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과 반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시민기자 정인선

Visit117 Date2019.11.18 14:26

성균관과 반촌 전시실 입구 ⓒ정인선

성균관과 반촌 전시실 입구 ⓒ정인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그 마을 주변인 ‘반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성균관과 반촌’을 지난 11월 8일부터 2020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반(泮)’이란 글자는 나라의 학교라는 뜻으로, ‘반궁(泮宮)’은 성균관의 별칭이다. 조선시대의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반촌’ 원조 대학가의 18세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로, 그 지역 속에서 성균관 유생과 반인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이야기다. 성균관과 반촌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다.

태학계첩(1747년 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4호) 성균관 조감도​ ⓒ정인선

태학계첩(1747년 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4호) 성균관 조감도​ ⓒ정인선

태학계첩은 성균관 대사성 이정보가 <태학속전>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9명의 참여 유생들과 만든 계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계첩 가운데 성균관 유생들의 계첩으로서는 유일한 유물로서 성균관의 건물 구조와 배치 내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고 조선시대 계첩 제작의 다양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그림 주변에 좀에 의한 훼손이 있으나 장황(粧潢) 형태와 화면 등은 제작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후기 성균관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오랜 된 그림 ‘반궁도’, ‘대학성전’, ‘태학계첩’, 윤기의 ‘무명자집’, ‘대사례도’ 등 성균관 명륜당의 모습을 전시실에서 생생히 재현했다. 또한 반인의 삶을 담은 영상도 전시된다.

1606년 제작된 명륜당 건물의 현판(선조 39년) ⓒ정인선

1606년 제작된 명륜당 건물의 현판 (선조 39년) ⓒ정인선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이었던 동시에 유교문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성균관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했다. 성균관 유생들의 강학 공간의 중심은 명륜당이며, 역대 왕들은 글과 글씨를 성균관에 내리고 명륜당의 현판에 남김으로써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명륜당에는 40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를 전시실에 그대로 재현했다. 그 중앙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현판은 정조가 내린 ‘어제 태학은 배시’이다. 명륜당은 서울의 성균관에 부설되어 있는 건물, 성균관의 유생들이 강학을 하던 곳으로, 왕이 이곳에 들러 유생들을 격려하거나 직접 유생들을 가르치고 그 실력을 시험했다. 공자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의례 공간이 앞에 있고, 그 뒤로 국가의 인재를 기르는 강학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왕조의 이념과 국가의 토대를 탄탄히 다지는 곳이다.

대사례도(19세기)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정인선

대사례도(19세기),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정인선

‘대사례도’는 ​1743년(영조 19)에 윤 4월 7일에 거행된 대사례 의식을 기록한 화권이다. 조선시대 행사 기록화로는 드문 화권 형식이다. 성균관은 어진 선비, 국가의 인재를 가르치는 공간이다. 선비의 기운을 나라의 기운으로 여겨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곳, 지금으로 보면 성균관은 국립대학이며 성균관의 유생은 국립대 학생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인선

정약용의 < 목민심서> ⓒ정인선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대표작으로 48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실시할 곳이 없을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눈앞에 병들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긴급히 구호한다는 취지로 엮은 것이다. 조선의 사회상을 속속들이 구체적으로 그려낸 인문학의 고전으로, 절체절명의 시대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경륜이 가득 담긴 탁월한 사상서로 인정한다.

무명자집 윤기, 19세기 이후, 윤병희 가문 소장 ⓒ정인선

윤기의 ‘무명자집’, 19세기 이후, 윤병희 가문 소장 ⓒ정인선

윤기(1741 ~1826)의 ‘무명자집’은 ​20년간 성균관 유생 시절을 보내며 성균관과 반촌에 대해 220수의 시가 담겨 다. 현실의 여러 모순을 예리하게 표현, 해학과 관조로 익살스러운 웃음과 달관의 자세를 철학적으로 표현한 시가집이다. 시민들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 초기부터 반촌은 반인들의 거주공간으로 조성되었고, 반인들은 그 안에서만 거주해야 했으며 외부인은 반촌에서 거주할 수 없었다. 조선 후기의 반촌에는 일반적인 공노비였던 반인뿐 아니라 이른 바 하숙집 주인이었던 반주인, 시를 지었던 반인, 서당의 훈장이었던 반인, 현방의 주인이었던 반인 등이 모여 살았다. 그들의 다양한 일상과 지금은 사라진 반촌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서 전시된다. 조선을 이끌었던 인재를 육성한 기관 성균관, 그리고 오직 성균관을 위해 살면서, 또한 반주인과 현방의 주인으로 유생들의 벗 역할까지 했던 반인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반주인’은 과거를 보려고 서울로 올라온 지방 유생이 성균관 근처에서 묵던 집, 또는 그 집의 주인을 이르는 말이다. 북적이는 과거 기간뿐 아니라 반주인들은 지방 유생과 지방 출신 관료의 하숙집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유생과 반인들의 관계 속에서 반촌 주민들은 그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을 시로 표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교육의 중심 성균관과 하숙촌이자 문화공간인 반촌의 이야기를 접할 수있는 흥미로운 전시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 홈페이지 : museum.seoul.go.kr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02-724-0274~6)
◇ 전시 기간 : 2019년 11월 8일 ~ 2020년 3월 1일
◇ 전시 장소 : 기획전시실 A
◇ 관람시간 : 평일 09: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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