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는 나쁜 것일까? 우리에게 화학이 필요한 이유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Visit472 Date2019.11.04 13:00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1) 비료 예찬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1) 비료 예찬

박학다식 유쾌한 털보 과학자로 유명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님이 이번에 ‘내 손안에 서울’ 새로운 전문필진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발행일 기준)에 ‘생활밀착형’ 과학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 과학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사고는 물론 사유의 즐거움까지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이정모 관장님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칼럼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1) 비료 예찬

텃밭을 가꾼 적이 있습니다, 작은 텃밭만 있어도 초여름부터 식탁이 참 풍성하죠. 이웃에게 푸성귀를 나눠줄 기회를 놓치면 일주일 내내 쌈만 먹어야 할 지경입니다. 결국 고기도 많이 먹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농사는 정말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결국 비료와 농약 그리고 비닐멀칭의 문제로 고민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저는 비료에 대해서만은 입장이 분명합니다. 저는 비료 예찬론자입니다.

생명은 온갖 원소로 구성되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탄소, 수소, 산소, 그리고 질소입니다. 이 가운데 탄소, 수소, 산소는 이산화탄소(CO2)와 물(H2O)의 형태로 쉽게 공급됩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물로 포도당을 만들거든요. 이 포도당이 흘러 우리 몸까지 전달돼죠.

문제는 질소입니다. 질소는 단백질 그리고 DNA 같은 핵산에 꼭 필요한 원소입니다. 공기 중에는 질소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78퍼센트가 바로 질소지요. 그런데요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흡수하지 못합니다. 식물은 물에 녹는 질산염의 형태로만 질소를 흡수할 수 있어요. 다행히 이따금 번개가 칩니다. 번개가 발생할 때 생기는 에너지로 질소가 질산염이 되어서 식물에 흡수되고 이게 또 흘러 우리 몸까지 오죠.

그런데요 그 양이 사실 얼마 되지 않아요. 그 많은 식물에게 질산염을 공급하려면 하늘에서는 쉬지 않고 번개가 쳐야 할 겁니다. 그런 혼돈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죠. 번개 대신 그 역할을 하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바로 미생물입니다.

11세기 말 유럽 농민들은 삼포제라는 기가 막힌 농사법을 개발했습니다. 땅을 봄 농사 땅, 가을 농사 땅, 그리고 놀리는 땅으로 삼등분하여 3분의 1씩 돌려가면서 농사를 지은 겁니다. 이때 3년마다 한 번씩 놀린 땅에 콩을 심었습니다. 콩을 수확한 다음에 오히려 땅은 더 기름져졌습니다. 신기하죠. 어쨌든 덕분에 농업 생산량이 늘었고 그 생산력을 토대로 르네상스를 꽃피웁니다.

비밀은 콩의 뿌리에 있었습니다. 콩의 뿌리에는 혹이 달려 있습니다. 뿌리혹박테리아가 기생하면서 생긴 겁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서 질산염 형태로 물에 녹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콩, 강낭콩, 팥, 클로버, 아카시와 등나무가 모두 콩과식물에 속합니다. 물론 콩과식물만 질소를 고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명계에 들어오는 질소의 46퍼센트는 콩과식물이 고정해 준 것이죠.

삼포제의 효과도 약발이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구가 너무 늘어났죠. 18~19세기 유럽은 맬서스가 걱정한 대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박테리아에만 의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남미 해안가의 하얀 돌이 유럽인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구아노입니다. 구아노는 바닷새의 똥, 토사물, 시체가 쌓여서 돌이 된 것입니다. 유럽인들은 이것을 칠레초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칠레초석은 질산염 덩어리입니다,

칠레초석이 미국과 유럽 농부의 비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칠레초석은 비료로도 쓰이지만 화약의 중요한 원료이기도 합니다. 세계 대전이 터지자 칠레초석은 총알과 포탄의 재료가 되었지요. 당연히 연합군은 칠레초석이 독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독일은 죽느냐 사느냐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사실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쌓여 형성된 구아노가 불과 일이백 년 사이에 동이 날 정도로 인구가 급격히 늘었거든요. 이젠 구아노를 대체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방법은 마치 우리가 뿌리혹박테리아처럼 공기 중의 질소를 직접 고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태계 독일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해결합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1905년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이 질소와 수소를 이용해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명했습니다. 500도와 300기압이라는 극단적인 조건이 필요했죠, 독일의 공업 기술이 이 조건을 실현해서 공기에서 암모니아를 만들었습니다. 암모니아를 다시 질산염으로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프리츠 하버 덕분에 지금 76억 명의 인류가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이 공로로 그는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프리츠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를 발명한 전범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유기농을 선호합니다. 화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그냥 싫으니까요. 삼포제를 발명한 11세기 세계 인구는 3억 명에 불과했습니다, 유기농으로 살 수 있는 최대 인구는 10억 명입니다. 그런데 현재 인구는 76억 명이 넘었습니다. 우리에게 화학이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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