고 풍광이 아름다운 은평한옥마을이다.

늦가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옥마을을 천천히 걸어본다. 한옥이 즐비한 골목길 따라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가 색다르다. 잿빛 기와지붕에 내려앉은 햇살이 유난히 반짝인다. 골목길 따라 줄줄이 늘어선 기와집들은 영화에서 보았던 고대광실 집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 골목길을 한가롭게 걸으며 유유자적 늦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박분 

한옥마을에는 은평지역의 역사와 한옥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2014년에 개관한 박물관은 은평구의 역사와 향토현황 등을 토대로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한옥 전시관도 있어 한옥을 만드는 과정과 한옥 자재를 통한 체험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앞 신라시대 기와가마터 Ⓒ박분

박물관 앞마당에 자리한 신라시대 기와가마터도 눈여겨 볼만하다. 야외전시장에는 은평뉴타운을 개발할 당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가마터다. 전시된 기와가마터는 발견 당시의 유구(遺構)를 그대로 이전해 복원해 놓아 기와제작과정을 차근히 살펴볼 수 있다. 기와를 만드는 작업은 흙과 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습기가 많고 추운 여름과 겨울은 피하고 주로 봄, 가을에만 기와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구파발산대탈 기획전 Ⓒ박분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마침 구파발산대탈 기획전을 열고 있어 흥미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서울 경기 지역 탈놀이의 원형인 구파발산대놀이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특히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구파발산대탈을 중심으로 자취가 사라진 본산대놀이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대놀이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전승되던 가면극이다. 조선시대 녹번과 구파발은 전문 연희패의 집단 거주지로 본산대놀이와 꼭두각시놀음 등 다양한 연희가 성행했던 서울 서북방 연희 거점지역이었다. 궁정과 시정을 오가며 이어지던 화려한 본산산대놀이는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사라져 현재는 여기서 파생된 양주 송파 등 별산대놀이만 전해지고 있다. 구파발산대탈은 목각탈 11점과 바가지탈 3점을 포함해 총 14점이 전해지고 있다.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황해도 봉산탈춤을 비롯해 정월 대보름에 사자탈을 쓰고 놀던 함경도 북청사자놀음, 안동에서 성행하던 하회별신굿 등 각 지역의 탈춤놀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지역별 탈춤놀이의 흥겨운 춤사위를 모니터와 이어폰을 통해 장단에 맞춰 따라할 수도 있어 관람객들을 풍자와 흥이 가득한 탈춤세계로 이끈다.


붉은 얼굴에 모란꽃과 복숭아로 장식한 처용의 탈 Ⓒ박분

탈춤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자료도 전시돼 있다. 탈춤의 기원에는 천체 기원설, 처용가무설, 기악설, 산대도감설 등 다양한 설이 따른다. 신라 헌강왕때의 처용무에서 비롯된 처용가무설도 그 중의 하나로 전시실에는 처용탈이 함께 전시돼 있다. 붉은 얼굴에 머리에 모란꽃과 복숭아를 장식한 처용의 탈은 매우 이색적인 모습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복숭아는 역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있어 처용탈을 그림으로 그려 부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탈을 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서로들 웃는 모습이 즐거워 뵌다. 전시실에는 다양한 모양의 탈이 전시돼 있어 직접 골라 써볼 수 있다. 구파발산대탈 전시는 12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옥상전망대에도 들러보자.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방이 훤히 트여 있어 기와집들이 줄 지어 늘어선 마을 모습은 물론이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수놓은 북한산의 수려한 풍경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너나들이센터 Ⓒ박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옆에 위치한 너나들이센터는 한문화 체험관으로 한복에 관한 다양한 전시와 함께 한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입장권 소지자에 한해 1시간 한복 무료체험을 할 수 있다.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기증유물체험전 '추억의 사진관' Ⓒ박분

현재 1층 전시실에서는 기증유물체험전으로 ‘추억의 사진관’을 열고 있다. 은평구에서 오래도록 사진관을 운영했던 노부부가 기증한 사진 장비와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옛 시절을 소환하는 고려사진관에 전시돼 있다. 운동회 때 찍은 사진, 즐거운 소풍 길, 포동포동한 아기 적 모습의 돌맞이 사진 등 전시된 사진을 보면서 옛적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즐겁다.

마을을 벗어나 천년고찰 진관사로 향한다.

진관사에 오르는 길목에 ‘진관사 태극기 비(碑)’ 표석이 보인다.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백초월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진관사 태극기를 재조명하기 위해 세워진 석비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있어 누구든 한번쯤은 보게 되는 이 석비에는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태극기(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458호)와 독립신문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가 새겨져 있다.


단풍숲 우거진 백초월길 Ⓒ박분

진관사 해탈문이 보이는 ‘백초월길’에 이르면 우거진 단풍숲길이 펼쳐진다. 북한산 골짜기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단풍숲에는 푸른 잎 성성한 소나무도 어우러져 알싸한 향이 감돈다. 수량은 적지만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 또한 귓불을 스친다. 우거진 단풍숲길은 진관사 초입 일주문에서 진관사까지 이어진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바위에 살포시 기댄 모습의 불상도 눈에 띈다. 부드러운 눈매의 다소 여성적인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바위에는 ‘진관사 마애, 아미타불’이라 쓰여 있다. 누군가 기도를 올린 듯 국화분이 놓여있다. 아미타불 뒤편으로 푸른 솔숲이다.


진관사 뒤편으로 소나무가 둘러섰다 Ⓒ박분

진관사 경내로 들어서면 푸른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두른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 때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로 현재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이용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후원을 돌아보면 아담한 사찰전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 중에는 항일 역사가 담긴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도 자리해 있다. 

진관사 태극기는 사찰을 보수하던 중 이곳 칠성각에서 발견되었다. 태극기를 숨겨두었던 분은 일제 강점기, 항일 승려 중 한 분이었던 백초월(白初月, 1878~1944)스님이다. 칠성각 앞에는 태극기 사진이 아크릴 판에 전시되어있다. 태극기가 발견된 경위에 대한 설명과 백초월 스님의 얼굴 모습도 보인다.


정갈한 항아리가 즐비한 장독대 Ⓒ박분

경내 공양간 뒤뜰로 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정갈한 항아리들이 즐비한 진관사의 장독대다. 가을 햇살을 고루 받고 있는 항아리들을 보니 마치 고향집에 온 것 마냥 마음이 푸근해진다. 진관사는 사찰 음식을 연구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만큼 항아리 속 다양한 장류를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다.

가을 단풍 길에서 천천히 산책을 하는 등산객도 많다. 진관사에 인접한 북한산 둘레길 구간인 ‘마실길’로 접어들면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한 은행나무숲이 나그네의 발목을 붙든다. 눈부신 자태로 가을의 운치를 더하는 이곳은 ‘은행나무 쉼터’로 아늑하고 호젓해 누리길 구간을 지나다 등산객들이 한차례 머물다 가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북한산 둘레길 구간 '마실길'의 은행나무 숲 Ⓒ박분

이 밖에도 은평한옥마을 일대에는 셋이서 문학관, 삼각산 금암미술관 등 둘러볼 곳이 많다.

단풍지고 낙엽 지는 계절에 북한산의 맑은 바람을 가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은평한옥마을은 놓치기 아까운 명소다. 나날이 변모를 거듭하고 있는 이곳에는 최근 ‘한문화국제체험관’ 건립공사가 시작됐다. 오는 2021년 문을 열 한문화국제체험관에서는 사찰음식을 비롯한 다도 명상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전통문화 전시와 공연이 이뤄질 예정이다. 북한산이라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함께 천년고찰인 진관사와 은평한옥마을이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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